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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훈련장 배수구에서 들리던 발소리의 방향

2026-10-06 04:29:11 조회 2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군대 훈련장 배수구에서 들리던 발소리의 방향

그날은 훈련이 끝나고 야간 정비 시간이라 다들 작업등을 켜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던 밤이었어. 나는 탄약고 쪽 배수로 점검을 맡았는데, 훈련장 가장자리 배수구들이 바람에 따라 냄새랑 물소리가 섞여서 이상하게 소리가 커지거든. 그런데 작업을 시작하자마자, 배수구 안쪽에서 아주 또렷한 발소리가 났어. 군화가 질질 끄는 소리도 아니고, 누군가 걸음을 옮기는 소리처럼 일정했는데 문제는 그 방향이 계속 바뀐다는 거야.

처음엔 배수구 옆에 귀를 대면 들리고, 두 걸음만 옮기면 소리가 뒤로 밀려나더라. 나는 장난인 줄 알고 “누구야, 장난치지 마” 하고 낮게 말했는데, 대답은 없었고 발소리는 더 천천히, 더 또렷하게 이어졌어. 소리가 들리는 지점이 마치 내 위치를 따라오듯이 움직이니까, 나도 모르게 자꾸 뒤를 돌아봤다. 그런데 뒤에는 아무도 없었고, 작업등 불빛만 물웅덩이 가장자리를 따라 흔들리고 있었지.

배수구는 콘크리트 격자 사이로 물이 빠지는 구조라, 아래로 완전히 뚫린 게 아니라 중간중간 굴곡이 있어. 그래서 “안에서 누가 걷고 있나?” 싶은데, 발소리가 너무 규칙적이라 오히려 사람이 걷는 리듬 같았어. 또 특이한 건, 어떤 순간엔 배수구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라 “훈련장 안쪽에서 걸어오는 소리”처럼 들리더라. 그럴 땐 내가 서 있는 쪽이 아니라, 철조망 쪽 방향에서부터 소리가 모여드는 느낌이었어.

나는 그날 이후로 유난히 소리에 집착하게 됐어. 정비 끝나고도 잠이 안 와서, 당직실 불빛 꺼지기 전에 몰래 다시 배수구 근처로 갔거든. 밖은 고요한데, 가끔 바람이 배수로 틈을 타고 휘익 소리를 내는 건 맞아. 근데 그건 소리가 일정하지 않아. 반면 발소리는 박자가 있더라. 그리고 정말 이상하게도, 내가 배수구를 향해 걸어가면 소리는 더 가까워지는데, 반대로 옆으로 걸어가면 갑자기 멀어져. 마치 소리가 “방향”을 유지하려고 하는 것처럼, 내가 바뀌는 만큼 위치도 바뀌는 느낌이랄까.

그날 아침에 부대 선임한테 말했는데, 선임은 대충 “훈련장 아래 배관이랑 낡은 덮개 때문에 울리는 거지. 바람 불면 그렇게 들려”라고 하더라. 근데 나는 그 말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그날 낮에 똑같은 위치에서 귀를 대 봤어. 낮에는 소리가 전혀 없었거든. 대신 물이 흐르는 소리랑 멀리서 차량 엔진 소리만 들렸지. 그러다 해가 지고 사람들이 움직임이 줄어들면, 그때부터 다시 시작됐어. 밤이 되면 발소리가 다시 “어느 쪽”인지 정해지지 않은 채 떠돌기 시작하는 느낌이었어.

며칠 뒤에는, 훈련이 한창일 때도 비슷한 현상이 생겼다. 점호 끝나고 대기하다가 참호 쪽으로 돌아가는데, 갑자기 배수구 쪽에서 발소리가 “분명히” 들렸어. 근데 그 소리가 들린 반대편 통로에서 누가 걸어나오는 것처럼, 내 뒤를 스치듯이 지나가더라. 나는 멈춰 서서 주변을 훑었고, 누가 있는지 확인했는데 아무도 없었어. 그럼에도 소리는 딱 한 번, 정확히 누가 내 뒤에서 앞으로 지나가는 타이밍처럼 들렸지. 그 순간 손끝이 차가워져서 얼어붙는 느낌이 들더라.

그 뒤로 나는 배수구를 함부로 밟지 않게 됐어. 누군가가 아래로 다니는지 모르니까 겁이 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방향이 바뀌는 게 마음을 계속 건드려. 소리가 “여기로 와”라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반대로 “너는 여기다”라고 표시하는 것 같기도 했거든. 어떤 밤에는 배수구 안에서 들리던 발소리가 철조망 방향으로 이동했고, 어떤 밤에는 반대로 탄약고 쪽으로 몰렸어. 나는 그걸 단순한 반사음이라고 하기엔 너무 일관되게 ‘의식’처럼 움직인다고 느꼈어.

결국 마지막 날, 그러니까 전역 직전 밤에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배수구 앞에서 한참을 멈춰 서서 아무 말도 안 하고 듣기만 했어. 바람이 멎는 순간이 있잖아. 그 고요가 찾아오자 발소리는 처음엔 격자 아래에서만 들리다가, 갑자기 내 발밑에서 동시에 울리는 것처럼 퍼지더라. 마치 소리가 아래에서 위로 올라오고, 다시 옆으로 퍼져서 사방을 재는 것 같았어.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는 대신 억지로 참았는데, 그때 발소리가 딱 한 번 멈췄어.

그 멈춘 뒤에,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군화가 콘크리트 바닥을 한 번 “툭” 치는 소리가 났다. 배수구가 아니라, 내 옆에서. 나는 돌아볼 틈도 없이 경계등 쪽 불빛이 잠깐 깜빡였고, 그 깜빡임과 함께 발소리는 다시 배수구 방향으로 흘러들어갔어. 그날 이후로는 더 이상 듣지 못했는데, 가끔씩 어디선가 콘크리트 틈에서 바람이 새어 나올 때면, 아직도 소리가 내가 서 있는 위치를 따라 방향을 정하는 것 같아서 등줄기가 서늘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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