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PX에서 내가 산 적 없는 물건이 내 수납칸에 있었다
군대 PX에서 내가 산 적 없는 물건이 내 수납칸에 있었다. 처음엔 누가 장난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단순히 “누가 훔쳐 넣었다” 같은 수준이 아니라, 내가 분명히 손에 쥐지 않았던 것들이 내 것처럼 딱딱 맞아떨어져 있던 순간부터 이상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그날도 별일 없었다. 당직 끝나고 내무반 정리하면서 PX에서 산 것들만 대충 수납칸에 넣어뒀지. 양말이랑 간식이랑, 그땐 생활관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받는 작은 사치들이 있잖아. 나는 계산대 앞에서 받은 영수증도 주머니에 넣고 있었고, “오늘 산 거는 이거다”라고 머릿속으로 이미 정리해둔 상태였다.
문제는 다음 날 아침이었다. 수납칸을 열었는데, 어젯밤에는 없던 물건이 가운데 칸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포장도 뜯지 않은 새 제품 느낌이었고, 내가 아는 물건이긴 했는데 내가 이번 달 PX에서 그걸 살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더 웃긴 건, 그 물건 옆에 내가 어젯밤 넣어둔 것들이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다는 거였다. 마치 누가 “자리를 아는 사람”이 딱 맞춰 넣은 것처럼.
나는 처음에 그냥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PX에서 비슷한 제품이 몇 개 있거든. 그래서 손끝으로 포장지 질감을 느껴보고, 라벨을 확인하려고 하려는데 그때 누군가 내 등 뒤로 지나가면서 “아, 그거?”라고 툭 던졌다. 그 말투가 웃으면서 장난치는 느낌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진짜로 아는 사람의 태도도 아니었다. 그냥 “네가 모르고 있어” 같은 뉘앙스였다.
수납칸을 다시 훑어봤다. 영수증이랑 내가 사둔 물건들을 대조해도 그 물건 하나만 끼어 들어갈 빈칸이 없었다. 누가 중간에 빼서 넣었으면, 어딘가엔 뭔가 흔적이 남아야 하는데 내 수납칸은 너무 깨끗했다. 군대는 사소한 것도 어차피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곳인데, 내 칸 안만 유난히 정돈돼 있던 게 오히려 더 찝찝했다.
내가 누구 짓일 거라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생활관이 한두 명이 아니고, 수납칸 위치도 모두가 아는 곳이니까. 그래도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남 물건을 끼워 넣는” 행동은 보통 누군가의 특정한 이유가 있지 않나 싶었다. 돈을 아껴서 넣었다고 해도, 왜 굳이 내 칸의 딱 가운데 칸일까. 누군가 나를 특정해서 골라 넣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오후에 나는 상급자나 간부에게 바로 말하러 갈까 고민했는데, 괜히 별일 만들었다가 내가 이상한 사람 되는 것도 싫었다. 대신 말로는 안 하고, 내 물건들 배치만 살짝 바꿔서 “내가 신경 쓰고 있다”는 걸 티 내보기로 했다. 다음 날 다시 수납칸을 열어봤더니, 내가 바꿔둔 흔적은 그대로였고, 그 새로 들어온 물건도 그대로 거기 있었다. 즉, 누군가는 그 물건을 “내가 확인하기 전까지” 그대로 두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때부터 이상한 상상이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혹시 PX에서 나온 물건을 누군가 몰래 다른 사람 칸에 옮겨두는 패턴이 있었던 건 아닐까. 아니면 누가 나를 감시하고 있었던 걸까. 나는 그 물건이 무엇인지 끝까지 뜯지 않고, 포장 상태 그대로 두었다. 그냥 열면 확인이 되는데, 확인이 되면 더 위험해질 것 같아서였다. 근데 그게 또 미움 받을 행동처럼 보일까 봐 더 조심스럽게 굴었다.
며칠 뒤, 그 물건 옆에 작은 쪽지가 끼워져 있었다. 종이 자체는 얇아서 누가 끼운지 금방 티가 나는 수준이었다. 내용은 한 줄뿐이었다. “네가 안 산 것 맞지?” 같은 말. 나는 순간 숨이 멎는 느낌이었다. 장난치기엔 너무 정확하고, 너무 개인적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쪽지를 끼울 정도면 내 칸을 열고, 물건을 건드린 시간이 필요하잖아. 그 시간 동안 누가 내 앞에서 멀쩡히 걸어 다녔다는 게 머릿속에 자꾸 겹쳐졌다.
결국 나는 그 물건을 버리지도, 뜯지도 못한 채로 시간이 흘렀다. 누가 넣었는지 따져 묻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따져 묻는 순간, 그 사람이 “왜 넣었는지”를 설명할 텐데, 그 설명이 설령 말이 되더라도 내 마음은 이미 망가질 것 같았다. 그 물건이 사라졌는지, 아니면 누군가가 다시 회수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PX에서 산 적 없는 물건이 내 수납칸에 들어온 다음부터, 나는 내 생활 공간을 믿지 못하게 됐다는 것이다. 문을 닫아도, 자물쇠를 잠가도, 마음 한구석은 계속 열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