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최신글
자유/잡담 괴담 추천 0

지하주차장 기둥에 적힌 숫자가 날마다 바뀐다

2026-10-14 20:29:14 조회 0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지하주차장 기둥에 적힌 숫자가 날마다 바뀐다. 처음엔 그냥 장난이라고 생각했어. 우리 동네 아파트 지하주차장에는 몇 대째 같은 자리에 자리 잡은 기둥이 있는데, 그 기둥 허리 높이쯤에 누가 대충 검은 펜으로 쓴 숫자가 있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주차하고 나면 늘 보이는데, 그게 어느 날부터인가 매일 아침 출근할 때마다 바뀌더라.

사건은 출근 첫날부터 시작됐어. 월요일 아침에 내려갔더니 기둥에 적힌 숫자가 13이었어. 나는 그냥 “누가 주차장 자리 관리하는가 보다” 하고 넘어갔지. 근데 퇴근해서 다시 보니까 13이 27로 바뀌어 있더라. 펜자국이 지워진 흔적도 없고, 잉크가 번진 것도 아닌데 숫자 모양만 또렷하게 바뀌어 있었어. 그때부터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그 다음날, 화요일에는 27이 05로 바뀌어 있었어. ‘0’이랑 ‘5’가 좀 이상하게 굵게 칠해져 있어서 더 그랬어. 누가 밤에 몰래 와서 쓰는 거라면 손끝 자국이나 다른 낙서도 있을 법한데, 기둥 주변은 늘 똑같이 깨끗했거든. 기둥 옆에는 주차장 안내 표지랑 경고문이 붙어 있고, 바닥도 늘 물기 없이 말라있어. 그래서 더더욱 “누가 매일 같은 시간에 와서 바꿔?” 싶은 생각이 들었지.

수요일에는 05가 31로 바뀌었고, 목요일엔 31이 11로 바뀌었어. 여기서부터 분위기가 묘하게 바뀌더라. 단순히 숫자만 바뀌는 게 아니라, 그 날의 체감이 같이 따라오는 느낌이 있었거든. 예를 들어 31로 바뀐 날엔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멈추는 일이 있었고, 11로 바뀐 날엔 내 차 앞 범퍼 쪽에 누가 긁고 지나간 흔적이 있었어. 물론 우연일 수는 있는데, 그 우연이 너무 연달아 쌓이니까 사람 마음이 흔들리더라.

관리사무소에 말할까 하다가도, 괜히 민원 들어가면 내 얘기만 이상한 사람 취급 받을까 봐 못 했어. 대신 같은 라인에 사는 지민이한테 슬쩍 물어봤지. 지민이도 그 숫자 본 적이 있다더라. 근데 지민이는 말이 더 구체적이었어. “전에 24였던 날에는 밤에 누가 기둥에 기대서 한참을 서 있더라. 근데 아침엔 안 보였어.” 그 말 듣고 나니까, 숫자가 ‘그냥 적혀 있는 것’이 아니라 뭔가를 부르는 신호처럼 느껴졌어.

금요일, 그 숫자가 24에서 다시 09로 바뀌었어. 난 그날 늦게 퇴근해서, 어두운 지하주차장에 내려가는 게 좀 싫었는데 결국 내려가야 하니까 내려갔거든. 그런데 기둥 아래쪽 바닥에 아주 희미한 자국 같은 게 있었어. 누가 바퀴를 끌고 지나간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손으로 문지른 듯한 선이 얇게 남아 있었지. “혹시 숫자를 바꾸는 사람이 남기는 흔적이 아닐까” 생각이 들면서도, 동시에 그 흔적이 오래전부터 있었던 건지 알 수가 없었어.

주말엔 더 이상 안 바뀔 줄 알았는데, 토요일 아침에 확인하니까 09가 18로 바뀌어 있었어. 그때 문득 이상한 규칙을 떠올렸어. 숫자가 커지는 날엔 사고나 불편이 같이 생기고, 숫자가 작아지는 날엔 그냥 별일 없이 넘어갔다는 느낌. 물론 내가 기억을 그렇게 편집하는 걸 수도 있지. 근데 문제는 그날부터 누군가 우리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 같은 얘길 돌리기 시작했다는 거야. “지하주차장 기둥 숫자 바뀐다더라”가 아니라, “어떤 날 숫자가 특정 형태로 바뀌면 누가 다친다더라” 같은 식으로 말이 붙더라. 확인도 못 한 소문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그 말을 믿고 싶어 하더라고.

일요일 밤, 나는 차를 빼고 나서 다시 기둥을 봤어. 숫자가 18이었는데, 그 숫자 옆에 아주 작게 뭔가가 덧칠돼 있었어. 펜으로 적은 듯한데, 너무 작아서 처음엔 글자인지 잔흔인지 구분이 안 됐어. 가까이 가서 보면 ‘-’ 같은 가로선이랑, 그 옆에 점처럼 찍힌 표시가 있었지. 나는 멍하니 바라보다가 뒤통수가 서늘해지는 걸 느꼈어. 그 순간, 내 차 시동 버튼을 누르지도 않았는데 계기판이 잠깐 켜졌다 꺼졌거든. 배터리가 원래 그런가 싶었는데, 그런 적이 없었어.

그 다음날 월요일 아침, 숫자는 다시 02로 바뀌어 있었어. 이번엔 너무 조용히 바뀐 것처럼 느껴졌어.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누가 숨처럼 지나간 다음 날처럼. 난 그 기둥을 지나치려고 시선을 피했는데, 신기하게도 발걸음이 멈추더라. 마치 숫자가 눈을 붙잡는 것처럼. 그리고 기둥 근처에 남아 있던 희미한 자국이, 그날은 더 진해져 있었어. 누가 지우지 않았는데도 더 선명해져 있었고, 그 선이 이번엔 숫자 아래를 가리키는 형태였거든. 지나가면 되는 거 아니냐고 스스로 말했는데, 머릿속에서만 계속 같은 생각이 돌았어. ‘바뀌는 건 숫자만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그 뒤로도 숫자는 계속 바뀌어. 어떤 날은 7, 어떤 날은 16, 어떤 날은 30에 가까운 모양까지도 보였어. 하지만 더 무서운 건, 숫자가 바뀔 때마다 우리 주차장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진다는 점이야. 불빛이 한 칸씩 더 어둡게 느껴지거나, 바닥에서 나는 소리가 늦게 들리거나, 사람들 말수가 줄어드는 날이 생겨. 난 아직도 그 기둥을 볼 때마다 숫자를 읽는 대신 눈을 피하려고 해. 그런데도, 마음속엔 자꾸만 그 숫자가 남아. 어느 날은 숫자가 ‘날짜’가 아니라 ‘시간’일 것 같아서.

이 글 반응 남기기
추천과 비추천은 회원당 1회만 가능하며, 다시 누르면 취소됩니다.
추천 0 · 비추천 0
글 신고 안내
같은 회원은 같은 글이나 댓글을 1회만 신고할 수 있으며, 누적 신고가 5회 이상이면 자동으로 숨김 처리됩니다.
현재 글 신고 0회

댓글

댓글 작성은 로그인 후 가능합니다.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