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면 종이 울렸다
오늘도 그 병원 엘리베이터는 평소처럼 조용했다. 그런데 내가 버튼을 누르는 순간, 층수가 바뀌는 소리가 아니라 종이 울리는 듯한 맑은 소리가 딱 한 번 났다. 처음엔 착각인 줄 알았는데, 그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엘리베이터의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 살짝 늦게 따라오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부터 일이 이상하게 꼬이기 시작했다.
퇴근 시간 즈음, 응급실 쪽 물품을 가져다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2층에서부터 시작하는 병동 동선이 익숙해서, 늘 가던 대로 엘리베이터 앞으로 걸어갔다. 버튼은 병원 특유의 하얀 글씨가 지워질 듯 희미했고, 유독 1층과 3층 사이에 있는 숫자 버튼만 손때가 더 진하게 남아 있었다.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몇 층이지?’를 생각하는 것도 잠깐, 손이 먼저 움직였다. 2층이 아닌 1층 버튼을 눌렀는데, 손가락 끝에서 닿는 감각이 딱딱하지 않고 종이처럼 얇게 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다음, 아까 말한 그 소리. 딩— 하고 울리는 종소리인데, 스피커가 아니라 어딘가에서 직접 울려 나온 것 같은 울림이었다.
문이 열릴 때 바람 냄새가 이상했다. 일반 엘리베이터는 막 닫히며 내부 공기가 잠깐 밀려나오는 정도인데, 그날은 종이 뭉치에서 나는 냄새 같은 게 확 퍼졌다. 나는 괜히 기분이 더러워져서 “장난치나” 싶어 버튼을 다시 눌렀다. 그런데 이번에는 종소리가 아니라, 아주 작은 종이 종이끼익— 하고 마찰음이 들렸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나 말고 아무도 없었다. 거울에 비친 내 어깨가 한 박자 늦게 움직였고, 반사된 내 손이 버튼을 누르는 순간보다 먼저 살짝 내려가 있었다. 분명히 내가 눌렀는데, 거울에서는 마치 이미 눌렀던 동작을 따라가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순간 식은땀이 났고, 얼른 닫힘 버튼을 눌러서 빠져나가려 했는데 그 버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손을 더듬자 패널이 평소보다 조금 더 안쪽으로 움푹 들어가 있었다. 마치 누군가 손바닥으로 누르고 있던 자국처럼, 손을 대면 부드럽게 들어가는 느낌. 그때 엘리베이터 층 표시등이 1에서 2로 넘어가려다 멈칫하더니, 숫자 대신 흰 점이 잠깐 번졌다. 그게 무슨 경고등인지도 모르겠고, 병원 관리자에게 전화하려고 휴대폰을 꺼내는데, 화면이 전부 하얗게 빛나며 아무것도 안 보였다.
급하게 창문도 없는 벽만 바라보고 있다가, 문득 버튼 패널 아래쪽을 봤다. 거기엔 늘 없던 얇은 종이 조각이 끼어 있었다. 종이는 찢어진 게 아니라, 누가 정교하게 잘라 끼운 것처럼 모서리가 반듯했다. 나는 그걸 빼려고 손가락을 넣는 순간, 다시 한 번 딩 하고 울렸다. 그리고 종이 조각 위에 아주 작은 글씨가 보였다. 글씨는 분명 병원에서 쓰는 용지 글씨체였는데, 내용은 내가 아는 어느 문서 양식도 아니었다.
“버튼 누른 사람은 기록된다.” 그 문장 하나가 전부였다. 읽는 순간 이상하게도 머리가 멈춘 것처럼 멍해졌다. 그 뒤로 엘리베이터는 정상처럼 1층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도착해 문이 열렸을 때, 1층 복도에서 나는 소리들이 이상했다. 환자 이동 소리, 간호사 지나는 발소리가 평소와 다르게 묵직했고, 무엇보다 복도 끝 조명이 한 칸씩 늦게 켜졌다.
나는 뛰어가듯 복도를 지나, 물품을 전달하고 나서 바로 로비로 내려갔다. 그 병원 안내데스크에 엘리베이터 버튼이 이상하다고 말하려 했는데, 직원들이 내 말의 중간을 자르듯 “예, 민원 접수해드릴게요”라고만 했다. 마치 이미 누군가가 비슷한 말을 했던 것처럼, 표정도 질문도 없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그 종이 조각이 손끝에 남아 있는 것 같았고, 밤에 잠들기 직전에는 자꾸 엘리베이터 거울 속 내 손이 한 박자 빠르게 움직이는 장면이 떠올랐다.
그 뒤로 며칠 동안 나는 그 병원 엘리베이터를 보기가 싫어서 다른 동선으로만 다녔다. 그런데도 가끔 병원 근처를 지나갈 때, 멀리서 한 번씩 딩—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정말로 엘리베이터 종소리인지, 아니면 그 종이 조각에 적힌 말이 내 귀에 남아서 울리는 건지… 아직도 정확히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 누군가 버튼을 누르는 순간, 병원은 ‘누가’ 들어왔는지 조용히 기록한다는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