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룸 창문에 누가 손가락으로 문질러 놓은 자국
원룸 창문에 누가 손가락으로 문질러 놓은 자국 그날도 별일 없을 줄 알았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는데, 현관문을 닫자마자 유난히 창문 쪽에서 ‘툭’ 하는 소리가 났다. 보일러는 이미 켜져 있었고, 창문엔 밤공기랑 닿은 김이 얇게 올라와 있었다. 그런데 그 김 위에, 손가락으로 문질러 놓은 듯한 자국이 또렷하게 남아 있었어.
처음엔 누가 장난친 건가 싶었다. 내 원룸은 복도 끝이라 오가는 사람도 드물고, 창문도 1층이라 시선은 쉽게 닿지만 손이 직접 닿을 정도는 아니었다. 창문 유리는 안쪽이 아니라 바깥에서 문질러 놓은 모양이라, 더 이상했다. 자국은 둥글게 번져 있는 게 아니라, 누가 의도적으로 선을 긋듯이 길게 이어져 있었고, 마치 글씨를 쓰려다 만 것처럼 끊기는 부분도 있었다.
나는 일단 생활하던 대로 아침에 닦아야지 싶어서 그냥 휴지로 문질러 봤다. 그런데 김이 걷히는 게 아니라 자국이 유리에 ‘가죽처럼’ 붙은 느낌으로 번지면서 더 또렷해졌다. 손자국 닦아내는 것 같은데, 유리 표면에 스친 기름기랑 먼지가 한 번에 묻어나는 게 아니라, 자국 주변만 유독 매끈하게 남았어. 닦을수록 모양이 바뀌는 게 아니라, 지우는 중에도 형태가 유지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날 밤엔 더 신경이 쓰여서 창문을 몇 번이나 확인했다. 커튼을 반쯤 치고, 불을 끄고, 다시 켜고… 별것도 아닌데 자꾸 확인하게 되더라. 자국은 밤이 되면 또 더 진해졌다. 김이 차오르면서 그 라인이 다시 나타났고, 마치 낮 동안 내 눈을 피해 있다가 밤에 다시 떠오르는 것 같았다. 나는 그걸 ‘습기’라고만 생각하려고 했는데, 습기라면 어떤 모양으로든 번져야 하는데 꼭 같은 위치에 같은 방향으로 반복됐어.
다음 날 아침엔 관리실에 물어보려다가 말았다. 괜히 민망해질까 봐. 대신 간단히 CCTV 없는지 복도 쪽을 봤다. 내 방 앞 복도는 어두웠고, 공용 조명도 가끔 꺼졌다 켜졌다 했다. 그 사이에 누군가 창문 밖에서 손을 대면 흔적이 남을 수는 있겠지, 싶다가도 현실적으로는 높이가 애매하고, 유리 너머로 손가락이 닿는 각도가 쉽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내가 제일 찜찜했던 건, 자국이 매번 같은 자리에 있었는데도 모양이 조금씩 바뀐다는 거였어. 처음엔 길게 ‘한 방향으로 쓸어낸’ 느낌이었다가, 3일째쯤엔 손가락으로 문질러 만든 선이 두 갈래로 갈라졌다. 4일째가 되면 끝부분이 더 뾰족해졌고, 5일째엔 아예 글자 비슷한 모양으로 보이기도 했다. 물론 내가 억지로 의미를 찾는 걸 수도 있지만, 자국이 바뀌는 속도가 너무 규칙적이었어. 마치 누군가 확인하고, 다시 손을 대고, 또 조정하는 것처럼.
어느 날은 늦게 들어와서 신발을 벗자마자 창문 앞에 섰다. 김이 차오른 유리 위로 자국이 선명했고, 그 선이 내 방 안쪽을 향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 문득 생각이 났어. 왜 자국은 항상 내 시선이 닿는 높이에만 생기지? 창문 밖에서 손을 대면 보통 가장 편한 높이로 남아야 하는데, 그 모양이 묘하게도 내 얼굴 높이랑 맞았거든. 그리고 그 자국이 늘… 내가 방문을 닫는 소리를 낸 직후에야 더 또렷해졌다. 나는 집에 들어온 순간, 누군가 ‘방금’ 문질렀다는 착각을 했다.
결국 나는 휴대폰으로 창문을 찍기 시작했다. 같은 각도, 같은 시간대로. 그런데 사진으로 남기면 자국이 실제보다 흐릿하게 나오더라. 유리 위 김과 반사 때문일 거라 생각했는데, 문제는 ‘찍힌 순간’마다 자국이 조금씩 덜 선명해진다는 느낌이었어. 마치 카메라 렌즈를 의식하는 것처럼. 괜히 우스운 말 같지만, 그때의 나는 계속 신경이 곤두서서 작은 변화도 놓치지 않으려 했고, 그게 오히려 더 이상한 확신을 만들었어.
마지막으로 확인한 날, 자국은 처음처럼 길게 문질러 놓은 선만 남아 있지 않았다. 선이 끊긴 자리마다 아주 얇게 ‘점’ 같은 게 몇 개 생겼는데, 딱 몇 글자를 맞춰 놓은 느낌이었어. 나는 도저히 해독이 안 됐고, 괜히 스스로를 몰아붙일까 봐 한참을 떨어져서 보기만 했다. 그러다 갑자기, 창문에 내 비친 얼굴 위로 김이 얇게 흩어지면서 그 점들이 순간적으로 다른 모양으로 겹쳐 보였어. 그게 마치… 내가 보고 있다는 걸 알고, 그 다음 손끝이 어디로 갈지를 이미 정해 놓은 것 같아서, 등줄기가 식는 기분이 들었다.
그 뒤로 한동안 자국이 보이지 않았는데, 오늘도 가끔 창문을 닦을 때 유리 표면을 스치듯 생각나. 지워지는 게 아니라, 기다렸다가 다시 나타나는 종류의 흔적이 있다는 걸 알게 되니까. 밤이 되면 김이 차오르는 소리만 들어도, 문질러진 선이 또 한 번 ‘완성’될까 봐 멈칫하게 된다. 원룸 창문은 원래 사소한 곳인데도, 어느 순간부터는… 창문 밖이 아니라 창문 안을 누군가 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그게 제일 무섭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