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차로 픽업 온다고 해놓고 ‘대리운전’ 부른 썰
오랜만에 집안 행사가 있어서 나도 모처럼 단정하게 나가려는데, 가족이 “차로 픽업 온다”는 말을 먼저 했잖아요. 정확히는 엄마가 전화로 “XX번 출구 앞에서 기다려. 금방 데리러 간다” 이러고 끊었고, 저는 또 괜히 깔끔한 신발까지 신은 상태로 30분 동안 출구 앞만 왔다 갔다 했습니다.
처음엔 설마 늦겠어 싶어서 시계만 봤는데, 20분이 더 지나도 차 소식이 없더라고요. 저는 연락할 타이밍을 놓치면 또 잔소리 들어올까 봐 바로 전화했어요. 근데 또 “지금 출발했어”라는 말만 반복되고, 위치 공유 같은 건 없고, 결국엔 “조금만 더 기다려”로 마무리됐습니다.
그때 제가 제일 당황했던 건, 그날 제가 타고 가야 하는 일정이 있었고—무엇보다도 제가 이미 외출 준비를 거의 다 끝낸 상태였다는 거예요. 머리도 말리고 옷도 다 갖춰서 나왔는데, 집에서 차가 오기만 하면 끝날 줄 알았으니까요. 그런데 계속 기다리다 보니 손도 차가워지고, 사람들은 줄줄이 지나가는데 저는 출구 앞에 서서 멍하게 서 있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결국 한참 뒤에야 전화가 왔는데, 엄마 목소리가 조금 들떠 있었어요. “아, 미안 미안. 아버지가 차가 좀 막혀서… 대리 부를게.” 그 순간 제 머리가 하얘지더라고요. 대리운전? 저희 집이 대리운전을 부르는 집안도 아니고, 제가 픽업을 기다리고 있던 이유가 “차로 데리러 온다”였는데, 그게 왜 대리로 바뀌는지 이해가 안 됐습니다.
그래도 뭐, 가족이니까 설마 큰 문제는 없겠지 싶어서 “아, 그래요?” 하고 넘어갔죠.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한 번 더 생겼습니다. 대리가 오긴 왔는데, 주소가랑 위치가 살짝 어긋나서 기사님이 “여기 말고 다른 쪽인가요?”라고 문자를 주신 거예요. 저는 기사님이랑 위치 조율을 하면서, 동시에 엄마한테도 계속 “어디쯤이에요?”를 묻게 됐습니다. 엄마는 또 “아까 출구 앞이라고 했잖아”라고 하면서도, 정작 기사님은 다른 방향을 보고 있었던 거죠.
그 와중에 저는 예의상 기사님께도 예를 갖추고 싶고, 가족한테도 화내고 싶지 않아서 되게 얌전히 행동했어요. 기사님은 친절하게 “손님 맞으세요?” 확인하고는 제 얼굴을 딱 보고 “아, 여기 앞이 맞네요”라고 하셨습니다. 근데 저는 그 말이 나오는 순간, 안도의 한숨이 나오면서도 동시에 뭔가 웃기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차로 픽업’이 ‘대리운전’으로 번지면서, 제가 대리 기사님을 매개로 길찾기 미션을 수행하고 있는 느낌이었거든요.
차에 타자마자 잠깐 정적이 왔는데, 저는 속으로 계속 생각했어요. 가족은 “픽업”이라고 말했고 저는 그걸 믿었는데, 실제로는 대리 기사님이 와서 제 자리에 데려가고, 차 안에서 저는 또 가족과 연락을 이어가야 하는 상황. 게다가 비용은 또 어떻게 처리되는지, 기사님이 결제는 어떻게 하시는지까지 제가 신경을 써야 하잖아요. 그동안 저는 그냥 “기다리면 되겠다”라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제가 다 맡아서 해결하는 역할이 되어버린 거죠.
도착해서 내리면서도 찜찜함이 남았어요. 저는 가족한테 “처음엔 차로 온다더니 왜 대리야?”라고 말하려다, 타이밍을 놓치면 또 말싸움으로 번질까 봐 그냥 “다음부터는 위치 공유나, 부를 거면 미리 말해줘요” 정도로 가볍게 정리했거든요. 그랬더니 엄마는 “그게 급하게 바뀌어서 그래”라고 했고, 아버지는 “미리 말할 새가 없었다”는 식으로 말했는데, 저는 솔직히 그 말이 잘 납득이 안 되더라고요. 급해도 설명은 가능하잖아요. 결국은 제가 출구 앞에서 시간을 태운 게 사실이니까요.
그날 이후로 저는 가족 픽업이든 뭐든 “차로 온다”라는 말을 들으면, 최소한 기사님 부를 수도 있는 상황까지 염두에 두게 됐어요. 뭐든 ‘변수’가 생길 수 있다는 걸 알게 됐고, 그 변수가 제 시간을 갉아먹지 않게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달까요. 그래도 이상한 건, 그날의 당황이 너무 웃겨서 가족이랑 말할 때마다 한 번씩은 “대리 픽업”이라고 놀리게 된다는 거예요.
집에 돌아와서 생각해보면, 그날 제가 정말 화났던 건 대리운전 자체가 아니라 “기다리게 만든 방식”이었더라고요. 말 한마디가 늦으면 하루 컨디션이 통째로 흔들린다는 걸, 그날 몸으로 배웠습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든 ‘픽업’은 결국 누군가의 배려로 오는 거니까, 다음엔 누가 오든 미리 서로 정확히 맞춰서 기다릴 일은 줄여보자는 마음으로 오늘도 조용히 연락을 더 꼼꼼히 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