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주차장 무인정산기 화면이 가끔 꺼졌다 켜졌다
지하주차장 무인정산기 화면이 가끔 꺼졌다 켜졌다. 처음엔 그냥 전기나 소프트웨어 버그겠지 싶었는데, 그날부터는 “가끔”이라는 말이 너무 자주 울리기 시작했어. 퇴근하고 들어가면 정산기 위에 손바닥만 한 빛이 켜지면서 요금이 떠야 하는데, 어느 날은 버튼을 누르기도 전에 화면이 뚝 하고 꺼져버리더라.
처음 이상함을 느낀 건 한밤중이었어. 관리사무소에 연락하려다가도, 또 켜지겠지 하고 잠깐 기다렸거든. 그런데 꺼진 상태에서 카드 리더기 쪽에서 아주 미세한 잡음이 났고, 화면이 다시 켜질 때마다 글자가 한 줄씩 늦게 따라오는 느낌이었어. 마치 누군가가 천천히 타이핑하는 것처럼, “결제 가능합니다” 같은 문구가 늦게 나타나더라.
다음날 낮에 확인하려고 직접 봤는데, 낮에는 또 멀쩡했어. 그래서 더 황당했지. “야간만 그런가?” 싶어서 같은 시간대에 다시 갔더니, 이번엔 더 뚜렷했어. 화면이 꺼졌다 켜질 때마다 정산기가 켜지는 위치가 달랐거든. 전원 버튼을 누른 것도 아닌데, 갑자기 전광판 색이 바뀌면서 요금이 갱신돼버리는 식이랄까.
나는 이게 그냥 전원 불안정인지, 아니면 누가 장난치는 건지 궁금했어. 그래서 퇴근길에 CCTV 없는지 둘러봤는데, 정산기 바로 앞은 사각지대가 꽤 있었더라. 관리자가 “그쪽은 카메라 화각이 안 나와요”라고만 말했지, 그 안쪽에 무슨 일이 있는지 설명은 없었어. 사람들은 바빠서 그러려니 하는데, 이상한 일은 늘 그 틈에서 시작되잖아.
며칠 지나고 나서 진짜 찝찝한 경험이 생겼어. 내가 정산기를 쓰려고 카드 넣는 순간, 화면이 또 꺼졌고, 카드 리더기 불빛이 짧게 깜박했어. 그리고 다시 켜질 때, 화면에 표시된 주차시간이 내가 들어온 시간하고 달랐어. 차번호를 확인하는 단계에서 잠깐 멈칫하는데, 그 짧은 멈칫 사이에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같은 글자가 아니라, ‘조회 중…’이라고만 떠 있었어.
그때는 그냥 내가 잘못 눌렀나 싶어서 다시 시도했지. 그런데 이번엔 화면이 꺼졌다 켜질 때마다, 정산기에서 나는 소리가 똑같더라. 아주 작게 “삐—” 하는데, 그 소리의 타이밍이 마치 한 박자 늦게 반복되는 느낌이었어. 사람이 말할 때 숨이 들어가고 나오는 간격처럼, 소리가 규칙적으로 끼어드는 거야. 나는 그걸 “오류 로그” 같은 걸 내는 건가 하고 애써 넘기려 했어.
며칠 뒤에는 정산기가 아예 멈출 뻔했어. 누가 밖에서 문 열어주는 소리도 들리고, 누군가가 급하게 버튼을 누르는 소란이 났거든. 그런데 정산기가 멈춘 건 그 소란이 끝난 직후였어. 화면이 꺼진 채로 10초쯤 있다가 다시 켜졌는데, 그때는 글자가 거의 안 보일 정도로 흐릿했어. 그리고 요금이 표시되지 않은 상태에서, 화면 하단에 아주 작은 글씨로 “복구 완료”라고만 떠 있더라. 복구가 뭘 복구하는 건지, 왜 내 카드 결제 타이밍이랑 겹치는 건지 그때부터 머리가 복잡해졌어.
이후로는 사람들이 정산기를 “그냥 빨리 긁고 지나가면 된다”고만 말하더라. 어떤 날은 누가 결제하려다 멈칫하면 옆에 있는 사람이 대신 해주기도 했고, 관리자는 “업체 점검 요청했어요”라고만 반복했어. 근데 업체 점검이 온 다음 날에도, 또다시 같은 패턴이 이어졌거든. 화면이 꺼지고 켜지는 타이밍이 점점 더 비슷해지는 느낌이랄까. 특히 퇴근 시간대, 사람들 차가 몰릴 때마다.
나중에야 내가 제일 이상했던 걸 떠올렸어. 정산기 화면이 꺼졌다 켜질 때마다, 딱 한 번씩 내 쪽을 향한 각도에서 빛이 반사되거든. 그 반사가 내 휴대폰 화면에 비칠 정도로 강하게 튀는데, 문제는 내가 화면을 가까이 대지 않았는데도 그 반사가 생겼다는 거야. 전광판 자체가 반사광을 만드는 건 맞지만, 그날의 반사는 “누가 바로 앞에서 보면서 기다린다”는 느낌이 강했어. 그래서 난 그 뒤로 결제할 때 화면을 보지 않으려고 눈을 옆으로 돌리게 됐고, 빨리 하고 나오는 버릇이 생겼다.
그럼에도 아직도 가끔 생각나. 지하주차장은 항상 똑같이 어두운데, 정산기 화면만 유독 살아 있는 것처럼 깜빡이잖아. 꺼졌다 켜지는 사이에, 누군가의 손끝이나 숨이 끼어든 것 같아서… 다음엔 진짜로 내 차가 아닌 다른 정보가 화면에 떠버릴까 봐, 그게 제일 무섭더라. 오늘도 혹시, 내가 카드를 내밀기 직전에 화면이 한 번 더 꺼질까 기다리는 건 아닐까 싶어. 켜지는 순간이 항상 ‘내가 결제할 시간’과 같다는 게 이상하게 마음을 놓지 못하게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