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거래로 받은 우산에서 젖은 손바닥 무늬가 남아있었다
중고거래로 받은 우산에서 젖은 손바닥 무늬가 남아있었다. 처음엔 그냥 비가 스쳤나, 아니면 누가 급하게 닦다가 얼룩을 덜 말렸나 싶었는데, 펼치는 순간 기분이 확 가라앉았다. 우산 천이 만져질 듯 말 듯 축축했고, 손바닥처럼 넓은 무늬가 가운데에 선명하게 찍혀 있었거든.
상대는 “사용감 거의 없어요. 접으면 컴팩트하고 대나무 손잡이라 튼튼해요”라고 올렸고, 사진도 깔끔했다. 가격도 싸지 않게 적당했고, 거래는 동네 근처에서 바로 했다. 포장도 종이봉투에 비닐로 한 번 감긴 정도였는데, 그때까진 별생각이 없었다. 비 오는 날이라 사람도 많았고, 나는 그냥 우산만 챙겨 집에 들어갔으니까.
문제는 집에서 펼쳐보는 순간 생겼다. 우산을 확 펴면 천이 탁 하고 반듯하게 펴지는데, 가운데가 유독 차갑게 느껴졌다. 빗물 자국도 아니고 물 얼룩처럼 퍼져 있는 것도 아니고, 딱 손바닥을 눌렀다가 떼어낸 모양처럼 경계가 정리돼 있었다. 손가락 끝이 닿았던 자리까지 어렴풋이 보일 정도로 형태가 남아있어서, 그냥 우연한 얼룩이라고 보기엔 이상했다.
나는 그 무늬를 휴지로 한 번 문질렀다. 그런데 휴지에 묻어나는 건 물이 아니라, 이상하게도 “젖은 느낌”만 남아있었다. 마치 이미 말랐는데도 표면만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손바닥 무늬 위로 휴지를 얹고 잠깐 누르면, 다시 그 자리가 도톰하게 눌린 것처럼 바뀌었다. 우산 천이 탄성 있는 재질이라 그런가 싶었지만, 눌리는 방향이 묘하게 일정했다. 계속 같은 크기와 같은 위치로만 눌리는 느낌이었다.
처음엔 판매자가 비 와서 급하게 접었나 싶어서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우산 천에 손바닥 모양 자국이 있어요. 혹시 사용하면서 닦으신 건가요?”라고 물었더니, 답이 늦게 왔다. 상대는 “그거 그냥 스프레이 한번 묻은 거일걸요. 잘 마르면 없어져요”라고 했다. 근데 나는 그런 말이 납득이 안 됐다. 스프레이면 번지거나 색이 달라야 하는데, 그 무늬는 물기처럼 ‘형태’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그냥 마른 수건을 대고 말리려고 베란다에 걸어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나도 젖은 냄새가 완전히 빠지지 않았다. 비 냄새랑 비슷한데, 그보다 더 가까운 냄새가 났다. 사람 손이 물에 오래 젖었다가 마른 뒤에 나는, 약간의 비누기와 체온 같은 느낌. 나는 그 냄새를 맡고 나서야 처음으로 “이 사람이 왜 우산에 손바닥을 눌렀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분명 누군가가 천을 확인하고 싶어서 손을 대지 않았으면 저렇게 정확한 모양이 남기 어렵잖아.
그리고 이게 더 찝찝했던 건, 무늬가 항상 같은 자리에만 나타났다는 점이다. 우산을 접었다 폈다 할 때마다, 마치 접는 동작에 맞춰 위치가 딱 맞춰졌다. 어떤 날은 반쯤 펼쳤을 때만 보이고, 완전히 펼치면 가운데가 또렷해졌다. 내가 그냥 얼룩을 상상하는 거라면 위치가 바뀌거나 흐려져야 하는데, 그 반대였다. 오히려 특정 각도로 비추면 더 선명해져서, 마치 누가 천 아래에서 손을 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손바닥 무늬가 ‘찍혀’ 있다기보다 ‘기다리고’ 있는 느낌이라고 할까.
결국 나는 판매자에게 환불을 요구했다. 그랬더니 상대가 마지막에 한 줄만 보내왔다. “처음에 받을 때도 그랬는데요. 저는 그냥 썼어요. 혹시 거슬리시면 파세요.” 이 말이 너무 무책임해서, 나는 더 화가 났다. 그런데 그 와중에 내가 다시 사진을 떠올리게 됐다. 내가 받기 전, 올라온 사진 속 우산은 가운데가 그 무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각도가 살짝 비켜 있었고, 손잡이 쪽이 더 강조돼 있었다. 누가 봐도 ‘보여주지 않게’ 찍은 사진 같았다.
이후부터는 내가 우산을 쓰는 날마다 이상한 일이 생겼다. 꼭 비가 오는 날만 그런 건 아니었는데, 우산을 펼치면 누군가 손으로 천을 살짝 눌렀다가 떼는 듯한 감촉이 손바닥에 전해졌다. 실제로는 아무도 없었고, 내 손이 닿는 순간에만 그렇게 느껴졌다. 나는 혹시 내 손이 젖어서 생긴 감각 착각인가 싶어, 장갑을 끼고 써봤다. 그래도 똑같이 느껴졌다. 그때서야 나는 그 무늬가 단순한 오염이 아니라, 누군가가 남겨놓은 ‘행동의 흔적’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확인하려고, 나는 무늬가 있는 부분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려 안쪽을 봤다. 천과 천 사이에 먼지처럼 보이는 게 있었는데, 그게 마치 손바닥을 닦다가 남은 가느다란 섬유 뭉치처럼 붙어 있었다. 그리고 아주 희미하게, 누군가가 손을 문질렀던 방향이 표시되어 있었다. 뚜렷한 글자나 번호는 없었지만, 반복된 동작이 남아 있는 패턴이라서 더 소름이 돋았다. 나는 그때서야 확신했다. 우산은 비를 막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누군가 이 우산을 ‘무언가를 가리기 위해’ 사용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도 가끔 우산을 접었다 펼칠 때, 가운데 손바닥 무늬가 아직 마르지 않은 얼굴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