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룸에서 밤마다 창문에 김이 서리며 한 줄이 그어져
원룸에서 밤마다 창문에 김이 서리며 한 줄이 그어져. 처음엔 그냥 계절 탓인 줄 알았어. 보일러 끄는 시간대랑 맞물려서 새벽이면 유리창 안쪽이 하얗게 숨 쉬듯 흐려지고, 그 위로 얇은 선 하나가 쓸려 지나가듯 나타나더라. 문제는 그 선이 매일 같은 자리, 같은 굵기였다는 거야.
사건은 한 달쯤 전부터 시작됐어. 나는 야간 근무를 해서 새벽 다섯 시쯤 집에 들어오곤 했는데, 그때마다 창문에 김이 서린 흔적이 남아 있었어. 문 열자마자 공기가 차가웠고, 창을 닦아도 금방 다시 하얗게 흐려지더라. 그러다 어느 날, 닦는 걸 멈추고 유리 위를 보는데… 김 사이로 검은 듯한 한 줄이 딱 뻗어 있었어.
처음엔 손가락 자국인가 싶어서 휴지로 문질렀는데, 지워지지 않았어. 더 정확히 말하면 김이 사라지면서 선도 같이 옅어지는 게 아니라, 김이 걷힐 때도 그 선만 또렷하게 남아 있었어. 선은 흠집처럼 각이 져 보이진 않았고, 마치 누가 김 위에 연필로 긋고 간 것처럼 보였어. 길이는 손바닥만 했고, 유리의 모서리에 가깝게 시작해서 가운데로 똑바로 뻗어 있었지.
나는 CCTV도 없고, 방에 무슨 센서 같은 것도 없었어. 대신 창문에 테이프를 붙여서 자국이 남는지 확인했는데, 다음 날 테이프는 멀쩡했어. 그런데 유리 표면은 그대로 김이 서려 있었고, 그 한 줄도 또 생겼어. 이상한 건, 선이 생긴 날이면 꼭 창문 바깥쪽에 미세한 결빙이 같이 올라와 있다는 거였어. 마치 안에서만 김이 생기는 게 아니라, 바람이 타고 외부와 내부가 동시에 만나는 느낌.
그날부터 나는 밤마다 멈춰 있는 소리를 들으려고 귀를 기울였어. 보일러는 조용히 돌고 있었고, 옆방 소음도 딱히 없었거든. 근데 새벽 두 시쯤만 되면 창문 가까이에서 아주 약한 긁는 소리가 났어. 금속이 스치는 소리랑은 달랐고, 손톱으로 유리 가볍게 건드리는 것처럼 얇고 가늘었지. 그 소리가 나기 시작하면 유리 쪽 공기가 갑자기 차가워지는 느낌이 들어서, 등줄기가 먼저 굳어버렸어.
처음엔 그냥 내 착각일까 봐 휴대폰 플래시로 창문을 비춰봤어. 김 서린 부분은 빛을 뭉개서 어렴풋했는데, 한 줄만 유난히 반사되더라. 그래서 다음 날 아예 돋보기까지 써서 봤는데, 선 끝부분이 미세하게 번져 있었어. 번지는 모양이 ‘손가락으로 문지른 흔적’이라기보단 ‘어떤 물체가 잠깐 닿았다가 사라진’ 모양에 가까웠어. 그래서 나는 그 줄이 그냥 자국이 아니라, 매번 생기는 흔적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지.
사소한 계기도 있었어. 나는 창문 안쪽에 작은 종이메모를 붙여두고 있었거든. “환기할 것” 같은 메모였는데, 한동안 그대로 붙어 있다가 어느 날 아침에 메모가 살짝 떨어져 바닥에 떨어져 있었어. 문제는 메모가 바닥으로 떨어진 방향이 창문 아래쪽으로만 치우쳐 있었다는 거야. 창문이 열리거나 문풍지 틈으로 바람이 들어온 흔적도 없었는데 말이지. 그날 이후로는, 창문과 관련된 것들이 내가 예상하는 방식이 아니라는 느낌이 강해졌어.
며칠 뒤에는 아예 실험 비슷하게 해봤어. 저녁에 창문 안쪽을 완전히 닦아내고, 김이 서릴지 확인하려고 불을 끄고 가만히 누워 있었지. 새벽이 되자 정말로 다시 김이 차오르더라. 그런데 이번엔 내가 선이 생기는 순간을 보려고 숨을 참고 창문 쪽으로 고개를 들었어. 김이 서리는 속도가 평소보다 빨랐고, 유리 한가운데쯤에서 검은 실 같은 선이 ‘그려지듯’ 나타났어. 손가락으로 그은 것처럼 떡지는 느낌이 아니라, 마치 김 자체가 그려진다는 느낌이었어. 몇 초도 안 돼서 선이 완성되고, 그 다음에는 모락모락 김이 아래로 천천히 가라앉았어.
그날 이후로 나는 창문을 더 자주 닦고, 밤에는 커튼을 조금만 열어두는 쪽으로 바꿨어. 그런데 이상하게도 커튼을 조금만 더 닫으면 선이 더 선명해졌어. 마치 빛이나 시야가 달라지는 게 아니라, 누군가가 ‘어느 방식으로든 보이게’ 하는 걸 알고 있는 것처럼. 지금도 새벽이 오면 창문이 먼저 차가워지고, 김이 서린 다음 한 줄이 그어진 자리에 따라 내 방 공기까지 같이 눌리는 기분이 들어. 나는 아직도 그게 사람이 지나가서 생기는 흔적인지, 아니면 내 방 안의 공기 어딘가가 스스로 무언가를 쓰는 건지 모르겠어.
그리고 오늘도 창문에는 같은 자리의 선이 있었다. 그런데 유리에서 김이 걷힌 뒤, 그 선 옆으로 아주 얇은 두 번째 자국이 아주 잠깐 번졌다가 사라졌어. 누가 연필로 한 번 더 덧그린 것처럼. 문제는 그 두 번째 자국이 어제랑 방향이 달랐다는 거야. 그래서 나는 문득 생각했어. 한 줄은 시작이고, 다음은 내가 알게 되는 순서일지도…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