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최신글
자유/잡담 괴담 추천 0

택시에서 기사님이 ‘여기까지는 제가 책임 못 져요’라고 했어

2026-09-27 00:29:13 조회 2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택시에서 기사님이 “여기까지는 제가 책임 못 져요”라고 했어. 그 말이 농담처럼 들렸는데, 이상하게도 막 출발한 지 얼마 안 됐는데도 뒷목이 서늘해지더라. 나는 목적지만 말하고 기사님은 별다른 질문 없이 내비를 켰는데, 신호 한 번 지나고 나서 갑자기 속도를 줄이더니 그 문장을 툭 던졌어.

“어디쯤부터요?” 내가 되물으니까 기사님은 거울을 한 번 보고는 “아, 여기서부터는요. 제가 책임을 못 져요”라고만 했어. 보통 택시 기사님들이 요금 문제나 거리 문제로 말하는 톤이랑은 달랐고, 목소리가 단단하다기보다 ‘조심’하는 느낌이었어. 나는 그냥 길이 헷갈리나 보다 싶어서 웃어넘기려 했는데, 기사님은 핸들을 더 천천히 돌리면서도 내 쪽을 계속 보더라.

그때 창밖을 보니 도로가 약간 이상했어. 평소에 다니던 길이랑 다르게 가로등 간격이 멀고, 주변이 유난히 비어 있었거든. 도심이라고 하기엔 너무 조용했고, 그렇다고 시골이라고 하기엔 도로가 멀쩡해서 더 어색했어. 기사님은 “여기 지나가면 안 됩니다” 같은 말도 안 했는데, 네비는 계속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어. 나는 그냥 빨리 목적지 가자고 했는데 기사님은 더 굳어졌어.

“혹시 기사님, 지금 내비가 이상하게 나오는 건가요?” 내가 장난 반 진담 반으로 묻자 기사님이 한숨을 쉬더니 그제야 조용히 말했어. “네비가 가리키는 길… 그 길은 자꾸 바뀝니다. 바뀌는 동안은 사람이 책임지기 어려워요.” 말이 너무 이상해서 나는 한 번 웃고 말았는데, 웃고 나서도 입안이 마른 느낌이 들더라.

내가 더 캐묻기 전에, 기사님이 핸드폰 화면을 잠깐 보여줬어. 지도 앱이 아니라 문자 같은 걸 열어놓은 상태였고, 누군가 “택시 기사님, 여기로 들어오지 마세요” 비슷한 문구를 반복해서 보내는 것처럼 보였어. 근데 동시에 시간 표시가 이상했어. 몇 분 전, 몇 분 전… 같은 시간이 계속 뜨는데, 그 사이에 숫자만 바뀌는 것 같았거든. 나는 화면을 오래 보지 않으려 했는데도 눈에 걸렸어.

그 다음부터는 진짜로 이상해졌어. 차가 어느 구간을 지나자, 계기판 불빛이 잠깐씩 꺼졌다 켜졌다 했고, 에어컨 바람 소리만 유난히 커지더라. 그 소리가 마치 누가 차 안에서 숨을 고르는 것처럼 들렸어. 기사님은 아무 말 없이 손만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었고, 나는 괜히 뒤를 돌아보게 되더라. 뒷좌석은 아무도 없었는데도 등줄기가 계속 간질거렸어.

나는 결국 “기사님, 그럼 어디서 내려드릴까요?” 하고 물어봤어. 그때 기사님이 처음으로 확실한 표정을 지었는데, 웃지 않는 얼굴이었어. “여기서 내려서 걸어가세요. 전 그냥 여기까지만… 끝까지는 책임 못 져요.” 그리고 아주 조용히 덧붙이더라. “내가 한 번 더 가면, 그 다음부터는 누가 타고 있는지 제가 알 수가 없어요.” 무슨 말인지 정확히는 못 알아들었는데, 설명을 들을수록 더 무서워지는 종류의 말이었어.

차가 완전히 멈춘 건 아니었는데 문이 열리더라. 기사님이 문을 열면서도 내비를 보던 시선이 조금 흔들렸어. 그 구간엔 표지판이 거의 없었고, 가로등 아래만 희미하게 길이 보였어. 나는 돈부터 계산하려 했는데, 기사님이 손을 내저었어. “현금이면 상관없는데 카드 결제는… 그쪽이 자꾸 찍혀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그냥 지갑을 열었고, 카드 대신 현금을 꺼내려고 했지. 그 찰나에 내 손이 멈칫했어. 택시 미터기 숫자가 계속 올라가는데, 시간은 이상하게 흐른 느낌이었거든.

문을 통해 바깥을 보는데, 신기하게도 바깥 소음이 차 안보다 더 선명했어. 멀리서 발자국 소리 같은 게 들리는데, 걸음이 정확히 어디서 시작되는지 알 수가 없었어. “누가 뒤를 따라오는 건가?” 싶었는데 돌아볼 용기가 안 나더라. 나는 그냥 기사님이 가리킨 쪽으로 한 발 나왔고, 그 순간 기사님이 “타지 마요”라고 짧게 말했어. 뒤돌아보기 전에 차 문이 스르륵 닫히는 소리만 남았고, 택시는 천천히 출발했어.

그 뒤로는 내가 걷는지 뛰는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정신이 멍했어. 목적지까지 가는 길은 분명 내비대로라면 얼마 안 걸려야 했는데, 이상하게도 골목이 늘어나고 신호가 반복되더라. 휴대폰 네비는 계속 “목적지 도착”을 띄우면서도 실제로는 도착이 안 됐고, 시간이 자꾸 되감기는 느낌이 들었어. 결국 근처 편의점 불빛 아래까지 갔을 때, 그제야 깨달았어. 내가 택시에서 내릴 때, 기사님이 말한 “책임”이라는 게 요금이나 거리 문제가 아니라… 누군가의 ‘타는 상태’가 바뀌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

편의점에서 카운터에 “방금 택시 타고 내렸는데요”라고 말하려다가, 말이 목구멍에서 멈췄어. 기사님에게서 받은 현금 영수증 같은 건 없었고, 카드 결제 내역도 당연히 없었는데, 이상하게도 내 휴대폰 화면엔 ‘이동 종료’가 찍혀 있더라. 날짜가 방금이 아니라, 내가 택시 타기 전날 밤으로 돌아가 있었어. 그날 이후로 나는 택시 탈 때 기사님이 “여기까지는…” 하고 말을 끊는 순간을 계속 떠올려. 아직도 그 문장이 귀에서 지워지지 않아.

이 글 반응 남기기
추천과 비추천은 회원당 1회만 가능하며, 다시 누르면 취소됩니다.
추천 0 · 비추천 0
글 신고 안내
같은 회원은 같은 글이나 댓글을 1회만 신고할 수 있으며, 누적 신고가 5회 이상이면 자동으로 숨김 처리됩니다.
현재 글 신고 0회

댓글

댓글 작성은 로그인 후 가능합니다.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