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진료받기 전부터 내 팔에 작은 멍이 보였어
병원에서 진료받기 전부터 내 팔에 작은 멍이 보였어. 처음엔 그냥 부딪힌 거겠지 싶었는데, 이상하게도 멍이 생기는 속도가 너무 빨랐고 모양도 제멋대로였어. 약을 먹거나 운동을 한 것도 아니었고, 그날 나를 누른 기억은 없었거든.
나는 근처 내과에 감기 몸살이랑 어지럼 때문에 가려고 했어. 접수할 때도 손을 휘적휘적 움직였는데, 유독 팔 안쪽이 신경 쓰이더라. 손가락 한 마디만 한 갈색 점들이 한두 개가 아니라, 마치 누가 지도처럼 찍어놓은 것처럼 여러 개가 띄엄띄엄 보였어. 누르면 아프긴 한데, 멍치고는 통증이 애매했어. 아프다기보단 ‘간지럽고 묘하게 뜨거운 느낌’에 가까웠어.
진료실에 들어가기 전 간호사가 혈압을 재면서 “멍 있으세요?”라고 물었어. 나는 얼른 웃으면서 “어제쯤 부딪힌 것 같아요”라고 넘겼지. 근데 간호사가 잠깐 손전등처럼 휴대폰 플래시를 켜서 팔을 비추더니 표정이 미세하게 굳었어. 뭐가 대단히 심각하단 말은 안 했지만, 그 공기만큼은 분명 달라졌어. 그때부터 내 속이 조금씩 꼬이기 시작했어.
의사 선생님은 피검사를 권했어. “최근에 출혈 있었던 적 있나요? 코피, 잇몸, 생리 양이 갑자기 많아졌다든지요.” 나는 없다 했고, 멍이 왜 이렇게 생겼는지 설명해보려 했는데 말이 잘 안 나왔어. 진짜로 기억이 없었거든. 팔을 자세히 보면서도, ‘어디에 부딪혔지’ 하는 장면이 머릿속에서 딱 끊겨 있었어. 마치 그 부분만 누군가 지워놓은 느낌.
피검사 채혈은 금방 끝났는데, 검사 결과 나올 때까지 대기실에서 기다리게 됐어. 대기실은 생각보다 조용했어. 사람들이 다들 휴대폰만 보고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누군가 한 번씩 같은 시간 간격으로 종이를 접었다 펴더라고. 처음엔 신경 안 썼는데, 멍이 신경 쓰이니까 그 행동이 더 눈에 들어왔어. 종이가 ‘후드득’ 하고 접히는 소리가 계속 반복되는 거야. 누군가 메모를 정리하는 소리겠지 싶었는데, 그게 너무 규칙적이어서 자꾸 머리가 따라갔어.
집에 가는 길에 보니까 멍이 더 늘어있더라. ‘늘었다’기보단, 아침에 없던 점들이 저녁 즈음에 새로 찍힌 것처럼 생겨 있었어. 손바닥을 문지르면 피부 표면이 살짝 울퉁불퉁하게 느껴졌고, 색이 짙은 보라와 갈색 사이를 오가며 번졌어. 나는 급하게 다시 내과에 전화했는데, 통화가 연결되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어. 연결된 뒤에도 “오시는 게 좋겠습니다” 같은 말이 짧게 떨어지고, 그 뒤로는 상담이 매끄럽지 않았어. 내가 묻는 말이 중간에 끊기는 느낌이 있었거든.
다시 병원에 갔을 때, 진료실 문 앞에서 내 차례를 기다리는데 누가 뒤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았어. 근데 돌아보면 아무도 없었고, 복도 끝에서 간호사 한 명이 장비를 들고 지나가더라. 나는 혹시 착각인가 싶었지만, 그 간호사가 팔을 봤을 때 또 똑같이 표정이 굳었어. 검사 결과지에는 ‘혈소판 관련’ 같은 말이 어렴풋이 적혀 있었고, 의사는 조심스럽게 “원인 확인이 필요합니다”라고 했어. 그 순간부터 멍이 단순히 부딪힌 게 아니라는 걸, 내 몸이 먼저 말해주는 것 같았어.
그런데 더 이상했던 건, 진료가 끝난 뒤에도 멍이 계속 ‘생기는 시간’이 정해져 있었다는 거야. 밤 10시쯤이면 점들이 늘어났고, 새벽 2시쯤이면 색이 진해졌다가, 아침에는 또 한 번 이상하게 정돈된 듯해. 마치 누군가 피부 아래에서 작은 점을 찍고, 색을 칠한 다음, 일정표대로 정리를 해두는 것처럼 보였어. 물론 그럴 리 없지, 그건 내 망상이겠지. 근데 내 눈으로 본 패턴이 너무 반복됐어.
마지막으로 의사가 “특정 약이나 검사 결과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서, 당분간은 여기서 추적 관찰할 겁니다”라고 말했을 때, 나는 갑자기 대기실이 떠올랐어. 그 종이를 접었다 펴는 소리, 그리고 규칙적인 간격. 혹시 그때부터 누군가 내 상태를 확인하듯 시간을 맞추고 있었던 걸까. 물론 말도 안 되겠지. 그런데 집에 돌아와 팔을 씻는데도, 멍 속에 미세한 선 같은 게 보였어. 점들이 그냥 퍼진 게 아니라, 길처럼 이어져 있어서 소름이 확 돋았어. 멍이 사라지는 날이 오긴 했는데, 그 선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는 꽤 오래 걸렸고, 그 이후에도 난 병원 복도만 지나가면 팔이 먼저 간지러워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