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주차장에 누군가 놓고 간 종이가 내 이름으로 접혀있어
지하주차장에 누군가 놓고 간 종이가 내 이름으로 접혀있어. 그날도 평소처럼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지하 2층을 향했는데, 유난히 바닥에 먼지가 적고 길이 가지런히 보이더라.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려다, 기둥 옆에 놓인 종이 한 장이 눈에 걸렸다. 종이는 축축하지도 않고, 누가 급히 던져 둔 느낌이 전혀 없어서 더 이상했다.
처음엔 분실물 안내문인 줄 알았어. 그런데 종이를 보는 순간 내 이름이 딱 중앙에 접혀 있어서 숨이 멎는 기분이 들었다. 글씨는 프린트가 아니고 손글씨였는데, 또박또박해서 오히려 소름이 돋았다. ‘이름’만 써 있고, 나머지는 접힌 채로 어떤 문장도 보이지 않았다. 그냥 지나가면 됐을 텐데, 손이 먼저 가버렸다.
종이를 반쯤 펼치자, 안쪽 면에 얇은 연필 자국 같은 게 보였어. 정확히 읽히진 않았지만, 줄이 아니라 칸처럼 나뉘어 있고, 칸마다 작은 표시가 반복돼 있더라. 마치 누가 날짜를 체크해둔 것 같았다. 내가 집에 돌아와서 생각해보면, 그 체크가 ‘어제’나 ‘오늘’ 같은 느낌이 아니라, 내 출퇴근 패턴이 어느 정도 정리된 다음에야 적을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이었어.
그래서 바로 관리실에 물어봤어. “지하주차장 기둥 옆에 종이 하나 발견했는데, 누가 놓고 간 것 같아요. 혹시 CCTV 확인 가능할까요?” 관리실 직원은 처음엔 그냥 분실물로 보려다가, 내가 이름이 적힌 부분을 보여주니까 표정이 미묘하게 굳었다. 그 사람도 “이런 건 처음 보네요”라는 말만 하고, CCTV는 보관 기간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확인이 어렵다고 했어.
그날 이후로 나는 지하주차장을 보는 눈이 달라졌어. 평소엔 잘 안 보이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더라. 예를 들어, 특정 기둥 주변만 바닥이 유난히 깨끗하다든가, 어떤 표시는 계속 같은 위치에 반복된다든가.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종이가 놓인 자리랑 같은 방향으로 바람이 불 때 종이가 바닥에 닿는 각도가 비슷했어. 누가 일부러 ‘놓을 위치’를 생각해둔 것처럼.
며칠 뒤 같은 종이가 또 한 장 보였어. 이번엔 다른 기둥이었고, 접힌 방식도 조금 달랐어. 하지만 똑같이 내 이름이 바깥에 노출돼 있었다. 이번엔 아예 펼치기도 전에 손이 멈췄는데, 펼치면 내가 뭔가를 받아들이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그냥 사진만 찍고 관리실에 다시 말했어. 그런데 관리실에서 돌아온 답은 더 황당했어. “그 시간대에 출입 기록이 없어요.”
그 말이 머릿속에서 계속 돌았어. 지하주차장에 사람이 ‘없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 누가 차를 몰고 나갔을 수도 있고, 걸어 들어왔을 수도 있는데 출입 기록만 없다는 건 무언가 기준이 있다는 뜻이더라. 예를 들면, 문이 아닌 통로로 들어오거나, 주차장 출입과 별개인 동선이 있는 사람일 수도 있고. 나는 점점 종이가 누군가의 장난처럼 보이지 않게 됐어. 장난은 누가 봐도 티가 나잖아. 이건 너무 ‘내가 오기 전에’ 준비된 느낌이 강했어.
그 다음엔 종이가 아니라, 더 작은 흔적이 나타났어. 우편함 근처에 붙어있던 얇은 종이 조각 같은 거였는데, 거기에도 내 이름이 아주 작게 적혀 있었어. 누가 확인용으로 붙여둔 느낌. 그리고 그 종이 조각을 떼어내려고 손가락을 대는 순간, 어디선가 아주 가까운 곳에서 바람 소리가 스쳤어. 현관문과는 거리가 있는데도 말이야. 나는 그때 깨달았어. 누군가가 ‘보고 있는 게 아니라, 맞춰두고 있다’는 걸.
지금은 그 지하주차장에 갈 때마다 잠깐 멈춰서 바닥을 확인하게 됐어. 종이가 또 생기면 어떡하지, 아니면 내가 먼저 뭔가를 해야 하는 건가 같은 생각이 계속 들고. 관리실에도 ‘확인 부탁한다’고 말은 했지만, CCTV는 번번이 애매한 구간이 많다고만 하더라. 그래서 결론은 더 무섭게 남아. 누군가는 내 동선을 아는 정도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도 알고 있다는 것.
마지막으로, 아직도 그 종이 원본은 집에 두지 않고 버렸어. 하지만 이상하게도 버리고 나서도 이름이 종이 접힌 선처럼 머릿속에 남아. 밤에 불 끄고 누우면, 지하주차장 특유의 냄새와 함께 ‘딱 그 자리’가 떠오르거든. 그리고 가끔은 생각해. 다음엔 종이가 아니라, 누군가가 내 이름을 대신해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걸까. 그날 이후로 나는 현관문 앞에 서기 전부터, 이미 누군가가 안쪽에서 기다리는 기분이 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