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에서 기사님이 내 목적지를 말한 뒤 숨을 크게 들이쉬었어
택시에서 기사님이 내 목적지를 말한 뒤 숨을 크게 들이쉬었어. 그냥 운전 중인 사람처럼 보이는데, 그 순간만큼은 이상하게도 소리가 또렷했거든. “여기요.” 하고 주소를 말하자마자, 기사님이 거울을 한 번 확인하듯 내 얼굴을 보더니 그 긴 숨을 한 번에 들이켰어. 그리고는 미세하게 속도를 줄였지. 그때까진 그냥 피곤하신가 보다, 싶었어.
처음엔 별생각 없었어. 밤이었고, 비가 아주 조금씩 내려서 도로가 반들거렸어. 나는 지하철 막차 놓치고 급하게 택시 잡은 상태였고, 기사님은 택시 오래 타본 사람 특유의 “손님 태도”를 바로 읽어내는 듯했어. 목적지까지는 꽤 멀었는데, 기사님이 출발하고 나서도 내비를 확인하지 않고 계속 앞만 보더라. 이상하게도, 내비 화면은 신경 안 쓰는 눈빛이었어.
“지금 길이 막혀요. 돌아가면 조금 더 걸리긴 하는데, 괜찮으세요?” 하고 기사님이 말했을 때, 나는 그냥 “네, 상관없어요.” 했어. 그런데 그 말이 끝나자마자, 기사님이 한 번 더 크게 숨을 들이쉬더라고. 아까처럼 ‘후우-’ 하고 가슴으로 숨을 끌어넣는 느낌. 마치 내가 말한 목적지가 “여기”가 아니라 “무언가”를 의미하는 것처럼. 그 순간부터 등 뒤가 서늘해지기 시작했어.
나는 조용히 창밖을 봤어. 가로등이 지나가며 얼굴에 번쩍 비추고, 빗방울이 유리에 붙었다 떨어졌고, 도로엔 물웅덩이가 군데군데 있었어.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목적지 근처로 접근할수록 도로 표지판이 점점 흐려지는 것 같았어. 실제로 비가 더 왔던 것도 아닌데, 유리창의 물기만 이상하게 더 많아졌고, 나는 그걸 닦을 생각도 못 했어. 손이 굳어버린 느낌이랄까.
잠깐 정차한 신호에서, 기사님이 내 쪽으로 고개를 아주 조금 돌렸어. 눈을 마주쳤는데, “안 괜찮으세요?” 같은 말이 나오지 않았어. 대신 기사님이 아주 낮게, 마치 혼잣말처럼 중얼거렸거든. “말을 맞췄네.” 그게 무슨 소리인지 못 알아듣겠는데, 목소리 톤이 너무 확신에 가까웠어. 나는 웃으면서 “뭐요?” 하고 되물으려다가, 그 질문이 입 밖으로 나오기 전에 신호가 끝났어.
그 다음부터 택시 안 분위기가 이상하게 조용해졌어. 라디오도 꺼져 있었고, 에어컨 바람도 세게 틀어놓은 상태였는데 땀이 조금씩 식는 느낌만 들었어. 기사님은 운전대를 잡은 손을 한 번도 크게 움직이지 않았고, 회전할 때도 아주 부드럽게 꺾었어. 그런데 그 부드러움이 ‘숙련’이라기보다 ‘반복된 동선’ 같아. 내가 목적지를 말하기 전부터 이미 그 길을 알고 있었다는 느낌. 더 무서운 건, 그 길이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는 거야.
몇 번이나 내비 경로를 다시 보려고 했는데, 화면이 꺼져 있더라. 화면이 꺼진 줄 알았는데 그냥 검은색이 아니라, 마치 다른 화면이 덮인 것처럼 반사가 이상했어. 내가 휴대폰으로 위치를 확인하려고 하니까, 신호가 너무 약해서 로딩이 오래 걸렸고, 택시 안에서는 휴대폰이 자꾸만 ‘통신 불가’ 쪽으로 걸리는 느낌이 있었어. 그때 내가 너무 늦게 깨달은 게, 기사님이 목적지를 말한 “직후”에 바로 숨을 들이쉰 게 아니라, 내가 목적지를 말하기 전부터 뭔가를 알고 있었다는 거였어.
목적지 근처라고 생각되는 어두운 골목으로 들어갔을 때, 기사님이 다시 한 번 크게 숨을 들이쉬었어. 이번엔 아까보다 더 길었고, 마치 준비한 사람처럼 타이밍이 맞았어. 그리고는 “여기서 내리셔도 돼요.” 하고 말했지. 그런데 내가 내리려던 그 지점엔 가게도 없고, 사람도 없고, 전부 빈 건물처럼 보였어. 내가 알던 주소랑 전혀 달랐거든. 나는 “여기가 아닌데요” 하고 말하려고 했는데, 기사님이 손을 살짝 들어서 내 말을 막는 제스처를 했어. 그 손등에 작은 흉터들이 줄처럼 이어져 있었는데, 나는 그게 왜 그렇게 또렷했는지 모르겠어.
결국 나는 요금을 계산하려고 현금도 챙기고 카드를 꺼내려 했어. 그런데 기사님이 먼저 영수증 종이를 손에 쥐고 있었고, 금액도 미리 찍어둔 것처럼 숫자가 딱 고정돼 있었어. 마치 내가 “여기”라고 말할 때부터 계산이 끝난 상태 같았지. 그래서 나는 정말로 무심코, “기사님, 아까 목적지요?” 하고 물었어. 그랬더니 기사님이 웃지도 않고, 숨을 한 번 더 들이쉬더니 대답했어. “말한 대로 갔잖아요.” 그 말이 너무 단정해서, 오히려 내가 틀린 사람처럼 느껴질 정도였어.
내가 택시 문을 열고 내렸을 때, 비는 거의 그쳐 있었는데도 손끝이 계속 젖어 있었어. 뒤를 돌아보니 기사님은 이미 거울로 내 얼굴을 확인하고 있었고, 차는 출발 준비가 된 상태였어.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도, 내 목적지를 들은 순간부터 계속 따라다니던 느낌이 그제야 조금 정리되는 걸 느꼈어. 그 숨이 단순한 피곤함이 아니라, “이 손님이 말한 곳으로 넘어가도 되는지” 확인하는 것 같았거든. 지금도 가끔 택시 타기 전에 주소를 생각하면서, 혹시 내 입이 먼저 누군가의 숨을 끌어당기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