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 장롱 밑에서 젖은 종이 냄새가 났다
시골집 장롱 밑에서 젖은 종이 냄새가 났다. 처음엔 비가 샌 것도 아니고, 장마도 끝났는데 왜 냄새가 올라오지 싶어서 그냥 문을 닫아버렸다. 그런데 그날 밤이 지나고 나서도, 나는 자꾸 그 냄새를 다시 맡게 됐다. 거실에서 부엌으로 걸을 때마다, 발끝이 장롱 쪽을 스칠 때마다 코끝에 눌어붙는 그런 냄새였다.
어릴 때부터 시골집은 늘 눅눅했다. 벽지가 오래돼서 뜯겨나가면 곰팡이 냄새가 먼저 났고, 장롱은 전쟁통에나 쓰던 것처럼 무거워서 잘 못 여는 편이었다. 그래서 그날도 “또 습기겠지”라고 넘겼는데, 냄새의 성격이 달랐다. 곰팡내처럼 퀴퀴한 게 아니라, 젖은 종이를 손으로 비비면 나는 특유의 냄새랄까. 종이 젖는 냄새가 아니라, 누군가 오래된 문서를 물에 담갔다가 꺼내 말린 것 같은 느낌.
다음 날 아침, 집안 어른은 아무 말이 없었다. “장롱 밑을 청소할 때 됐네”라고 내가 농담처럼 꺼냈더니, 어른은 표정만 잠깐 굳었다. 그러더니 곧바로 라면 끓이는 소리로 대화가 끊겼다. 내가 왜 그렇게 신경 쓰냐는 듯이, 손으로 머리를 툭 쳐서 넘어가려는 눈치였고.
결국 점심쯤에 혼자 장롱을 끌어당겼다. 장롱 다리는 바닥에 달라붙어 있어서 처음엔 생각보다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얇은 먼지 위로 끌려 나오는 소리와 함께, 아래쪽 틈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틈에서 제일 먼저 올라온 게 냄새였다. 나는 숨을 들이마시자마자 눈이 따가워질 정도로 뭔가 끈적한 게 코 안쪽을 건드리는 것 같았다.
장롱 밑은 바닥이 아니라, 이상하게도 얕은 공간처럼 비어 있었다. 오래된 집이라 밑바닥이 들뜬 건가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시멘트 바닥 아래에 뭔가 덧댄 것 같은 선이 있었다. 손전등을 비추면 먼지 속에 얇은 띠 모양이 보였고, 그 띠가 끝나는 지점에서 종이 조각 같은 게 꿈틀거렸다. “바람인가?” 싶었는데, 실은 바람이 아니라 움직임이 있었다. 마치 젖은 종이가 접혔다 펴지는 것처럼.
나는 무서워서 바로 손을 뺐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멈추지 않았다. 그 젖은 종이 냄새가 내 손가락 끝에서부터 올라오는 것 같아서, 더 이상 장롱을 건드리면 안 될 것 같으면서도 계속 봐야 할 것 같은 마음이 같이 들었다. 결국 손전등을 가까이 대고 틈을 들여다봤다. 그 안에는 먼지에 반쯤 젖어 눌린 무언가가 있었다. 글씨가 적힌 종이인지, 아니면 사진 같은 건지 정확히는 보이지 않았다. 다만 종이들이 한 번쯤이라도 펴졌다가 다시 눌린 자국이 분명했다.
그때 뒤에서 누가 “그거 건드리지 마”라고 낮게 말했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집안 어른이 서 있었다. 어른은 나를 나무라기보다, 그냥 숨을 고르듯 말을 꺼냈다. “어릴 때도 냄새 나면 거기서 뭔가가… 올라올 때가 있어.” 어른은 그 말을 하면서도 장롱을 보지 않았다. 눈은 다른 데를 보고 있었는데, 손만 내 쪽으로 뻗었다가 멈췄다. 마치 잡으면 안 되는 걸 아는 사람처럼.
그날 이후로 나는 장롱 밑을 아예 건드리지 않았다. 대신 창문을 열고, 바닥 청소를 했는데도 냄새는 가끔씩 올라왔다. 비가 오기 전날이면 더 진해졌고, 누가 집에 오면 그 사람이 먼저 알아차렸다. “여기 뭐가 젖었어?”라고 묻는 말이 반복됐다. 나는 점점 확신이 생겼다. 냄새는 단순한 습기가 아니라, 집 안 어딘가에 오래 묻혀 있던 무언가가 물기와 함께 숨을 쉬는 것 같았다.
며칠 뒤, 늦은 밤에 이상한 일이 있었다. 장롱은 닫혀 있었고, 방 안 공기는 고요했는데도, 장롱 아래쪽에서 아주 조용한 소리가 났다. 물이 뚝 떨어지는 소리도 아니고, 종이가 바스락 마르는 소리도 아닌, 젖은 종이가 서로를 스치는 소리 같았다.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면서도 눈을 못 감았다. 그때 문득 생각이 났다. 어른이 말한 “올라올 때”라는 게, 실제로 위로 올라오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기억 같은 게 냄새로 번지는 걸 수도 있다고.
새벽이 되자 냄새가 사라졌다. 대신 아침 햇빛이 장롱 틈 사이로 들어오면서, 아래쪽 먼지 위에 아주 희미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손자국인지, 아니면 누군가가 아래에서 밀어 올린 자국인지 알 수 없었는데, 그 흔적이 종이 눌린 모서리처럼 정갈했다. 그리고 그날도 나는 장롱 밑을 다시 보지 않았다. 다만 그 “젖은 종이 냄새”가 다시 올라오면, 이번엔 무엇이 내 쪽으로 올라올지 알 것 같아서 더 무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