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기인지 그냥 관심이 식은 건지 모르겠어
나 지금 권태기인지, 그냥 내가 상대한테 관심이 식은 건지조차 헷갈려서 글로 풀어보려고 해. 제목부터 좀 이상하지? 근데 진짜 그래. 연애 시작했을 때는 사소한 말도 다 설레고, 연락 텀도 하나하나 챙겨 보던 사람이 어느 순간부터는 “아 오늘도 연락할까” 같은 생각이 먼저 들더라.
우리는 1년 반 정도 만났고, 서로 성격이 잘 맞는 편이었어. 초반엔 카톡만 해도 웃긴 포인트가 계속 나왔거든. “오늘은 뭐 먹었어?” 이런 질문도 왜 그렇게 재밌었는지 모르겠어. 근데 최근 몇 달 사이에 대화가 점점 얕아졌어. 내가 뭘 물어보면 상대가 답은 해주는데, 그 다음 이어지는 얘기가 없어. 예전엔 상대가 먼저 “너는?” “근데 너 생각은 어때?” 이런 식으로 던져줬는데, 지금은 내가 질문을 끊임없이 만들어야 겨우 이어지는 느낌이랄까.
예를 들면, 저번 주에 내가 “오늘 비 오네, 퇴근길 조심해”라고 보냈거든. 상대는 “응, 우산 챙겼어”라고 답하고 끝. 나는 그 뒤에 “비 오니까 집이랑 가까운 데서 밥 먹을까?” 같은 얘기를 붙였는데, 상대가 “그런데 오늘은 그냥 집에서 먹을까 해”라고 짧게 마무리하고 읽고는 한참 뒤에 또 다른 일상 사진 하나 올리고 끝이었어. 예전 같으면 그 사진 올리면서 “이거 너 좋아할 것 같아서” 이런 말이 붙었을 텐데, 지금은 그냥 올리고 끝. 내가 뭘 잘못했나 싶어서 “사진 맛있어 보인다! 너는 뭐 먹어?”라고 물어봐도 답은 친절한데 따뜻함이 조금 덜해.
문제는 그게 한두 번이 아니더라. 주말 약속도 예전엔 “우리 뭐 해볼까?”로 시작했는데, 요즘은 “그래, 뭐 하면 돼?” 혹은 “나는 그냥 쉬고 싶어”로 흘러가. 물론 상대가 쉬고 싶을 수는 있지. 그런데 그 말이 나오고 나면 내가 뭘 제안해도 다 “응” 정도로 정리가 돼. 같이 밥 먹고 산책하는데도 대화가 끊기면, 예전엔 상대가 먼저 텐션을 살렸는데 지금은 그냥 조용히 걷고 끝. 그 조용함이 편할 때도 있지만, 요즘은 이상하게 ‘거리’처럼 느껴져.
내가 제일 흔들렸던 건 표정이었어. 카톡에서 장난 섞인 말 보내면 예전엔 이모티콘이랑 함께 바로 받아줬는데, 요즘은 반응이 느려. 그리고 오프라인에서 만났을 때도 예전엔 날 보자마자 “왔어? 나 기다렸어” 같은 말이 먼저 나왔는데, 요즘은 그냥 “어, 왔어”가 먼저 나와. 별거 아닌 것 같은데 그 차이가 마음에 남더라. 그래서 내가 괜히 예민해졌나 싶어서, “나 요즘 좀 서운한데”라고 말하기도 전에 내 마음을 먼저 점검하게 돼. 그런데 점검할수록 결론이 잘 안 나와. 상대가 나를 싫어해진 건지, 그냥 피곤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내가 기대를 내려놓는 법을 잊은 건지.
