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랑 술 마시고 택시 탔는데 목적지가 바뀐 썰
친구이자 대학 때부터 쭉 알고 지낸 애랑 오랜만에 술 한 잔 하기로 했거든요. 저녁 먹고 2차까지는 그냥 평범하게 흘러갔는데, 어느 순간부터 “아 오늘은 택시 타자, 걍 편하게 가자” 이런 말이 나오는 거예요. 둘 다 취기가 슬슬 올라오고, 길 기억도 안 나는 상태라서 그냥 택시 잡고 목적지만 말하면 될 줄 알았죠.
택시 타자마자 친구가 기사님한테 목적지를 말했어요. 저는 옆에서 “응 응 거기로 가요” 하면서 고개 끄덕이기만 했고, 기사님은 “네 알겠습니다” 하고는 시동 걸더니 바로 출발하더라고요. 그때까지는 문제 없었죠. 그런데 제가 창밖을 보는데, 길이 생각보다 다르게 돌아가더라고요. ‘음? 여기서 바로 저쪽으로 가는 길이었나?’ 싶다가도, 5분쯤 지나니까 아예 방향 자체가 틀어진 느낌이 확 왔어요.
처음엔 제가 너무 취해서 착각하나 했는데, 친구도 갑자기 가만히 있다가 휴대폰을 꺼내더니 지도 켜는 거예요. 그리고는 한 번 크게 웃더니, 웃음이 끝나자마자 갑자기 말수가 줄어드는 거예요. 저도 설마 했는데, 내비 화면 보니까 우리가 가는 길이 친구가 말한 목적지랑 완전 다른 쪽이더라고요. 그 순간부터 등골이 서늘해졌습니다. 술 마시고 길치인 건 저희 둘 다 맞지만, 목적지 자체가 틀어지는 건 다른 문제잖아요.
친구가 운전석 쪽을 향해 최대한 침착하게 “기사님, 혹시… 목적지 여기 맞죠?” 하고 물어봤어요. 기사님은 잠깐 거울로 보더니 “네? 아, 지금 가는 데는 방금 말씀하신 곳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식이었고, 친구는 “아니요 방금은 다른 곳이었는데요”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속으로 ‘말을 잘못한 건가?’ 싶었는데, 문제는 그 다음이에요. 제가 친구가 말한 내용을 다시 떠올리려고 하는데, 사실 제 귀로는 분명히 목적지가 어떤 식으로 들렸거든요. 그런데 기사님이 듣고 따라간 정보가 아예 다른 거였던 거죠.
결국 차 안에서 셋이 머리를 맞대고 “우리가 뭐라고 말했지?” “내가 들은 건 이거였는데” “아니 근데 저기 역 이름이 비슷해” 같은 대화가 시작됐습니다. 취해서 문장 연결이 잘 안 되니까 더 꼬였고, 저는 순간적으로 기사님이 짜증 나실까 봐 말도 조심조심 했어요. 근데 친구가 갑자기 “기사님, 잠깐만요. 제가 직접 정확히 주소 다시 읽어드릴게요” 하고 휴대폰을 들고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거든요.
기사님이 “아, 네네. 그 주소는 제가 잘못 입력했나 봐요” 하면서 경로를 다시 잡더라고요. 그 말 들었을 때는 그래도 ‘큰일은 아니구나’ 싶었는데, 문제는 시간이었어요. 이미 한참 돌아가고 있었고, 우리 지역이 아니라 좀 더 외곽으로 나가 버린 상황이라 되돌아오는 데 시간이 더 걸렸습니다. 친구는 연신 “아 진짜… 아까부터 왜 이렇게 돌아가요” 하면서 손으로 이마를 짚었고, 저는 그때부터 택시 안에서 계산기 두드리는 기분이었어요. ‘요금 얼마나 더 나올까’ 그게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거든요.
기사님은 운전하면서도 “제가 방금 말씀하신 걸 다른 곳으로 착각했습니다. 지역명이 비슷해서요”라고 덧붙였어요. 저도 그럴 수 있겠다 싶었지만, 그래도 솔직히 조금 억울하긴 했죠. 친구는 “아니 저희가 말한 게 헷갈릴 만했나요?” 하고 묻다가, 결국엔 자기 탓처럼 뉘우치더라고요. 술기운 때문에 말이 빨랐을 수도 있고, 제가 옆에서 바로 잡지 못한 것도 있겠다 싶고요. 그때부터는 서로 “미안” “아냐” 같은 말만 오갔고, 차 안은 갑자기 조용해졌습니다.
근데 이상하게도, 돌아오는 길이 시작되니까 분위기가 또 살아나더라고요. 친구가 “야 근데 이거 우리 영화 한 장면 아니냐” 하면서 웃고, 저는 “응, 술 마시면 길이 자동으로 틀어진다” 같은 농담을 던졌어요. 물론 웃긴데, 속으로는 목적지에 늦지 않게 도착해야 한다는 마음이 컸고, 기사님은 내비를 계속 확인하면서 조심조심 운전하셨어요. 결국 한 20분 정도 더 걸려서 목적지 근처에 도착했는데, 그때야 진짜 숨이 턱 풀리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요금은 예상했던 것보다 조금 더 나왔지만, 기사님이 잘못 입력했다는 걸 인정해 주신 덕분에 크게 싸우진 않았어요. 내릴 때도 “죄송합니다, 오늘 바쁘실 텐데” 같은 말이 오가고, 기사님도 “다음엔 더 정확히 말해주시면 됩니다” 하면서 웃으시더라고요. 집에 들어와서 생각해보니까, 우리가 제일 화났던 건 길이 틀어진 것보다도 ‘내가 제대로 듣고 있었나’ 하는 찝찝함이었더라고요. 그날 이후로는 택시 타면 주소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가끔 술 마시는 날이면, 그 택시 안에서 우리가 얼마나 멍청하게 같은 단어를 다른 뜻으로 받아들였는지 떠올라서, 왠지 더 조심하게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