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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랑 명절 차례상 차리다가 서로 역할 바뀐 썰

2026-10-09 08:14:14 조회 1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명절이면 우리 집은 늘 “역할 분담”이 먼저 시작돼요. 차례상 준비도 거창한 건 아닌데, 아침부터 어른들 말씀 들으며 국 끓이고, 나물 무치고, 상 위에 올릴 건 또 그 순서대로 얹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날따라 아침부터 동생이 어디서부터 꼬였는지 “오늘은 내가 다 할게” 모드를 선언하더니, 결국 그 한마디가 그대로 가족 전체를 역할 바꾸는 판으로 만들었어요.

원래 제일 먼저 시동 거는 사람은 아빠였거든요. “동쪽부터, 젓가락은 저렇게, 술은 몇 잔” 같은 말은 기본이고, 제가 그걸 옆에서 받아 적는 느낌으로 따라 했죠. 엄마는 나물 접시 옮겨 놓고 간 맞추느라 정신없고, 할머니는 “대충은 안 돼” 한마디로 모든 걸 통제하는 분위기였어요. 그런데 그날 아빠가 “자, 내가 설거지부터 하고 올게” 하더니 주방 쪽으로 잠깐 빠졌고, 그 사이에 동생이 갑자기 상 옆에 섰어요.

동생은 자신감이 넘쳤는데, 문제는 자신감이 아니라 순서였어요. 상에 올라갈 걸 가져오라는 말을 누가 했는지 순간 놓쳤는지, 냉동실에서 꺼낸 적 있는 전이나 다른 반찬을 먼저 대령하더라고요. 저도 “어? 이건 나중에…” 하려는 찰나에 할머니가 딱 보시고는 “너 이거 어디서 배웠냐” 하셨어요. 그러자 동생이 “아뇨, 제가 오늘 맡기로 했는데요?” 하고 말을 받아치는데, 그 순간 엄마가 “그게 무슨 소리야? 아까 아빠가….” 하며 말끝을 흐렸어요.

사실 그 전에 아빠가 잠깐 멈춰서 “내가 잠깐만 부엌 다녀올게. 너(동생) 오늘 상 앞에서 지켜봐”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엄마가 그걸 “동생은 상 차리는 거 말고 다른 거 맡아”로 들었고, 동생은 “상 앞에서 지키는 게 곧 상 차리기”로 알아들었어요. 서로가 서로를 오해한 상태에서 시간이 쫙쫙 지나가니까, 상 위는 점점 ‘누가 봐도 설명이 필요한’ 배치로 변해갔죠.

그러다가 결정적인 순간이 왔어요. 제사가 시작되기 직전, 아빠가 다시 거실로 들어오며 “자, 이제 술 올려야지”라고 하셨는데, 아빠 눈에 보인 건 상 앞에서 체크하듯 손을 내미는 동생이었고, 그 옆에서 제가 멀뚱멀뚱 서 있는 장면이었어요. 아빠는 한 박자 쉬더니,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래, 너 잘하고 있네. 그럼 나는 다른 거 준비할게”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한마디로 공기가 바뀌었고, 그때부터 역할이 진짜로 뒤집혔어요.

할머니는 동생을 보며 “너 대체로 정신은 있구나” 하고 덕담 비슷하게 말했고, 엄마는 갑자기 제게 “너, 국은 계속 데워. 상 위로 옮기기 전에 온도 맞춰야 한다” 하셨어요. 제가 “어? 제가 왜 국을…?” 하기도 전에, 엄마는 반찬 접시를 제 손에 쥐여주며 밀어 넣듯 주방으로 보냈습니다. 동시에 아빠는 상 뒤로 물러나서 “내가 아까 말한 대로만 해”는 잔소리 대신, 어디선가 과일 깎는 도구를 꺼내더라고요. 전형적인 장면이죠. 한 사람의 ‘잠깐’이 전체의 ‘그때부터’로 바뀌는 순간.

그 와중에 동생은 상 앞에서 진지하게 움직였어요. 원래는 좀 급하고 장난기 있던 애였는데, 할머니의 눈빛이 너무 무거우니까 갑자기 모범생처럼 됐달까요. 젓가락 위치를 바꾸고, 술잔을 올릴 때는 손이 떨리는지 계속 한 번 더 확인하고, 종종 “이거 이렇게 하는 거 맞죠?” 하고 우리를 보는데, 그 질문이 오히려 다들 집중하게 만들었어요. 엄마도 “맞아, 거기” 하고 리액션을 해주니까 더더욱 동생이 각 잡는 거예요. 저는 국이랑 탕을 옮기면서도 계속 신기해했어요. 원래 차례상은 ‘어른들 영역’인데, 그날은 동생이 그 영역의 분위기를 잡아버린 거니까요.

하지만 문제는 완벽해지려는 순간 생기더라고요. 제가 국을 마지막으로 올리려는데, 접시가 살짝 비뚤어져 있었던 거예요. 제가 손을 뻗는 사이, 할머니가 “아니야, 저건 각이 안 맞아” 하시며 손가락으로 방향을 짚으셨고, 동생이 그걸 보며 “그럼 제가 다시 옮길게요”라고 하더니 상 위를 한 번 더 정리했어요. 그때 아빠가 뒤에서 조용히 웃으며 “오늘은 다들 제정신이네”라고 말했는데, 그 말이 꼭 웃긴 농담이라기보다 ‘그래도 잘 되고 있네’ 같은 안도감이 담겨 있었어요. 저도 모르게 긴장이 풀렸고, 엄마도 “오늘은 그냥 다들 역할 바뀐 날이다” 하고 한숨 섞인 웃음을 내뱉었죠.

끝내 차례가 시작되고, 술 올리고 절하는 순서를 따라가는데 이상하게도 아무도 크게 안 다투더라고요. 오히려 서로가 서로의 일을 알게 된 느낌이었어요. 동생은 “상 차리는 게 이렇게 세세한 줄 몰랐어요”라고 했고, 저는 “국이랑 탕 온도 맞추는 게 그렇게 중요했구나” 싶었어요. 엄마는 “상은 누가 해도 되는 줄 알았지, 결국 타이밍이 전부더라”라며 옆에서 접시를 정리했고, 아빠는 “아까 잠깐 부엌 간 게 큰일 날 뻔했네” 하면서도 표정은 편안했어요. 돌아보면 그 한 번의 오해가 가족을 더 가까이 붙여놓은 셈이었죠.

물론 명절 후반이 되면 다들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고, 다음 명절엔 아마도 역할 분담을 또 엄청 정확히 하겠다고 다짐하겠지만요. 그래도 그날만큼은, 차례상 앞에서 서로의 손이 엇갈리던 그 순간들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누가 맡은 일을 잘했냐보다, 그 자리에서 가족이 어떻게 서로를 살펴보고 마음을 맞췄는지가 더 크게 남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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