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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거래로 산 커피잔에 누군가의 이니셜이 새겨져

2026-10-01 20:29:13 조회 0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중고거래로 산 커피잔에 누군가의 이니셜이 새겨져 있었는데, 처음엔 그냥 개인 취향이겠거니 했어요. 택배 받아서 상자 열자마자 잔 안쪽 바닥에 얇게 파인 글자들이 보이더라고요. 하필이면 딱 제가 보기에도 “누가 자기 물건처럼 길들인” 흔적 같은 느낌이라, 사진으로는 안 보이던 부분이어서 더 찜찜했습니다.

판매자 말은 이랬어요. “카페에서 쓰던 거 정리해요. 상태 좋아요.” 그런데 저는 유리 잔도 아니고 도자기 커피잔이라서, 스크래치나 사용감이 얼마나 있는지 보는 편인데, 사진엔 잔 바닥 쪽 디테일이 거의 없었거든요. 그래도 가격이 괜찮았고, 포장도 잘 되어 있어서 그냥 넘어갔습니다. 일단 집에 와서 먼저 깨끗이 씻었어요. 따뜻한 물에 세제 풀고, 솔로 안쪽도 살살 문질렀는데도 글자가 지워지진 않더라고요.

문제는 물기 닦고 나서 더 또렷해진 그 이니셜이었습니다. 보통은 스티커나 펜 자국이면 문질러지거나 번지는데, 그건 파여 있는 형태였어요. 잔 바닥 가운데를 중심으로 작은 글자 두 개가 나란히 찍혀 있었고, 글씨체가 대충 아무렇게나가 아니라 각이 살아있는 스타일이라서요. 저는 한동안 “누구 선물 받았나” 정도로만 생각했죠. 커플로 쓰는 잔이거나, 직장 동호회에서 단체로 맞춘 거일 수도 있다고요.

근데 이상하게도 그날 저녁, 커피를 타서 잔을 들었을 때 손끝이 한 번 더 멈추는 기분이 들었어요. 보통 도자기 잔은 바닥이 매끈해서 아무 생각 없는데, 제 손바닥 감각으로 그 파인 부분이 살짝 걸리는 느낌이 있었거든요. 잔을 기울이면 글자가 잠깐 비치고, 다시 각도가 바뀌면 어둠 속에 사라지듯 보였어요. 저는 결국 “혹시 손님 맞이할 때 쓰던 잔인가” 싶어서, 그날은 그냥 평소처럼 마셨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도 물에 담갔다가 다시 한번 문질렀는데, 그 이니셜 옆에 아주 미세한 흠집들이 더 보였어요. 흠집은 스크래치라기보다 ‘같은 자리에 반복해서 뭔가가 닿아 닳은’ 느낌이었어요. 저는 그때부터 이유를 찾으려다가, 반대로 더 꼬이기 시작했어요. 중고로 물건을 사면 사용 흔적이 남아있는 건 당연한데, 이런 식으로 특정 위치에만 집중된 패턴은 뭔가 “의도된 사용” 같다고 느껴졌거든요.

그래서 판매자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봤어요. “잔 바닥에 이니셜이 파여 있네요. 혹시 원래 쓰던 곳/사연이 있나요?” 메시지를 보냈는데, 답은 생각보다 빨리 왔습니다. “아, 그거요. 저도 받은 거라 몰라요. 그냥 개인이 소장용으로 새긴 거겠죠.” 그런데 그 문장이 좀 이상했어요. ‘받았다’는 말은 이해가 가는데, “개인이 소장용으로 새긴 거겠죠”라고 굳이 단정하듯 말하는 느낌이요. 마치 이미 누군가에게 비슷한 질문을 한 적이 있는 사람처럼요.

그날부터 잔을 쓸 때마다 마음이 불편해서, 저는 사진을 다시 자세히 찍어 두었어요. 확대해보니 이니셜 뒤에 아주 희미한 점 하나가 더 있는 것 같더라고요. 처음엔 그냥 작은 장식일 줄 알았는데, 점의 위치가 매번 같은 각도에서만 드러났습니다. 빛을 비스듬히 비춰야 보이는 정도라서요. 저는 그 점이 “이니셜 뒤에 날짜나 약어가 더 있었는데, 닳아서 사라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제 상상이겠지만, 자꾸 그럴듯하게 연결돼버리니까 더 무서웠습니다.

그 후로 저는 혹시나 해서 잔 구매 내역을 다시 봤어요. 판매글에 “상태 좋음” “일괄 정리” 같은 문구만 있고, 세부 사진은 딱 필요한 만큼만 올라와 있었어요. 특히 바닥면 사진이 없었다는 게 뒤늦게 더 크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이게 단순한 누락인지, 아니면 아예 보여주기 싫어서 제외한 건지 생각이 계속 반복됐어요. 왜 하필 이니셜이 보이는 면만 사진에서 빠졌을까… 그 질문이 계속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잔을 씻고 건조시키다가 습관처럼 잔 바닥을 손가락으로 한 번 더 훑어봤어요. 그때 아주 잠깐, 제 눈에 글자 모양이 바뀌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분명 같은 각도인데도, 물기가 남아있는 반사 때문에 글자가 다른 형태로 비치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저는 그 순간의 ‘다른 모양’이, 누군가가 처음부터 의도했던 변형처럼 느껴져서 멈칫했어요. 그 느낌은 설명하기 어렵지만, 그냥 “누군가의 흔적을 가져가면 그 흔적도 따라온다”는 식의 기분이었습니다.

지금도 그 커피잔은 제 식탁 위에 그대로 있어요. 그런데 더 이상 매일 쓰진 못하겠더라고요. 가끔 손님이 오면 “옛날에 산 거예요”라고 둘러대면서도, 잔을 건네는 순간 바닥의 이니셜이 혹시 상대 눈에도 들어갈까 봐 자꾸 각도를 조절하게 돼요. 그리고 밤에 혼자 잔을 씻고 말릴 때면, 그 작은 글자들이 조용히 제 쪽을 보는 것 같아서… 정말로 이상하게, 한 번은 ‘누군가가 다시 돌아올 위치’가 정해져 있는 물건 같다는 생각만 계속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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