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거래로 받은 키보드가 자판을 스스로 누르듯 반응했다
중고거래로 받은 키보드가 자판을 스스로 누르듯 반응했다. 처음엔 내가 손을 놓고 있는 동안에도 글자가 자꾸 찍혀서, 그냥 드라이버가 꼬였나 싶었어. 근데 그 키보드는 분명 손에서 떨어져 있을 때도, 마치 누군가가 몰래 치는 것처럼 규칙적으로 반응했어. 사진으로만 봐도 상태가 멀쩡해 보였는데, 택배 박스 열고 키보드 전원을 켜는 순간부터 분위기가 이상해지더라.
사실 구매는 평범했어. 중고나라에서 저렴하게 올라온 기계식 키보드였고, 판매자 말로는 “집에서만 써서 상태 좋아요”였거든. 나는 업무용으로 쓰려고 샀고, 구성품도 깔끔하게 왔어. 박스를 열자마자 키캡이 뽀얗게 정돈돼 있었고, 스위치 냄새 같은 것도 아주 신선했어. 나는 일단 연결해서 테스트만 하고 끝내려 했는데, 그 테스트가 시작부터 이상했어.
USB를 꽂자마자 처음에는 아무 일도 없었어. 그런데 로그인 화면에서 아무 키도 누르지 않았는데도, 화면에 글자가 아주 짧게 튀듯 찍히는 거야. “a” 같은 단발이 아니라, 연달아 같은 패턴으로 이어졌어. 예를 들면 특정 키 하나가 연타하듯 나오고, 그 다음에 띄어쓰기, 다시 같은 키… 마치 누군가가 익숙한 사람의 타이핑 리듬을 흉내 내는 느낌? 나는 순간 키보드 반응 속도 설정이 뭔가 이상한가 싶어서 케이블을 뺐다 다시 꽂았어.
근데 뺐다 다시 꽂는 동안에도, 신기하게도 키가 눌린 흔적이 남아 있었어. 예를 들어 케이블을 꽂자마자 메모장 창이 자동으로 열리진 않았는데, 내가 열기도 전에 이미 한 줄이 적혀 있더라. 내용은 욕설이나 그런 거 아니었어. 이상하게도 내가 예전에 써본 적 없는 문장도 아니고, 그렇다고 누가 대충 칠한 글자도 아니었어. 대체로 짧은 단어들이 이어졌고, 그중 몇 개는 내가 평소 메신저에서 쓰는 표현이었어.
나는 당연히 중고니까 불량인가 싶어서 장치를 확인했어. 제어판에서 키보드 상태를 봤고, 입력 언어도 확인했어. 하지만 특이한 점은 “특정 시간대에만” 심해진다는 거였어. 예를 들어 밤 11시 30분쯤 되면 아무 일 없다가, 정확히 20분 정도 지나면 글자가 갑자기 늘어났거든. 그리고 그 타이핑은 완전한 문장까지는 아니고, 중간중간 끊기거나, 마치 누가 다시 생각하는 것처럼 한동안 멈추었다가 이어졌어. 난 진짜로 손을 바닥에 두고 가만히 있어도 키가 알아서 눌리는 걸 계속 봤어.
그때부터는 기계적 고장 가능성도 의심했어. 키가 눌린 채로 걸렸거나, 액체가 들어갔거나, 내부에 뭔가 붙어서 신호가 튀는 경우. 그래서 키캡을 하나하나 조심히 빼서 청소도 했고, 스위치 주변도 살펴봤어. 그런데 이상한 건, 특정 키 몇 개가 아니라 여러 키가 번갈아 반응한다는 점이었어. 어떤 키는 “엔터”처럼 줄을 넘기고, 어떤 키는 “백스페이스”처럼 지우는 느낌으로 연속 입력이 일어났어. 물리적으로 그렇게 저절로 되려면, 그게 키 하나의 문제로 설명이 안 됐지.
나는 결국 노트북을 재부팅하고, 아예 다른 USB 포트에 연결해봤어. 그리고 다른 컴퓨터에서도 테스트해보려고 들고 갔는데, 거기서도 똑같더라. 다만 패턴만 조금 바뀌었어. 처음에는 내가 자주 쓰는 단어 조각이 섞였다가, 두 번째는 숫자나 특수문자 쪽으로 더 튀는 느낌. 그때부터 “누가 장난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내 방엔 나 말고 아무도 없었고, 집안 CCTV도 당시에는 없었어. 어쨌든 키보드는 내 손이 닿지 않은 상태에서 계속 반응했어.
가장 소름이었던 건, 내가 키보드를 아예 뒤집어 놓았는데도 입력이 멈추지 않았다는 거야. 책상 위에 올려놓을 때는 반응이 잘 보였는데, 뒤집고 손가락으로 방향을 바꿔도 글자는 계속 찍혔어. 결국 “키 자체”가 아니라, 입력 장치가 어딘가에서 신호를 받아서 내 컴퓨터로 보내는 것 같았어. 중간에 전원을 끊는 방법도 해봤는데, USB를 빼는 순간엔 바로 멈추더라. 그래서 나는 그제야 이게 진짜로 ‘자동 타이핑’ 같은 프로그램이나 장치가 숨어있는 건지, 아니면 뭐가 키 입력을 흉내 내는 건지 생각하게 됐어.
판매자에게 메시지를 보냈는데, 답이 늦더니 결국 “초기 불량이네요. 환불 도와드릴게요” 같은 말만 하고 끝이 났어. 근데 환불 과정이 시작되기도 전에, 내 컴퓨터 메모장에 마지막으로 아주 짧게 한 줄이 더 찍히더라. 그 문장은 완성된 문장이 아니라, 마치 누가 타이핑하다가 멈춘 듯한 형태였고, 끝이 이상하게 ‘확’ 하고 끊겨 있었어. 나는 그 줄이 뭔 뜻인지 분석하려고 계속 들여다봤는데, 이상하게도 화면에 붙어 있는 시간 동안은 의미가 자꾸 바뀌는 것처럼 느껴졌어.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키보드가 멀쩡해졌어.
지금도 가끔 키보드가 책상 서랍 속에 들어가 있는 걸 보면, 내가 분명 아무 버튼도 안 눌렀는데도 자판이 반응하던 그 타이밍이 떠올라. 중고로 산 물건이 혹시 더러운 고장품이거나 단순 불량일 수도 있지. 근데 나는 아직도, 그때 입력되던 규칙적인 리듬과 마지막에 끊겼던 한 줄이 왜 내 방에서만 반복됐는지 모르겠어. 누군가가 ‘치고 있다’는 느낌이 사라지지 않아서, 그 키보드는 지금도 조심스럽게만 만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