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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에서 내가 고른 컵이 다른 사람이 마신 자국처럼 보였어

2026-09-25 00:29:11 조회 6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편의점에서 내가 고른 컵이 다른 사람이 마신 자국처럼 보였어. 그냥 이상하다 싶어서 넘어가려 했는데, 계산하고 나서도 손에 들린 컵이 계속 신경 쓰이더라. 그날은 비가 와서 사람도 많았고, 나도 급하게 물이랑 간단한 걸 사서 나가려던 참이었어.

편의점 안에 들어가자마자 진열대 앞에서 한참 고민했어. 냉장 코너 쪽엔 음료들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난 컵에 담긴 커피 같은 게 당기더라. 컵 뚜껑이 있는 타입이라 위생 괜찮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문제는 내가 집어 든 컵이었어. 컵 옆면이 손때처럼 매끈한 게 아니라, 투명한 액체가 마른 것 같은 얼룩이 얇게 번져 있었거든. 처음엔 담배 냄새 같은 건가 싶었는데, 냄새까지 따라오는 느낌은 아니었고 그냥 “누가 이미 마셨다가 다시 넣어둔” 느낌이었어.

진열대 아래쪽엔 비슷한 컵들이 여러 개 있었고, 나는 가장 위에 있는 걸 집었어. 그런데 컵을 손으로 살짝 잡는 순간, 플라스틱 표면이 이상하게 미끄럽게 느껴졌어. 손을 자세히 보진 않았는데, 손가락 끝이 차갑고 축축한 느낌이 들었고, 그게 물기인지 뭔지 몰라서 잠깐 멈칫했지. 그래도 “설마” 싶어서 다른 컵을 다시 집었어. 이번엔 얼룩이 덜한 컵이었고, 뚜껑을 닫아둔 상태라 그냥 마음 정리하고 계산대로 갔어.

계산할 때 점원이 컵을 바꿔 담지도 않았고, 그냥 내가 든 걸 그대로 찍더라. 카운터 위가 좀 어두워서 확실히 보이진 않았는데, 내가 원래 집었던 컵이 어디로 갔는지 떠오르지 않아. 그 순간에도 바코드 찍는 소리랑 결제음이 겹치면서, 그냥 내 기분 탓인가 싶었어. 영수증을 받고 나오는데, 문 앞 유리창에 비친 내 손이 조금 느리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거든.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때부터 뭔가 “이미 끝났는데도 남아있는 찝찝함”이 끈질기게 따라왔어.

집에 가서 마시려고 컵을 열었는데, 뚜껑 안쪽에 미세한 줄 같은 게 보였어. 이게 원래 제품에서 나오는 마감 자국일 수도 있는데, 내가 보기엔 분명히 ‘한 번 마신 뒤 다시 닫은’ 흔적 같았어. 향을 맡아보니 커피 냄새는 정상인데, 뒷맛이 조금 밍밍했거든. 보통은 달짝한 게 남아있어야 할 것 같은데, 마신 뒤 공기랑 섞인 느낌이랄까. 한 모금 마시자마자 바로 알았어. 내 컵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어서, 삼키는 걸 잠깐 멈췄지.

그래서 다시 뚜껑 안쪽을 한 번 더 봤어. 눈에 띄는 큰 얼룩은 없었는데, 원형으로 얇게 닦인 듯한 흔적이 있었어. 컵이 투명한 편이라 안쪽을 비추면 더 선명해지는데, 그때 내 시야에 “입술 닿았을 법한 위치”랑 얼룩이 대충 겹치더라. 누가 완전히 마시고 그냥 버린 게 아니라, 조금 마시고 뚜껑만 닫아서 다시 진열해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물론 그게 가능한 동선인지, 누가 굳이 그럴 이유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느낌은 그렇게 굳어졌어.

근데 여기서 이상한 건, 내가 두 번째로 집은 컵도 완전히 안심이 안 됐다는 거야. 계산하고 나오면서 가방에 넣는 동안, 내 손이 한 번 더 컵 표면을 스쳤거든. 그때 손끝에 똑같은 축축함이 아주 짧게 남아 있었어. 그래서 진짜로 처음에 집었던 컵과 두 번째 컵이 바뀐 건지, 아니면 누군가 진열대에서 장난 비슷한 걸 한 건지 머리가 복잡해졌지. 다음날 출근길에 그 편의점에 다시 들러서, 그냥 진열 상태만 확인했어. 근데 진열대 위쪽에 있던 비슷한 컵들이 전부 새것처럼 반짝였고, 얼룩이 보일 정도의 표면 상태는 아니었어.

그래서 더 소름이 돋았어. 어제 내가 본 얼룩이 진짜로 남아있지 않았다는 게 아니라, 누군가 이미 정리하고 숨긴 것처럼 느껴졌거든. 누가 그걸 봤는지, 아니면 내가 집었던 컵이 회수된 건지. 그날 밤부터 유독 컵 뚜껑의 ‘딱’ 닫히는 감각이 머릿속에서 반복됐어. 단순히 찝찝해서가 아니라, 누군가가 나를 관찰하고 기다린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잠을 설쳤다.

지금도 그 컵이 정확히 어떻게 된 건지 확신은 없어. 다만 편의점 진열대에서 무심코 잡은 물건이, 내 손을 거쳐 ‘이미 다른 누군가의 시간’을 통과해 들어온 것처럼 느껴졌다는 게 계속 남아. 다음에 누가 컵 음료를 고르더라도, 난 뚜껑 안쪽이랑 옆면을 한 번 더 보게 될 것 같아.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날 이후로는 “내가 고른 건 내가 고른 게 맞나”를 자꾸 생각하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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