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서 내 군화엔 흙이 묻어 있었는데 훈련장에 안 갔어
훈련 들어가던 아침, 내 군화 윗가죽에 흙이 묻어 있었다. 분명 창고에서 가져온 건데, 닦아도 잘 안 지워지는 끈적한 흙이, 발바닥 쪽을 따라 얇게 번져 있었어. 괜히 찝찝해서 소대장한테 “어제 누가 밟고 갔나 봅니다”라고 얼버무렸는데, 소대장은 그냥 “그냥 빨아” 하고 끝냈다. 문제는 그 흙이, 훈련장이랑 상관없을 것 같은데도 계속 나를 따라다녔다는 거야.
그날 우리는 신교대 이후 첫 야외기동 훈련을 갔다. 새벽 안개가 낮게 깔리고, 훈련장 바닥은 흙이라기보다 먼지에 가깝고, 발자국이 금방 사라지는 타입이었거든. 그런데 내 군화는 이상하게도 계속 색이 남아 있었어. 바닥에 찍히는 순간마다, 누군가 방금 옮겨온 흙처럼 아주 진하게 남더라. 옆에서 걷던 애들은 “너 신발 새로 샀냐?” 하고 웃었는데, 나는 웃는 대신 숨이 조금씩 막혔다.
점호 때 군화 검사하던 정비병이 내 신발을 툭툭 두드리더니, 한참을 보다가 말없이 솔로 문질렀다. 그때까지도 난 “먼지 좀 묻었나” 싶었지. 그런데 솔질이 시작되고 나서야, 흙이 그냥 흙이 아니라는 느낌이 왔어. 끈이 살짝 당기는 것처럼 달라붙었고, 문질러도 원래 색이 그대로 남았다. 정비병이 “이거… 어디서 묻은 거야”라고 혼잣말하자, 그 목소리가 이상하게 굳어버린 게 느껴졌다.
그날 훈련은 별일 없이 흘러갔다. 포복하고, 사격 대기하고, 철조망 구간 지나고. 그런데 중간중간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바람이 아니라, 바닥 어딘가에서 아주 작게 긁히는 소리 같은 거. 누가 돌로 땅을 긁는 것처럼, 일정한 리듬으로. 나는 처음엔 내 귀가 예민해진 줄 알았는데, 다른 애들 중 한 명이 “야, 너 발 밑에서 뭐 나지 않냐?”고 물었다. 그 순간, 내 군화 앞코가 아니라 옆면을 따라 흙이 더 진하게 번진 느낌이 들었어.
점심 때 급식소에서 얘길 했더니, 다들 “훈련장 흙이 묻은 거지”라고 치부했어. 근데 내가 계속 확인한 건, 그 흙의 결이 달랐다는 거야. 훈련장 흙은 잘게 부서져서 손가락으로 문지르면 가루처럼 떨어지는데, 내 군화에 붙은 건 가루가 아니라 덩어리처럼 남아 있었어. 손톱으로 긁으면 얇게 벗겨지면서, 그 아래에 또 다른 층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나는 식판을 잡은 손이 조금 떨려서, 일부러 웃어넘겼다.
오후엔 대열을 맞춰 이동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지휘하는 간부가 “여기선 발자국 크게 남기지 마”라고 강조했어. 이상하지? 훈련장인데 발자국을 안 남기라니. 그때 부대 선임 하나가 나를 슬쩍 보더니, 말없이 내 군화 끈을 손끝으로 가볍게 건드렸다. 마치 확인하듯이. 그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시선을 돌렸지. 그 행동이 더 무서웠다. 누가 흙을 묻히는 건 흔해도, “그걸 알고 있다”는 표정이었거든.
해가 기울고 철수할 때쯤, 나는 화장실 쪽으로 잠깐 빠져서 군화를 씻으려 했어. 물이랑 솔로 한참 문질렀는데도 흙이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물기 위로 검은 점처럼 작은 흔적이 떠올랐다. 그게 그냥 흙탕물이 아니라, 마치 ‘남겨진 자국’ 같았어. 손바닥에 묻은 걸 닦아내려 하다가 손을 멈췄다. 손바닥 중앙에 작은 긁힌 자국이 있었거든. 분명 아까까진 없던 거였다.
돌아와서 잠깐 정비병이랑 마주쳤는데, 그는 내 군화를 보자마자 표정을 바꿨어. “오늘… 훈련장 어디로 갔지?”라고 묻더라. 나는 그냥 절차대로 이동했다고 대답했는데, 정비병이 고개를 저었다. “그 흙은 거기 흙이 아니야.” 말끝이 살짝 떨렸어. 그가 더 이상 말하기 전에 다른 간부가 지나가서 대화가 끊겼고, 나는 그 뒤로 그 흙이 내 군화에서 사라지지 않는 이유를 계속 혼자 떠올리게 됐어.
며칠 뒤, 후반기 정리할 때 창고 정리반이 우리 군화에 대해 “분실물 있을 수 있으니 번호대로 다시 대조”를 했어. 그때 내 군화 옆에 있던 한 켤레의 군화를 옮기는데, 상자가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종이 한 장이 바닥으로 떨어졌지. 종이는 누렇게 젖어 있었고 글씨가 희미했는데, 그래도 제목은 보였어. ‘훈련장 토양 보존 구역’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고, 아래에는 누군가가 덧붙인 듯한 메모가 있었어. 내용이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데, 마지막 줄만 또렷하게 남아 있어. “군화에 묻은 건 흙이 아니라, 지나간 사람의 순서다.”
그 뒤로 난 군화를 벗을 때마다 발바닥 감각이 달라지는 걸 느꼈다. 그냥 찝찝함이 아니라, 아주 미세하게 누군가가 발을 딛는 느낌처럼. 물론 그게 진짜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어. 근데 아직도 생각하면 소름 돋는 게 있어. 훈련장에 안 갔는데 내 군화엔 흙이 묻어 있었다는 게, 단순히 누가 장난을 쳤다는 이야기로는 끝나지 않더라.
그 흙은, 내가 어디를 갔는지보다 내가 아직 가지 않은 곳을 먼저 기억하고 있었던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