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주차장에 내 발자국만 반대로 이어져 있는 날이 있어
지하주차장에 내 발자국만 반대로 이어져 있는 날이 있어
그날도 퇴근하고 지하주차장 계단에서 올라오다 말고, 평소처럼 차 빼려고 내려갔어. 엘리베이터를 안 타면 늘 같은 바닥을 밟게 되잖아.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려가는 순간부터 발밑이 너무 선명하게 느껴졌어. 바닥에 먼지랑 물기가 섞인 것처럼 보이는데, 내 신발 자국이 “찍히는” 게 아니라 “그려지는” 느낌이랄까.
주차장 도착하자마자 나는 습관처럼 바닥을 한번 훑었어. 자갈처럼 뭉친 먼지 사이로 발자국이 이어지는데, 내가 걷는 쪽으로는 아무 것도 생기지 않았거든. 대신 내가 방금 지나온 방향으로, 방금 전보다 더 또렷한 자국이 길게 이어졌어. 분명히 나는 뒤돌아보지 않았는데도 말이야.
처음엔 그냥 조명 때문인 줄 알았지. 지하라 형광등 각도가 미묘하면 바닥이 반사되기도 하니까. 근데 발자국 방향이 이상했어. 내가 걸어온 길은 계단 쪽에서 차 쪽으로 가는 방향인데, 바닥에 생긴 자국은 마치 반대로 이어지는 것처럼 보였어. 내 발 앞에는 자국이 생기지 않고, 내 발 뒤쪽에만 선이 길어지는 느낌. 몇 번 걸음을 더 옮기니까 그게 더 확실해졌어.
나는 멈춰서 신발 끝으로 바닥을 한번 건드렸어. 그러자 먼지 덩이가 살짝 떨어지면서, 기존에 보이던 자국들이 한 박자 늦게 정리되는 것 같았거든. 마치 누군가가 지우개로 문장을 고치듯, 내 발자국이 뒤에서부터 다시 써지는 기분이었어. 물론 나는 누가 있나 확인하려고 고개를 돌렸지. 그런데 그 층은 내가 내리는 길뿐이었고, 차들 사이를 봐도 사람 그림자는 없었어.
그때 휴대폰 배터리가 10%쯤 남아 있었는데, 화면 밝기를 낮추고 다시 확인하려던 찰나였어. 이상하게도 내가 차 쪽으로 걸어가면 갈수록, 바닥에 이어진 자국이 더 빨리 쌓였어. 내가 멈추면 자국도 잠깐 멈췄고, 내가 다시 움직이면 그 길이 내 뒤로 계속 길어졌어. 그런데 방향은 계속 “되돌아가는 쪽”이었어. 내가 뒤로 걸은 적이 없는데도, 자국은 마치 내가 후진하듯 계단 쪽으로 늘어졌지.
나는 결국 차에 타서 시동을 걸고 밖을 보며 확인했어. 창문 너머로 바닥이 희미하게 보였는데, 내 발자국이 계단 방향을 향해 이어지고 있었어. 그리고 이상한 건, 그 자국이 내 차 위치에서 끝났다는 거야. 차 문을 열어 내릴 때까지, 자국은 딱 그 지점에서 끊겨 있었어. 내가 차에서 내린 직후에도 자국은 이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새로 생겨야 할 내 현재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어. 내가 손바닥으로 먼지를 쓸어도 흔적이 안 남더라. 마치 “기록”을 다른 곳이 가지고 있는 것처럼.
그날 이후로 나는 지하주차장 계단에서 내려올 때마다 일부러 조심했어. 걸음도 천천히, 신발도 바닥에 세게 끌지 않게. 그런데 같은 일이 몇 번 더 반복됐어. 어느 날은 아예 처음 내려갈 때부터 내 자국이 뒤로 이어져 있었고, 또 어느 날은 반대로 내 자국이 한참 뒤에서부터 따라붙는 느낌이었어. 문제는 그게 항상 “내가 움직이기 전”에 먼저 감지된다는 거야. 내가 정신 차리고 걷는 순간, 이미 발자국의 방향이 정해져 있는 느낌.
그래서 결국 나는 그 층에서만 유독 자꾸 이런 일이 생긴다고 생각했어. 회사 건물 지하주차장은 층마다 구조가 조금씩 달라서, 같은 동선이어도 조명 각도나 통풍이 다르거든. 그날도 나는 그 층을 피해서 다른 층으로 옮겨 탔는데, 집에 가는 길에 문득 거울을 보니까 신발바닥이 이상하게 깨끗했어. 분명 지하 바닥에 닿았을 텐데, 내 발바닥엔 먼지가 거의 없었거든. 반대로 신발옆 고무 홈에는 바닥 먼지가 아주 얇게 끼어 있었고, 그게 마치 바닥에서 떼어낸 게 아니라 다른 데서 “옮겨진” 것처럼 보였어.
그리고 가장 소름이었던 건 마지막 날이야. 퇴근하고 내려가는데, 계단 입구에서부터 바닥이 이상하게 정돈돼 있었어. 먼지 하나 없는 것처럼 반짝거리는데, 그 반짝임 사이로 아주 가는 선이 보여. 내 발자국이 아니라, 내 발자국이 “어디로 이어질지” 미리 그려진 것 같은 선. 나는 그걸 보는 순간 멈췄고, 그때 뒤에서 차키 소리도 안 나는데 문득 생각이 들었어. 내 발자국은 내가 걷고 있어서 생기는 게 아니라, 누가 내 뒤를 보고 있는 동안만 이어지는 거 아닐까. 그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자, 선은 정확히 내가 갈 길을 따라 끊겼고, 나는 아무도 없는 지하주차장에서 한동안 소리를 삼켜야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