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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룸에서 화장실 거울에 김이 서리는데 샤워를 안 했어

2026-09-22 20:29:11 조회 16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원룸에서 화장실 거울에 김이 서리기 시작한 날, 나는 진짜로 샤워를 안 했어. 그날 아침부터 물소리도 없었고, 샤워기 밸브를 만진 기억도 없거든. 그런데 출근 전에 화장실 문을 열자마자, 거울 위가 하얗게 뿌옇게 변해 있었어. 마치 누가 막 뜨거운 물을 틀고 나간 것처럼.

처음엔 그냥 습기겠지 싶었어. 오래된 건물이라도 여름이면 환기 안 돼서 김이 생길 수 있잖아. 그래서 휴지로 한 번 닦아내고, 환풍기 켜고, 세면대 쪽 물자국도 확인했어. 그런데 이상한 건, 거울이 닦인 직후에도 금방 다시 서린다는 거야. 한 번 닦으면 끝날 정도로 흔한 결로가 아니었고, 몇 분 지나면 또 뿌옇게 올라왔어.

그날 저녁에 퇴근하고 들어오는데, 나는 일부러 샤워를 하려고도 안 했어. 그냥 양치만 하고 나가려던 참이었거든. 근데 화장실 문을 여는 순간, 또다시 거울 위에 얇은 김자국이 이미 떠 있었어. 나는 소름이 돋아서 그대로 멈췄고, 거울을 보기도 전에 바닥부터 봤어. 물이 흐른 흔적, 물기 닦은 자국 같은 게 없었는데도 말이야.

원룸이라도 보통은 누군가 이용하면 흔적이 남잖아. 가령 샤워하면 바닥에 물이 고이거나, 수건이 축축하거나, 욕실 매트가 젖어야 정상인데 그런 게 없었어. 오히려 반대로, 거울 주변만 유독 온도 차가 심한 것 같았어. 마치 한쪽 면만 계속 따뜻하게 달궈지는 느낌. 손바닥을 갖다 대면 열기 같은 건 없는데, 김이 서리는 방향은 너무 일정했어. 거울 중앙만 아니라, 누가 얼굴을 가까이 댄 것처럼 높이에 맞춰져 있었거든.

나는 그때부터 이상한 루틴을 만들었어. 거울이 다시 서리기 전에 일부러 확인하는 거지. 오전에 닦고, 오후에 다시 확인하고, 밤엔 불을 켠 상태로 잠깐 들여다봤어. 그러다 어느 날, 거울이 완전히 하얘지기 전에 아주 잠깐 선명해지는 순간이 있었어. 김이 걷히는 게 아니라, 김 사이로 무언가 윤곽이 잡히는 느낌이랄까. 딱 한 번, 아주 짧게. 그때는 내가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동시에 내가 맞는 것 같기도 했어.

나는 그냥 내 기분 탓일 거라고 계속 넘기려 했는데, 그날 밤엔 바깥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어. 화장실 환풍기가 켜진 소리 같은데, 내가 만진 적이 없거든. 집이 조용해서 더 크게 들렸고, 소리는 화장실 쪽에서만 일정하게 이어졌어. 그리고 소리가 멎자마자 거울이 하얗게 번지더라. 나는 문을 열기 전에 숨을 죽였는데, 문을 여는 순간 김이 피어오르는 속도가 확 빨라졌어.

여기서부터는 말이 좀 꼬이는데, 거울 김이 서릴 때마다 내 체감도 이상해졌어. 샤워를 하지 않았는데도 목 뒤가 뜨끈해지고, 가슴 쪽이 미묘하게 젖는 느낌이 들 때가 있었어. 설마 바깥에서 누가 물을 뿌리는 건가 싶어서 창문도 확인했는데, 그쪽으로 물이 내려온 흔적이 없었어. 계단 쪽도, 복도 쪽도 다 정상. 오직 화장실 거울만, 그리고 거울에 생기는 김만 계속 반복됐어.

그래서 결국 관리실에 말했는데, 돌아온 대답이 더 웃기더라. “그 방 화장실 거울이 원래 그런 편이에요. 오래돼서 결로가 잘 생기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때 나는 웃음이 안 나왔어. 오래돼서 결로가 잘 생긴다기엔, 매번 타이밍이 너무 맞았거든. 내가 화장실을 열고 들어오기 직전에 서리기 시작하거나, 반대로 내가 들어가려 하면 이미 서려 있는 것처럼. 한 번도 내가 ‘따뜻한 공기’를 만들기 전에 먼저 와 있던 건 아니었어.

어떤 날은 더 구체적이었어. 내가 화장실 문을 열기 전에, 거울에 누가 숨을 불어 넣은 것 같은 동그란 자국이 있었거든. 김이 서리면서 생긴 얼룩이 아니라, 손가락으로 닦아낸 것처럼 가장자리만 또렷하게 남아 있었어. 그 자국을 휴지로 지우려는데, 휴지가 닿는 순간 이상하게도 자국이 더 또렷해지는 느낌이 들었어. 마치 “지워도 따라온다”는 식으로. 그때 나는 거울을 정면으로 못 보겠더라. 왜인지, 보려고 하면 내가 먼저 시작한 것처럼 될 것 같아서.

마지막으로, 그날 새벽에 진짜로 샤워를 했어. 일부러 확인하고 싶어서. 물을 켜고, 욕실을 하얗게 채울 정도로 충분히 틀었는데, 거울은 이상하게도 서리지 않았어. 대신 샤워가 끝난 뒤, 거울은 아무리 닦아도 금방 뿌옇게 돌아오지. 보통은 샤워 끝나면 김이 한동안 남고 점점 사라져야 정상인데, 그날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거울이 기다리고 있다’는 느낌이었거든. 그리고 잠깐,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보여야 할 위치에 내가 아닌 온기 같은 게 서려 있었어. 내가 고개를 움직일 때마다, 김의 결도 똑같이 따라 움직이는데… 그게 내가 움직인 건지, 아니면 거울이 나를 따라준 건지, 그 경계가 흐려지더라. 지금도 화장실 문을 열 때마다 거울부터 본다. 안 보려고 해도, 김이 먼저 말해주는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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