그래서 한 번은 직접 물어봤어. 지난달에 우리 둘 다 일이 좀 바빠서 텀이 길어진 날이 있었거든. 저녁에 “보고 싶다”라고 보냈더니 상대가 “나도 보고 싶어. 요즘 좀 정신없어서 미안”이라고 답하더라. 그래서 “그럼 우리 이번 주에 시간 맞춰서 제대로 놀자”라고 했고, 상대도 “응 알겠어”라고 했어. 그런데 막상 약속 잡는 톡을 하려고 하니까 상대가 “내가 이번 주에 언제 되는지 아직 몰라”라고 하더니, 결국 하루 전에 “오늘은 피곤해서 좀 쉬어야 할 것 같아”로 바뀌었어. 물론 힘들면 쉬는 게 맞지. 근데 그 사이에 ‘대체 언제’ 같은 대안 제시는 없었어. 나는 그걸 보고 ‘아, 상대는 관계를 조정하려는 마음이 예전만큼 없구나’라고 느꼈어.
그날 밤에 내가 카톡에 뭘 길게 보내고 싶었는데, 참았어. 대신 “알겠어. 푹 쉬어. 나도 내일은 좀 일 정리할게”라고 짧게 보내고 넘겼거든. 근데 다음 날 아침에 상대가 “어제 미안”이라고 한 줄만 보내는 거야. 그 한 줄이 고맙다가도, 왜 갑자기 미안해졌는지 이해가 안 돼. 미안하다는 말은 결국 ‘관심이 줄어든 것에 대한 변명’처럼 들릴 때가 있더라. 내가 정말 듣고 싶은 건 미안함이 아니라 “우리 얘기 좀 하자” 같은 방향이었는데, 그런 건 없으니까 더 헷갈려.
요즘 내가 스스로에게 제일 많이 하는 말이 “이게 권태기야, 아니면 그냥 내 마음이 식는 거야?”야. 예전엔 작은 이벤트에도 들뜨고, 상대가 피곤하다 하면 걱정이 먼저였는데, 지금은 상대의 반응을 보고 내가 상처받는지부터 체크하게 돼. 그리고 그 체크하는 습관 자체가 무섭더라. 내가 관계를 사랑하는 방식이 점점 ‘감시’처럼 변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그러다 보니 대화도 자연스러워지지 않아. 카톡을 보내도 답이 빨리 안 오면 내가 먼저 마음이 철렁 내려가고, 그러면 또 내가 상대에게 딱딱해져.
그래서 요즘은 딱 한 가지를 해보려고 했어. 아무 말 안 하고, 아무 요구 안 하고, 그냥 “오늘 하루 어땠어?”만 물어보는 거야. 상대가 답해주면 그걸로 이어가되, 내가 서운함을 굳이 밀어 넣지 않게 조절해. 지난주엔 상대가 “오늘은 생각보다 일찍 끝났어. 너는?”이라고 물어봐줬고, 나는 그 질문이 너무 고마웠어. 근데 그 다음 이어지는 대화가 길어지진 않았어. 그냥 좋은 순간이 잠깐 왔다가 사라진 느낌. 그래서 더더욱 모르겠어. 이게 잠깐의 회복인지, 아니면 다시 멀어질 서막인지.
나는 아직 완전히 마음을 접은 건 아닌 것 같아. 다만, 예전처럼 확신이 안 생기는 게 문제야. 우리 둘 사이에 뭐가 고장 났는지 말로 정리하고 싶은데, 막상 마주 앉으면 “아냐, 별일 아니야” 같은 말만 나오게 돼. 그래서 이 글을 쓰면서도 마음속에 질문이 남아. 혹시 상대도 나랑 똑같이 헷갈리고 있는 건 아닐까. 아니면 내가 먼저 멀어지고 있어서 상대도 따라 멀어지고 있는 걸까. 어떤 쪽이든, 결국 관계는 ‘한 번의 대화’로 끝나지 않더라. 조용한 일상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다시 찾는 시간들이 필요할 것 같아. 이번엔 그 시간이 우리한테도 찾아왔으면 좋겠고, 아직 늦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