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에서 계산대 위 컵에 내 손자국만 번져 있었어
나는 그날도 평소처럼 저녁에 편의점 들러서 물이랑 간단한 간식을 집어 들고 나왔어. 손자가 학교 끝나고 늦게 올 때가 있어서, 미리 사둔 거라도 있어야 마음이 놓이거든. 계산대 앞에 서서 카드를 대려는데, 그 순간 시선이 이상하게 계산대 위로 끌렸어. 컵 하나가 놓여 있었는데, 그 컵 위에 내 손자국만 또렷하게 번져 있고, 옆에는 다른 사람 것처럼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더라.
정확히 말하면, 컵에 묻은 지문이 마치 누가 물을 부어놓은 것처럼 쭉 번져 있었어. 그런데 내가 그 컵을 직접 만진 기억은 없었거든. 나는 계산대에 앉아 있는 직원도 아니고, 매대에서 컵을 집었을 리도 없고, 그냥 진열된 음료를 골랐을 뿐이었어. 그래도 손가락이 먼저 반응했는지, 무의식적으로 내 손을 한번 올려 컵 옆을 훑어봤는데 확실히 달랐어. 내 손자국이 그 컵에만 남아 있었지.
처음엔 내가 깜빡한 걸까 싶었어. 혹시 음료 집을 때 계산대 위 컵을 건드렸나, 혹은 컵에 담긴 얼음이나 물기를 닿게 했나 생각했는데, 그럴 만한 동선이 없었어. 컵은 계산대 위, 카드 단말기 옆에 딱 놓여 있었고 내가 그 앞까지 손을 뻗었을 이유가 없었거든. 더 소름이었던 건, 손자국이 번져 있는 방향이 마치 누군가 컵을 잡고 그대로 ‘세게’ 놓았다가 다시 살짝 당긴 것처럼 보였다는 거야.
“이거… 누가 여기다 올려둔 거예요?” 하고 내가 말하자 직원은 별일 아니라는 듯 고개를 갸웃했어. 직원은 “아, 저 컵요? 손님들이 가끔 비치해두고 가서요.”라고 대충 넘겼는데, 그 말이 더 이상했어. 비치해두고 간다기엔 컵이 너무 정갈하게 놓여 있었고, 손자국만 번져 있는 것도 너무 정확했거든. 게다가 내 기억으론 오늘 그 컵이 진열대에 없었어. 계산대 위에 갑자기 생긴 느낌이었지.
그래서 나는 혹시 내가 계산할 때 컵을 건드렸나 싶어서 다시 생각을 굴렸어. 계산대 앞에서 뭘 했는지, 카드를 언제 꺼냈는지, 가방을 어디에 뒀는지… 하나씩 떠올리는데, 그 모든 건 선명하게 정리돼 있었어. 컵과는 상관이 없었어. 그러다 문득 이상한 점이 떠올랐지. 내가 손자국을 본 순간, 손가락 끝이 아주 미세하게 시렸어. 찬 음료를 잡았을 때처럼, 아주 짧게만. 근데 컵은 차갑게 만질 수 있는 위치도 아니었고, 손잡이도 없었어.
나는 괜히 겁먹기 싫어서 태연한 척 계산을 진행했어. 결제는 금방 끝났고, 물건을 봉투에 담는 동안에도 눈이 자꾸 계산대 위로 갔어. 컵은 그대로였는데, 그때는 손자국의 번짐이 조금 더 커져 보였어. 마치 물기가 천천히 번지는 것처럼. 그런데 컵 주변엔 물도 없었고, 직원이 닦아내거나 치우지도 않았어. 직원은 계속 다른 손님 응대에 바빴고, 나는 봉투를 들고 매장을 나왔지.
밖으로 나오자마자 손바닥을 한번 쓱 훑어봤어. 내 손가락엔 아무것도 묻어 있지 않았는데도, 손자국을 봤던 그 느낌이 자꾸 남아 있었어. 그리고 차로 돌아오기 전, 이상하게도 가방 속에서 방금 산 컵라면 스티커 포장지를 확인하려고 했는데, 손이 멈칫했어. 포장이 살짝 젖어 있었거든. 물이 새어 나온 건 아닌데, 손을 대면 차갑고 축축한 감촉이 났어. 분명히 봉투에 담을 때는 멀쩡했어. 그 젖음이 생긴 건, 내가 컵의 손자국을 봤던 그 순간과 연결된 것처럼 느껴졌어.
집에 가서 손자를 기다리는데, 그날따라 이상하게 TV 소리가 멀리서 들리는 것 같았어. 탁탁거리는 소리는 들리는데, 내 귀가 뭔가를 ‘놓치고’ 있는 느낌. 결국 손자가 늦게 왔고,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배고프면 먹어” 하고 간식을 내밀었지. 그런데 손자가 그걸 보자마자 “할머니, 계산대 위 컵… 봤어?”라고 물어보는 거야. 나는 깜짝 놀랐어. 왜냐면 내가 절대 먼저 꺼내지 않았던 얘기였거든.
손자가 말하길, 편의점에 들어가서 기다리는 동안 계산대 위 컵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고 했어. 그리고 “할머니 손가락이 거기 붙어 있는 것 같았어. 근데 할머니는 지금 여기 없잖아.”라고 하더라. 그 말 듣고 등골이 서늘해졌어. 아이는 상황을 설명하려고 했는데, 그 표현이 너무 이상했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으면서도, 내가 지금까지 기억한 동선과는 어긋나 있었거든.
손자를 집에 들이고 난 뒤에도 편의점 생각이 계속 났어. 설마 내가 잘못 본 걸까, 혹은 다른 사람 손자국이 겹친 걸까 싶다가도, ‘내 손자국만 번져 있었다’는 사실이 자꾸 되돌아왔어. 누가 내 손을 잡았던 적도 없고, 누가 컵을 움직여 놨던 적도 없는데… 그 컵은 계산대 위에서 딱 그 순간만 기다린 것처럼 보였거든. 그리고 오늘도 가끔, 손가락 끝이 차갑게 시린 감촉이 떠오르면서 다음엔 누가 그 컵 위에 남겨질까 하는 생각이 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