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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담당 간호사가 아닌데 내 차트에 손을 대고 갔어

2026-09-27 16:29:12 조회 2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병원에서 담당 간호사가 아닌데 내 차트에 손을 대고 갔어.

처음엔 그냥 피곤해서 잠깐 눈 감은 사이에 누가 정리하나 싶었는데, 그날은 이상하게도 눈이 확 떠지더라. 병실이 얇은 벽처럼 울려서인지, 문 열리는 소리도 평소보다 크게 들렸고 무엇보다 차트가 탁— 하고 내려놓이는 느낌이 묘하게 또렷했어. “아, 오셨나” 하고 말도 하기 전에 누군가가 내 옆 상의 위로 손을 뻗는 게 보였는데, 나는 분명 내 담당 간호사가 아니었거든. 명찰을 봤는데도 낯설었고, 무엇보다 행동이 너무 익숙했어.

나는 그때 수술 후 회복 중이었고, 담당 간호사 이름이 병실 게시판에 크게 적혀 있었어. 그래서 병동 사람들이 오가며 확인하긴 해도 차트를 펼쳐서 보는 건 보통 담당이 하잖아. 근데 그 사람은 내 쪽을 확인하는 것처럼 굳이 묻지도 않고, 내 침대 옆 스테이션에 둔 내 차트를 그대로 끌어와서 펼쳤어. 손가락으로 한 줄을 짚고, 페이지를 넘기고, 스케줄 체크하는 방식이 마치 자기 일상처럼 자연스러웠지.

내가 “저기요” 하고 부르려는 순간, 그 사람은 고개를 살짝만 돌려서 웃었어. 근데 그 웃음이 “아, 깼구나” 같은 친절한 톤이 아니고, 얼굴만 잠깐 비추고 바로 시선을 떼는 느낌이었어. 그리고는 차트를 덮는 것도 급하게 하지 않았어. 오히려 정리하듯 덮어서 침대 끝에 올려두고, 내 병실 문 쪽으로 발을 옮기는데 걸음이 이상할 정도로 가볍더라. 내가 멍하니 있는 동안 문이 닫혔고, 그때서야 심장이 천천히 내려앉는 게 아니라 더 빨라지는 걸 느꼈어.

나 혼자 남겨진 병실은 조용했는데, 조용해서 더 생각이 꼬였어. 차트를 펼친 손이 내 이름을 확인했는지, 아니면 이미 알고 있었는지 그 차이가 느껴질 정도로 행동이 확신에 차 있었거든. 그리고 내 담당 간호사는 매번 들어올 때 “통증은 어때요, 오늘은 물 언제부터 드세요” 같은 질문을 꼭 했어. 그런데 그 사람은 내 상태를 확인하는 대신 기록만 보던 것 같았고, 그 기록이 정확히 뭘 의미하는지 나로선 알 길이 없었지.

담당 간호사가 늦게 오길래 그날 밤에 내가 조심스럽게 물어봤어. “오늘… 제가 깰 때 차트 만지시던 분 계셨어요?” 라고. 근데 담당 간호사 얼굴이 하얘졌어. 원래는 귀찮아하거나 대충 넘길 법한 질문인데, 그 사람은 웃지도 못하고 “차트는 원래 담당만…” 하고 말을 끊었어. 그리고는 곧바로 “혹시 어떤 분이었는지”를 더 캐물었는데, 내 기억이 흐릿해지기 전에 대충 명찰 모양이랑 복장 색을 말해줬거든.

그러자 담당 간호사가 한동안 침대 옆을 서서 아무 말도 못 했어. 이건 단순히 “제가 아니라서요” 수준이 아니라, 뭔가를 바로 확인해야 한다는 표정이었어. 그 뒤로 병동 쪽에서 호출이 오고, 누군가 내 병실 앞에서 잠깐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는데, 내용은 다 들리지 않았어도 분위기가 확 달랐어. 담당 간호사는 내게 “오늘은 더 쉬세요”라고만 하고, 차트는 아예 내 시야에서 멀리 옮겨서 잠깐 띄워두더니 잠금장치가 있는 곳으로 넣었어. 그때 처음으로 ‘아, 이건 그냥 실수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

며칠 뒤에 나는 이상한 점을 하나 더 봤어. 처음엔 그냥 회복이 느리구나 했는데, 통증 양상이 며칠 사이에 미세하게 바뀌었어. 약을 바꿨는지 확인하려고 담당 간호사에게 물었더니, “원래 계획대로요”라고만 했어. 근데 차트에 적힌 약 시간표가 내 기억이랑 미묘하게 달랐어. 나는 예전에 먹었던 약 이름을 똑똑히 기억하는 편인데, 그 줄이 분명 다른 표기였거든. 물론 간호사들이 약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오타가 있을 수도 있지. 근데 그날 내가 본 건 ‘오타 정도’가 아니라, 누군가가 기록을 보고 판단한 뒤에 뭘 바꿨을 가능성까지 떠올리게 만들었어.

그 뒤로 나는 병실에서 더 조용히 행동했어. 물컵을 내려놓는 소리도 줄이고, 누가 들어오면 바로 눈을 마주치지 않고 시간을 좀 두고 확인했지. 어떤 날은 복도가 시끄러워도 문 열리는 소리만 유난히 또렷하게 들려. 그때마다 나는 혹시 그 사람이 다시 올까 봐 조마조마했어. 특히 차트가 열리는 소리 같은 걸 상상하게 되면, 갑자기 목 뒤가 서늘해지더라. 그 사람은 분명 내 담당이 아니었는데도, 내 정보가 있는 곳에 손을 뻗는 데 거리감이 없었거든.

결국 퇴원할 때까지 “그 사람이 누군지”는 정확히 들은 게 없어. 담당 간호사는 마지막에 “병원 절차상 확인은 했어요”라고만 했고, 더 묻는 말에는 조심스럽게 대답을 피했어. 그래서 지금도 가끔 생각해. 내가 그때 잠깐 눈 감았던 몇 분 사이에, 그 사람은 내 기록을 보고 어떤 결론을 내렸을까. 그리고 내가 정말로 아프거나 회복 중이어서가 아니라, 누군가의 ‘확인’이 필요한 대상이라서 그 손이 차트에 먼저 닿았던 건 아닐까. 병원이라는 곳이 사람을 치료하는 곳인 건 맞는데, 그 치료의 바깥에서 누가 내 이름을 넘기고 있는지 모른다는 사실이 아직도 소름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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