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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회의실에서 퇴근 전엔 없던 스크래치가 생겼다

2026-10-13 00:29:13 조회 0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퇴근 10분 전쯤이었나. 우리 팀이 늘 쓰는 회의실 유리문에 붙은 출입자 명단을 찍고 들어가려는데, 문틈에서 뭔가 긁힌 듯한 소리가 아주 잠깐 났다. 그리고 그 순간, 회의실 안쪽 유리벽에 퇴근 전엔 없던 얇은 스크래치가 하나, 둘… 마치 누가 손톱으로 천천히 그어 놓은 것처럼 번져 보였다.

처음엔 먼지나 오래된 흔적인 줄 알았다. 그런데 문제는 위치였다. 회의 테이블 옆, 우리가 매번 의자를 끌어당기는 자리 높이에서부터 유리문 손잡이 방향으로 S자처럼 이어져 있었거든. 어제까지는 없었는데 오늘 아침엔 분명 멀쩡했는데. 나는 괜히 웃음이 나오는 걸 참으며 “누가 쓸고 갔나?” 하고 직원들한테 확인하겠다는 생각만 했다.

그때 팀장님이 뒤에서 들어오셨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하고 물으셨는데, 나는 말끝을 흐렸다. 그냥 스크래치가 생겼다고 하면 누가 그걸 진짜로 믿을까 싶어서. 대신 “유리 닦을 때 누가 긁었나 봐요”라고 얼버무렸고, 팀장님은 별말 없이 “오늘 일정 끝나면 관리팀에 말해” 하고 넘기셨다.

하지만 그 스크래치는 그냥 ‘한 번 긁힘’이 아니었다. 자세히 보니 긁힌 선들이 서로 다른 깊이로 겹치면서, 어느 지점에서 잠깐 멈췄다가 다시 이어지는 느낌이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손을 떼었다가 다시 잡는 것처럼. 게다가 유리 표면 아래로 들어간 듯한 자국이라 닦는다고 지워질 성질이 아닌 것 같았다. 나는 휴대폰 손전등을 비춰서 각도를 맞춰 봤다. 그때 선이 더 또렷해졌다.

회의실엔 보통 퇴근 후에 아무도 안 들어온다. 야근이 있어도 그날그날 사람 수가 달라지는데, 우리 팀은 거의 항상 같은 시간에 끝내고 다른 층으로 넘어가니까. 그런데 그 스크래치가 생긴 타이밍은 이상했다. 오전부터 계속 회의실을 쓰던 날도 있었지만, 오늘은 오전엔 분명 멀쩡했는데 퇴근 직전만 유독 유리가 ‘새로’ 다쳐 있었다. 내가 들어온 순간 소리가 다시 났을까 싶어 귀를 기울였지만, 아무 소리도 없었다.

나는 그냥 확인만 하고 나가려다가, 아무 의미 없는 습관처럼 유리문에 손을 대 봤다. 차갑고 매끈해야 하는데, 그 부분만 살짝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손끝에 닿는 ‘결’이 달랐다. 그 순간 이상하게도 스크래치가 왠지 방향이 있다고 느껴졌다. 테이블 쪽에서부터 문 쪽으로만 이어져 있지 않고, 반대로도 일부가 아주 가늘게 나 있어서 마치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봐”라고 손짓하는 것처럼 보였다.

집에 와서도 계속 생각이 났다. 혹시 보안카메라에 뭐가 찍혔나 싶어서 다음 날 아침에 관리팀에 물어볼까 하다가, 괜히 더 커질까 봐 혼자 참고 있었다. 그런데 점심때쯤 회사 메신저가 갑자기 조용해졌다가 한 명이 짧게 보냈다. “저희도 회의실에서 비슷한 거 봤어요. 퇴근 전에만 생기는 것 같아요.” 그 글을 읽자마자 등골이 서늘해졌다. 회사 사람들 사이에서 “우연”이란 말이 나오기엔 너무 비슷한 타이밍이었다.

그날 오후, 팀장님이 결국 관리팀을 불러 확인하자고 했고, 우리는 회의실 앞에서 같이 기다렸다. 관리팀 직원이 스크래치를 촬영하고, 유리 상태를 점검하더니 “이건 외부에서 긁힌 자국이 아니라 내부 응력 때문에 생긴 미세 균열처럼 보이기도 해요”라고 말했다. 그 말은 반쯤 안심시키는 듯하면서도, 이상한 지점이 있었다. 내부 균열이면 왜 테이블 옆 특정 높이에만 선이 모여 있을까. 왜 문 손잡이 방향으로 이어질까. 직원은 “원인을 특정하기 어렵다”는 말을 덧붙였고, 그 한 문장이 묘하게 더 찜찜했다.

그날 밤, 나는 퇴근 전 마지막으로 회의실 문 옆을 한 번 더 확인하고 나가려 했다. CCTV가 꺼져 있는 시간이 아니라면 굳이 그럴 필요 없었지만, 마음이 자꾸 끌렸다. 조명이 꺼진 회의실은 생각보다 어두웠고, 유리엔 내 휴대폰 화면 반사가 물결처럼 번졌다. 그리고 거기—방금 전엔 없던 얇은 선이 문틀 하단에서부터 조금씩 올라오고 있었다. 아주 천천히, 마치 누가 숨을 고르고 긁는 속도로. 나는 그대로 굳어서 서 있다가, 다음 순간 불빛을 켠 것처럼 환하게 비치던 반사가 사라졌다. 그 자리에 남은 건, 퇴근 전에는 없던 새 스크래치뿐이었다.

지금도 회의실을 쓰면 다들 농담처럼 “퇴근 전에만 뭔가 한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누구도 정확히 언제, 무엇이 시작되는지 말하지 못한다. 유리 위의 자국은 매번 같은 방향으로 이어지고, 다음 날엔 마치 어제의 흠집을 따라 다시 한 번 더 그은 것처럼 깊이가 달라진다. 그게 사람 손톱인지, 아니면 누군가가 남긴 ‘기억’인지 알 수 없어서 더 무섭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 스크래치는 우리가 자리를 비우는 순간부터, 우리를 따라 들어오는 것처럼 보인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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