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인데도 내 얘기는 잘 안 물어봐
썸 시작한 지 한 달쯤 됐을 때였어. 서로 호감은 있는 것 같았거든. 약속도 잘 잡히고, 만나면 웃고, 헤어질 때도 “다음에 보자”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어. 근데 이상하게도 나는 계속 내가 먼저 말을 꺼내게 되더라. 처음엔 내가 수다쟁이라 그런가 싶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패턴이 뚜렷해졌어.
예를 들면 카톡을 해도 그렇더라. 내가 “오늘 뭐했어?”라고 물어보면 상대는 “그냥 이런저런 거 했지” 하고 짧게 답하고 끝. 그러고 나서 내가 “근데 너 요즘 일은 어때?” 물으면 그제야 뭐가 좀 풀려. 근데 내가 말한 내용은 거기서 끝이고, 그 다음은 다시 내 차례야. “나는 이거 하다가 피곤해서…” 같은 내 얘기가 길어지면, 그 사람은 듣고는 있는데 ‘그래서 너는?’ ‘그때 어땠어?’ 같은 질문이 거의 안 붙어.
처음엔 괜찮았어. 썸이라는 게 각자 템포가 있잖아. 근데 어느 날부터는 약속 잡을 때도 내가 주도하는 느낌이 강해. “이번 주에 수요일 저녁 어때?”라고 내가 먼저 던지면, 상대는 “수요일은 괜찮아” 하고 끝. 그 다음으로는 “그럼 우리 뭐 먹을까?” 같은 디테일도 내가 알아서 찾아. 반대로 상대가 제안하는 건 거의 없었어. 카톡에서 이모지도 가끔 보내고, 전화하면 목소리도 편한데, 대화의 중심이 항상 나 쪽으로 쏠리는 느낌.
그래서 난 한번 ‘대놓고’ 물어볼까 고민했거든. 근데 썸에서 너무 직설이면 부담 줄까 봐, 그냥 가볍게 떠봤어. 내가 “너는 이런 얘기할 때 내가 물어봐야 해?”라고 장난처럼 던졌더니, 상대가 “아니야, 그냥 너 말이 재밌어서 같이 듣다 보면 시간이 빨리 가”라고 하더라. 말은 좋은데, 그게 계속 반복되니까 마음 한쪽이 계속 찜찜해졌어.
실제로는 이런 식이었어. 내가 “어제 친구랑 술 마셨는데, 요즘 내 주변 사람들이 다 연애 얘기만 하더라”라고 하면, 상대는 “그랬구나” 하고 넘어가. 그 다음 내가 “너는 친구들이 연애 얘기하면 어떤 편이야?”라고 물어야 비로소 대답이 나와. 그런데도 상대가 내 얘기에서 실마리를 잡아 ‘그럼 너는 왜 그랬어?’ 같은 질문을 하진 않아. 마치 상대가 내 말을 ‘정보’로만 듣고, ‘대화로 이어갈 연결고리’를 잘 못 찾는 것처럼 느껴졌어.
그날이 결정타였던 게, 주말에 카페 갔을 때야. 내가 차분하게 “나는 사실 요즘 좀 지치긴 해. 일도 그렇고 멘탈도 그렇고”라고 말했거든. 그러자 상대는 바로 “왜? 무슨 일 있어?” 하고 들어야 하는 타이밍인데, “아… 그래?” 하고 커피 홀짝이고 잠깐 말이 멈췄어. 난 그때 ‘아, 여긴 내 얘기를 깊게 못 들어주는 타입이구나’ 싶었어. 그래도 내가 조금 더 설명을 이어서 해주니까 그제야 “그럼 너는 쉬면 되겠다”라고 하더라. 공감은 하는데 질문이 없으니까, 결국 위로도 얕게 끝나는 느낌이었어.
그래도 내가 쉽게 포기할 마음은 없어서, 그 다음엔 아예 ‘테스트’처럼 행동했어. 내가 먼저 질문을 줄이고, 상대가 내 얘기를 듣고 나서 뭐가 궁금한지 보려고 했거든. 만약 상대가 진짜로 관심이 있으면, 내 말을 듣고 질문을 던지겠지 싶었어. 근데 결과는 뻔했어. 카톡에서 내가 “요즘 운동을 다시 시작했어. 근데 아직도 몸이 잘 안 따라오더라”라고 길게 말했는데, 상대 답장은 “오 좋다! 힘내” 한 줄 끝. 내가 “너는 운동해?”라고 다시 물어보니까 그제야 “가끔은 해” 정도로만 답하고 다시 대화가 끊겼어.
그래서 솔직히 마음이 식는 건 아니었는데, ‘내가 여기서 계속 맞춰줘야 하나’라는 생각이 커졌어. 썸이니까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잖아. 근데 상대가 날 알아가려는 속도가 내 기준에선 느린 편이었어. 물론 성격일 수도 있고, 질문을 잘 못하는 사람일 수도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내 얘기가 계속 단독 멘트처럼 흘러가면 그건 결국 관계가 편해지지 않더라.
그래서 마지막으로 한 번, 이번엔 딱 부담 없는 방식으로 정리해봤어. 카톡에서 “너랑 얘기하면 편한데, 내가 말하면 가끔 너는 질문이 없더라. 나는 그런 거 들으면 더 얘기하게 되거든”이라고 적었어. 상대는 답이 꽤 늦게 오더니 “미안, 내가 자꾸 들으려고만 했나 봐. 다음엔 너한테 더 물어볼게”라고 하더라. 그리고 실제로 약속 잡고 나서 “아까 그거 말한 거, 그때는 왜 그렇게 됐어?” 하고 물어보긴 했어. 그 순간은 진짜 좋았어.
근데 문제는, 그 질문이 ‘한 번’으로 끝나면 또 예전으로 돌아갈 것 같다는 거야. 나는 그날 집 가는 길에 생각했어. 사람마다 표현 방식이 다를 수 있는데, 내가 계속 질문을 기다리게 되는 구조가 되면 결국 내가 지치더라. 그래서 지금은 더 지켜보는 중이야. 상대가 내 얘기를 듣고 “그래서 너는?”을 다시 던질지, 아니면 또 내가 먼저 시작해야만 대화가 굴러갈지. 아직 결론은 안 났지만, 오늘도 카톡을 보내기 전에 잠깐 멈칫하게 된다. 그 멈칫이 다음엔 설렘이 될지, 아니면 체념이 될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그 애매한 온도가 계속 남아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