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기사님이 “여기 맞으면 고개 들어보세요”라고 했어
배달기사님이 “여기 맞으면 고개 들어보세요”라고 했어. 처음엔 그냥 장난인가 싶었는데, 그날 이후로 우리 동네 골목은 유독 천천히 걸어야 하는 길이 됐어.
그날은 비가 얇게 내려서 바닥이 반짝였고, 나는 늦은 시간이라도 배달을 빨리 받으려고 인터폰 대신 휴대폰 알림만 보고 있었어. 주문한 건 치킨이랑 콜라였는데, 도착 예정 시간이 한 번 미뤄지더니 갑자기 ‘기사님 출발’이 떠 있더라. 전화는 안 왔고, 배달 앱 화면에 기사님 위치만 찍혔어.
현관 앞까지 나가자마자 기사님이 어깨를 약간 숙인 채로 서 있었는데, 우산을 들고 있었던 것 같지도 않아. 비가 오는지 안 오는지 모를 만큼 옷이 젖지 않았고, 얼굴도 어둠 속에서 선명하게 보이지 않았어. 나는 “여기요?” 하고 말했는데, 기사님이 갑자기 손가락으로 바닥을 툭— 하고 한 번 짚더라.
“여기 맞으면 고개 들어보세요.” 그 말은 너무 짧고 단정해서, 내가 되묻기도 전에 기사님이 다시 걸음을 옮기려 했어. 나는 혹시 길바닥에 낙서가 있나, 아니면 찍어달라는 포인트가 있나 싶어서 시선이 내려갔거든. 그런데 내가 서 있는 위치 바로 앞, 현관 문턱의 옆 타일 틈에 무언가가 있었어.
처음엔 동전 같은 건가 싶었는데, 젖은 타일 틈에서 희미하게 선이 이어져 있었어. 마치 누가 어릴 때 장난으로 낙서를 해둔 것처럼, 직선과 짧은 점들이 반복돼 있었지. 기사님은 그걸 보고 있던 걸까? 아니면 내가 그걸 알아봐야 하는 걸까? 나는 괜히 웃음이 나올 것 같았는데, 입술만 달싹거리다 말았어.
나는 결국 고개를 들었어. 기사님은 이미 현관 앞에서 한 발 뒤로 물러서 있었고, 엘리베이터 방향을 보고 있었는데, 그 순간에만 바람이 확 불더라. 비 오는 날 특유의 냄새가 아니라, 오래된 종이 냄새 같은 게 났어. 그리고 그때, 기사님이 내 쪽으로 시선을 잠깐 돌렸는데 표정이… 웃는 얼굴도 아니고, 무슨 설명을 하려는 얼굴도 아니었어.
“여기 맞으면…” 하고 다시 한 번 말하려던 것 같았는데, 그 문장이 입 밖으로 나오기 전에 앱 알림이 울렸어. 배달 완료 확인을 누르라는 알림이었는데, 화면을 보기도 전에 이미 ‘완료’로 바뀌어 있더라. 그러니까 나는 받지도 않았는데, 누군가는 이미 내가 받은 걸로 처리해둔 거야. 동시에 현관 안쪽에서 ‘뚝’ 하는 소리가 났고, 그 소리가 마치 내 발끝 아래에서 시작된 것처럼 느껴졌어.
나는 급하게 현관문을 닫으려다가 멈췄어. 혹시 문 틈으로 뭔가 들어온 건 아닐까 싶어서 손잡이를 잡고 있었거든. 그런데 문을 열어보자마자, 복도엔 아무도 없었어. 기사님도 사라져 있었고, 우산을 들고 서 있던 사람 흔적조차 없었어. 다만 복도 바닥에 아주 얇은 물자국이 하나 이어져 있었는데, 그 물자국이 우리 집 문턱 옆 타일 틈을 가리키듯이 뻗어 있었어.
배달 앱엔 사진이 한 장 올라와 있었는데, 카메라 각도가 이상했어. 분명 내가 현관 앞에 서 있는 장면이어야 하는데, 사진에는 바닥 타일과 문턱만 크게 잡혀 있었고, 내 발은 프레임 밖이더라. 그리고 사진 오른쪽 구석에 아주 작게 글씨가 보였어. “맞으면 고개 들어.” 그 문장이 타일 낙서와 같은 색으로 찍혀 있어서, 내가 실제로 봤던 선이랑 같은 결로 보였어.
나는 그때부터 이상하게 행동이 굳어버렸어. 치킨 상자는 무사히 도착해 있었는데, 상자 위에 작은 종이가 끼워져 있었고 글씨는 누군가 급히 쓴 것처럼 삐뚤했어. 종이에는 짧게 한 줄만 적혀 있었지. “받는 사람은 정해져요.”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돼서 그 종이를 손으로 만지려다 멈췄어. 종이 끝이 물기에 젖어 있었는데, 내 손이 닿기 직전에 마르는 느낌이 들었거든.
그 다음 날, 나는 타일 틈을 확인하려고 조심스럽게 주변을 닦아봤어. 누가 일부러 문질러둔 것처럼 선은 더 희미해졌는데, 신기하게도 지워진 자리에 반대로 빛이 모인 것 같았어. 그리고 저녁이 되자, 그날 기사님이 짚었던 위치쯤에서 누군가 발걸음을 멈추는 소리가 들렸어. 누가 집 앞에서 서 있는지 알 수는 없었는데, 멈춘 시간이 꼭 내가 고개를 든 순간이랑 비슷하게 반복됐어. 그래서 지금도 가끔 배달을 기다릴 때, 기사님이 “여기요” 하고 말한 뒤에 잠깐 멈추는 타이밍이 있으면 나도 모르게 먼저 고개부터 숙여버려. 그 말이 장난인지 아닌지 아직도 모르겠는데, 이상하게도 그 자리에선 늘 누가 먼저 ‘확인’을 하고 있는 것 같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