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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에서 내 층 버튼이 지워진 것처럼 보였어

2026-09-28 00:29:11 조회 2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엘리베이터에서 내 층 버튼이 지워진 것처럼 보였어. 정확히는, 내가 매일 눌러야 하는 그 층 버튼이 어느 날부터 손때가 묻어있는 것마저 없고,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평평하게 변해 있더라.

처음엔 그냥 건물 상태가 안 좋아서 그런가 싶었어. 새벽에 나가면 아직 조명이 덜 켜져 있어서, 버튼 글자가 흐릿하게 보일 때가 있거든. 근데 그날은 달랐어. 버튼 주변은 멀쩡했는데, 내 층만 딱 특정 구역만 지워진 느낌이었어. 누르려고 손가락 끝을 가져가면 감촉이 이상했어. 다른 버튼은 딸깍 누르는 반면, 그 자리는 ‘있긴 한데 없는 것 같은’ 애매한 면 같았거든.

나는 그 층을 14층이라고 치자. 예전부터 습관처럼 14번을 누르고, 문이 닫히기 전에 한 번 더 확인하고, 엘리베이터 소리 따라 숨을 맞췄어. 그런데 손끝이 닿는 순간, 눈이 먼저 알았어. 숫자가 아니라, 버튼의 테두리조차 옅어져 있었어. 괜히 귀찮아서 넘겨짚는 기분이 아니라, 누가 일부러 떼어낸 것처럼 깔끔했어.

그래도 설마 했지. 버튼을 한 번 세게 누르니, 아무 반응이 없어. 물론 엘리베이터는 그냥 지나가겠지 싶었는데, 층 표시등은 정상적으로 움직였어. 대신, 13층을 지나갈 때 14층 표시가 잠깐 깜빡거렸어. 마치 “여기였는데?” 하고 확인시켜주는 것처럼. 그 깜빡임이 너무 짧아서 웃음이 나올 정도로 어설펐는데, 이상하게도 웃음이 바로 목구멍에서 멈췄어.

나는 급하게 15층을 눌렀어. 혹시 버튼이 고장 나서 그런가 싶어서. 그런데 문이 닫히고 올라가기 시작하자마자, 15층 버튼 불빛이 꺼졌어. 보통은 도착할 때까지 들어와 있어야 하잖아. 15층은 내가 누른 게 맞는데도, 엘리베이터는 내 입력을 ‘받지 않은 것’처럼 움직였어. 그때야 내가 너무 예민하게 생각하는 건가 싶다가도, 손끝이 느낀 그 평평함이 계속 떠올랐어.

점심시간에 관리사무소에 물어보려고 했는데,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동안 내 머리가 계속 같은 생각만 돌았어. “지워진 게 실제로 지워진 걸까, 아니면 내가 그걸 보지 못하게 된 걸까.” 유리문 옆 반사에 비친 내 손가락도 잠깐 봤는데, 평소처럼 숫자 부분을 누르려고 한 손동작이었거든. 그런데도 버튼이 없다고 느껴졌다는 게 더 이상했어.

관리사무소 직원은 “고장난 버튼은 교체해요” 같은 말만 하고, 엘리베이터 내부를 확인하러 갔어. 난 그냥 기다리면 되는데, 이상하게도 그때부터 내 시선이 계속 엘리베이터 버튼 패널로만 갔어. ‘14층 버튼이 원래 있던 자리’가 머릿속에 지도를 그리듯 남아 있었거든. 직원이 열쇠로 패널을 뜯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 다음 순간엔 소리가 너무 조용해져서 오히려 더 무서웠어.

직원이 다시 닫고 나오더니 “여긴 문제 없는데요. 버튼 글자도 정상이에요”라고 했어. 그 말이 맞다면, 내가 지금까지 본 건 뭐였지? 난 바로 올라가서 확인하려고 했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내 눈이 멈췄어. 버튼이 정상처럼 보이는 상태였어. 숫자도 선명했고, 손때도 보였고, 다른 버튼이랑 색감도 같았어.

그런데 문제는 “정상”이 아니라 “잠깐만 정상”이라는 거였어. 내가 14층 버튼을 누르려는 찰나, 숫자가 다시 옅어지기 시작했어. 정확히 말하면, 눌러지는 타이밍에 맞춰서 글자가 흐려지고, 버튼 표면이 매끈해지는 느낌이 들어. 마치 누가 한 단계씩 지우개로 문질러 가는 것 같았어. 순간 어깨가 딱 굳어버리더라.

나는 그날 이후로 14층을 그냥 건너뛰기 시작했어. 다른 길로 돌아가고, 계단을 타고, 어쩔 땐 택배도 다른 층에 맡겨달라고 했어. 근데 이상하게도 엘리베이터를 볼 때마다, 버튼이 지워져 있던 그 자리가 눈에 더 또렷하게 남아 있었어. 내가 잊고 싶어도 버튼은 계속 존재를 확인하는데, 내가 그 존재를 받아들이는 방식만 바뀌는 느낌이랄까.

마지막으로 그 사건이 확실해진 건, 밤에 한 번 더 실수했을 때야. 퇴근길에 엘리베이터가 바로 와서 편하게 타려다가, 무의식처럼 14층을 누르려고 했어. 손끝이 그 자리에 닿는 순간, 버튼이 딸깍 하고 눌리는 소리는 났는데, 층 표시가 움직이지 않았어. 대신 문이 조용히 열리고, 안쪽이 아니라 밖 복도 조명이 미세하게 흔들렸어. 그리고 누군가 밖에서, 아주 가까이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어. 그 목소리는 엘리베이터 버튼 소리보다 더 가까웠고, 너무 익숙해서 더 무서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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