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 오기 전에 설렜다
오늘은 별일 없을 줄 알았는데, 막상 하루가 끝나갈 때쯤 되게 사소한 설렘이 생겼다. 뭐 크게 계획한 것도 아니고 그냥 저녁 때 되면 보통처럼 배달 앱 들어가서 둘러보고 “아 오늘은 뭐 먹지?” 이러는 그 루틴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주문 버튼 누르기 직전부터 마음이 좀 들뜨더라. 배달 오기 전의 그 시간 있잖아. 아직 안 왔는데도 이미 먹는 상상으로 하루가 살짝 바뀌는 느낌.
아침부터는 컨디션이 그냥저냥이었다. 할 일은 조금 있었고, 그 사이사이에 잡생각도 좀 하고, 결국엔 “오늘은 대충 이렇게 흘러가겠지” 싶었는데 오후에 갑자기 날씨가 맑아지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봤자 거창한 건 아니고, 창문 열고 바람 쐬고 커피 한 잔 더 마신 정도? 근데 이상하게 그 한두 가지가 쌓이면 하루가 괜히 괜찮아지는 날이 있더라. 그래서인지 저녁 생각이 더 구체적으로 떠올랐다. 오늘은 따뜻한 국물 있는 걸로 가야겠다, 같은 거.
퇴근하고 집에 오니까 바닥에 신발 벗겨 놓고 가방 툭 내려놓는 그 순간이 오잖아. 그때부터는 “이제 뭐라도 시작해볼까” 모드가 되는데, 나는 보통 그 시작을 배달로 끊는 편이야. 냉장고를 열어보면 어차피 다 먹을 수는 있는데, 귀찮아서 그냥 포기하고 앱으로 간다. 오늘도 그랬다. 지도 켜져 있는 거 보면서 매장 위치랑 내 위치랑 대충 거리 계산하는 그 습관 있지? 나는 그게 은근히 재미있더라. 빨리 오면 좋겠고, 늦으면 어떡하지 같은 마음이 같이 생겨서.
주문은 금방 했는데,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지. 예상 시간 뜨고, “조리 중”으로 바뀌고, “출발”로 바뀌고, 그 사이에 내가 뭘 하고 있어야 할지 자꾸 까먹게 되더라. 보통은 기다리면서 그냥 폰 보고 있으면 되는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집 안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소파에 기대어 있다가도 문득 “지금쯤이면 근처일까?” 싶어서 현관 쪽을 한 번씩 보게 되고, 휴대폰 배달 알림이 울릴까 싶어서 잠깐씩 화면을 켜고 끄고 그랬다.
배달이 오기 전에 설레는 건, 사실 맛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아. 아직 손에 쥐지도 않았는데도 “오늘의 보상” 같은 게 이미 정해진 기분이라서 그런가 봐. 나는 그 시간을 그냥 허전하지 않게 만들어주는 장치처럼 느끼거든. 뭔가를 기다린다는 게 그렇게 나쁘진 않더라. 물론 너무 늦으면 짜증나겠지만, 오늘은 딱 그 적당한 간격이 있어서 더 좋았어. 기다리면서도 마음이 괜찮았고, 오히려 그 사이에 샤워하고, 머리 말리고, 가볍게 밥상 정리하고, 이런 사소한 일들이 더 리듬을 탔다.
근데 진짜로 “오고 있다”는 표기가 뜨는 순간, 그때부터는 마음이 확 가벼워졌다. 현관 쪽으로 슬쩍 걸어가서 문 앞에 서서 소리 들으려고 귀를 기울이는데, 그게 별거 아닌데도 뭔가 이벤트처럼 느껴졌어. 택배 기다릴 때랑 비슷한 감정인데, 음식은 또 시간이 더 촉박하니까 더 신경이 쓰이더라. 심지어 내가 물을 컵에 따라놓고, 냅킨 꺼내 놓고, 그릇 위치까지 딱 맞춰 두는 걸 보면서 “나 왜 이러지?” 싶으면서도 웃음이 났다.
문 열고 받는 순간은 늘 똑같이 끝나는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그 짧은 몇 초가 더 길게 느껴졌다. 포장 뜯는 소리, 김 새어 나오는 냄새, 그리고 그 첫 한입의 온도. “아, 이 맛이었지” 하는 생각이 바로 들더라. 배달 온 게 기분이 좋아서 그런지, 평소에 잘 안 먹던 반찬까지도 같이 집어 먹게 됐다. 먹는 내내 막 큰 감동을 느끼진 않았는데, 대신 하루가 딱 마무리되는 느낌이 들었어. 별일 없이 지나가던 날이, 그래도 어떤 한 지점을 갖게 되는 거.
다 먹고 나서는 설거지나 정리할 것들이 남아 있잖아. 그래서 보통은 그 다음 단계가 좀 귀찮아지는데, 오늘은 오히려 가볍게 정리되더라. 배가 차니까 마음도 편해진 건가 싶고, 무엇보다 “잘 먹었다”는 느낌이 남아서 그런 것 같아. 이제 내일이면 또 똑같이 평범하게 시작하겠지만, 오늘은 배달 오기 전의 그 설렘이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결론은… 다음에도 또 주문 기다리는 시간이 있겠지? 그때도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그냥 현관 쪽 살짝 신경 쓰면서 마음 가볍게 보내야겠다. 오늘도 맛있게 잘 먹고 끝! 이제 침대 가서 푹 쉬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