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검사 대기 중에 내 차트가 내 옆을 지나갔어
병원에서 검사 대기 중에 내 차트가 내 옆을 지나갔어. 근데 그게 단순히 직원분이 정리하러 지나간 거면 모를까, 나는 분명히 내 자리에서 서류를 눈앞에 두고 있었거든. 옆걸음처럼 휙 지나간 차트가 유난히 낯설게 느껴져서, 머리가 먼저 “어?” 하고 멈췄다.
그날은 아침부터 비가 왔고, 나는 내과 쪽 접수 후 피 뽑는 검사실 앞에서 대기번호 기다리고 있었어. 의자에 앉아 있는데도 손바닥이 자꾸 축축해져서, 휴대폰만 만지작거리다가 결국 차트가 올려진 작은 철제 테이블을 계속 봤다. 내 차트는 내 이름이랑 검사 항목이 크게 적혀 있었고, 나는 그걸 확인하면서 “아, 오늘은 이거구나” 하고 스스로를 달랬지.
대기실은 생각보다 조용했어. 사람들은 줄어들지 않고 계속 들어오는데, 소리는 낮게 깔려 있고, 바닥에서는 휠이 달린 카트가 가끔씩 지나가는 소리만 들렸어. 나는 검사실 쪽 문이 열리는 소리나, 누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만 기다렸고, 그 사이로 간호사가 “다음” 같은 단어를 짧게 던질 때마다 내 몸이 먼저 반응했어.
그런데 한 번, 내 옆을 가로지르는 듯한 움직임이 생겼어. 카트가 지나가는 정도가 아니라, 차트 한 장이 바람에 날리듯 휙—하고 옆으로 스치더라. 나는 고개를 옆으로 돌렸는데, 내 차트랑 비슷한 색의 커버가 보였고, 그 위에 내 성이 한 글자도 틀리지 않게 찍혀 있었어. 이상하다 싶어서 눈으로 따라갔는데, 차트는 멈추지 않고 그대로 검사실 쪽으로 넘어갔어.
나는 순간적으로 “내 차트가 왜 저기로 가지?” 싶어서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는데, 직원들이 움직이는 동선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내 행동이 오히려 민망해질 것 같았어. 어차피 누군가 가져가겠지, 내가 착각했겠지, 그 정도로 정리하려고 했지. 근데 내 발밑, 의자 옆 철제 테이블 위에는 분명히 차트가 그대로 있어야 했거든. 그런데 몇 초 뒤 다시 보니까 테이블은 비어 있었어. 방금 전까지 분명히 내 손이 닿을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있었는데.
내가 혼자 앉아 있는 것도 아니고, 뒤에 사람들이 있고, 앞에도 대기하는 사람이 있었으니까 누가 가져간 게 맞는데, 이상한 건 그 누구도 “차트” 같은 걸 들고 지나간 사람이 없었다는 거야. 간호사나 직원은 내 앞을 지나간 적도 없고, 카트는 한 번 지나가긴 했지만 거기에는 다른 환자 서류가 섞여 있는 게 보였어. 나는 그걸 되짚다가 결국 내 차트를 찾을 수밖에 없었어. 그런데 찾는 동안, 안내 방송이 내 번호를 또 부르더라고.
검사실 앞에서 나는 직원에게 “제 차트… 방금 지나간 것 같은데요”라고 말했어. 그랬더니 간호사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수첩을 뒤적이다가 “지금 그 번호 검사 들어갔어요. 아까 가져가셨는데요?”라고 했지. 내가 “제가 여기 있었어요. 저는 차트를 본 적이 없는데요”라고 하니까, 간호사는 잠깐 말을 멈췄다가 “대기 중엔 서류가 계속 이동해요. 혹시 다른 분이랑 착각하셨나 봐요”라고 얼버무렸어. 나는 그 말이 너무 태연해서 오히려 더 찜찜했어.
그때 내 머릿속엔 이상한 장면이 반복돼. 차트가 내 옆을 지나갈 때, 내가 느낀 그 “가벼운 스침” 같은 감각이 있어. 손등이 스치고, 피부가 한 번 간질해지는 느낌. 그런데 직원들 말대로라면, 나는 분명히 내 차트를 놓치지 않았어야 했고, 더 이상하게도 검사실 앞에서는 내 이름이 아니라 다른 환자 접수 표가 잠깐 보였다가 사라졌어. 사라지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눈에만 남고, 손으로 잡을 수 없다는 느낌. 내가 뭔가를 상상하는지, 아니면 실제로 누군가가 “내 자리에서 뭔가를 가져갔는데” 그 흔적만 지운 건지 끝내 구분이 안 갔어.
검사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대기실에서 다시 철제 테이블을 봤어. 내 차트가 있어야 할 자리는 비어 있었고, 바닥에는 뭐가 떨어져 있던 것도 없었어. 그리고 그날따라 종이 냄새가 유독 진하게 났는데, 나는 그게 소독약 향이랑 섞여서 더 이상하게 느껴지더라. 집에 와서도 마음이 계속 걸렸어. 혹시 누가 내 차트를 바꿔 가져갔고, 그 과정에서 누락이 생긴 건 아닐까? 그렇게 걱정은 했는데, 정작 확인하려고 전화하면 담당자가 다르게 말할 것 같아서 더 못 했어.
마지막으로 가장 소름 돋는 건, 다음 진료 예약을 잡으러 접수 창구에 갔을 때였어. 내 이름을 말하자마자 직원이 “차트는 이미 준비돼 있어요”라고 하더라. 근데 내가 그날 대기실에서 봤던 색이랑 표기 방식이 똑같았어. 마치 처음부터 내 차트였던 것처럼, 어딘가에서 정확히 제자리로 돌아온 느낌. 병원에서 차트는 분명 사람을 따라 다니는 종이인데, 그날은 종이가 아니라 내가 따라갔던 것 같아서… 밤에 가만히 누우면, 옆을 스치는 그 가벼운 바람 소리가 자꾸 떠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