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받은 약봉투가 내 이름이 아닌 줄임말로 적혀 있었다
병원에서 진료 끝나고 약 받으러 갔는데, 약봉투에 내 이름이 아니라 뭔가 줄임말 비슷한 게 적혀 있어서 그날부터 계속 찜찜했어. 접수할 때 분명 내 실명 불렀고, 신분증도 확인했는데도 말이지. 그 글자를 보는 순간, 내 뇌가 먼저 “아, 잘못 찍혔나?” 하고 넘기려 했는데, 이상하게도 약봉투를 들고 나서는 그게 자꾸 눈에 걸렸어.
약봉투는 손으로 적힌 게 아니라 인쇄된 라벨이 붙어 있었고, 이름 칸에 ‘OOO’처럼 보이는 세 글자 조합이 있었어. 예를 들면 ‘김**’ 이런 식이어야 할 텐데, 성+이름이 아니라 약간 군번 같기도 하고, 약품 목록을 줄여 부르는 코드 같기도 했지. 나는 직원한테 괜찮냐고 말하려다 말았어. 어차피 약은 맞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그때 내 마음속 경고등이 켜진 것처럼, 손끝이 약봉투 모서리를 계속 만지게 됐어.
집에 와서 봉투를 펼치는데, 안에 들어있는 약들은 다 정상적으로 내 처방전 흐름이랑 맞았어. 진료기록에 적힌 증상, 용량도 크게 이상 없었고, 약 한두 개는 약국에서 바뀌는 경우도 있으니까 “그냥 실수겠지”라고 스스로 정리하려고 했지. 근데 약봉투 겉면 라벨의 그 줄임말은 계속 같은 위치에 딱 붙어 있었어. 지워볼까 하다가도, 혹시 더 큰 문제가 생길까봐 그냥 두었어.
다음 날 약을 먹으려고 봉투를 다시 꺼내 봤는데, 그 줄임말이 단순히 이름이 아니란 느낌이 더 강해졌어. 분명 내 이름이 아닌 건 확실한데, 그 글자 형태가 특이했거든. 글자 사이에 아주 작은 점이나 기호가 들어가 있었고, 마치 같은 병원 안에서 분류하는 코드처럼 보였어. 그래서 나는 결국 약국에 전화했어. “저 이거 제 이름 아니던데요”라고만 말했더니, 직원이 잠깐 멈칫하더니 “오늘 처방 출력이 복수로 들어가서요, 다시 확인해드릴게요”라고 했거든.
그 말도 이상했어. 복수로 들어간다니, 무슨 뜻인지 물어보려고 했지만 전화 끊을까 봐 더 묻지 못했어. 대신 약봉투를 약국에 가져가서 라벨을 확인하자는 쪽으로 정리했지. 다음 방문 때는 라벨을 새로 붙여주겠다고 했는데, 그날 약국에서 내 목소리를 들은 직원 표정이 살짝 굳는 걸 봤어. 친절한 말투는 그대로였는데, 눈이 잠깐 주변을 훑는 느낌이었거든.
며칠 후, 나는 또 한 번 병원 쪽으로 마음이 쏠렸어. 내가 원래 예약된 진료가 있는 날짜가 있었거든. 그런데 그 전날, 병원 앱 알림이 왔는데 내용이 약간 달랐어. ‘내 담당’이라고 생각했던 문구가 아니라, “분류 대상: OO-약처” 같은 식으로 뜬 거야. 분류 대상이 뭐지 싶었고, 그 줄임말이랑 너무 닮아 있었어. 물론 앱 알림이 가끔 템플릿처럼 바뀌는 경우도 있으니까, 다시 “별거 아니겠지”라고 애써 넘어가려 했지만 이미 기억이 박혀버린 상태였어.
그리고 진짜 찝찝한 건, 약을 다 먹어갈 때부터 생겼어. 처음엔 컨디션이 회복되는 쪽이라 별 문제 없는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미묘하게 증상이 꼬이기 시작했거든. 어떤 약은 분명 내 처방대로 먹었는데도, 약효가 기대한 흐름이 아니었어. 물론 몸이란 게 원래 변수도 많고, 내가 생활패턴을 바꾼 것도 있었으니까 단정하긴 어려워. 그래도 그때 ‘혹시…’라는 생각이 자꾸 올라왔어. 이름이 바뀌었으면, 처방 라벨이나 데이터가 섞였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그런 의심 말이야.
나는 다시 약국에 가서 물어봤어. “혹시 제 처방이 다른 사람 거랑 섞인 적 있어요?”라고. 직원은 잠깐 표정이 굳었는데, 바로 웃으면서 “그런 건 확인이 필요하고요, 시스템에서 자동으로 정리되는 부분이 있어서… 어쨌든 지금은 정상 처리돼 있어요”라고 했어. 그 “정상 처리”라는 말이 이상하게 날 비켜가는 느낌이었어. 마치 지금 당장 잘못됐다는 걸 인정하면 큰 일이 생길 것 같다는 식으로. 나는 더 캐묻지 못했어. 대신 그날 라벨은 새로 붙여서 가져왔고, 나는 집에서 혹시 모르니 원래 종이봉투는 버리지 않고 보관했어.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니더라. 약봉투를 보관하던 상자를 정리하다가, 다른 날짜에 받은 약봉투 한 장이 같이 들어있다는 걸 봤어. 그건 분명 내가 받은 처방이 아닌 것 같았는데, 라벨에 또 다른 줄임말이 적혀 있었고 내 이름은 없었어. 설마 내가 착각했나 싶어서 날짜를 확인했더니, 내가 병원에 간 날과 겹치지도 않는데도 내 물건 안에 들어가 있었어. 그때부터 소름이 확 올라왔어. 누군가는 이 병원에서 누군가의 몫을 계속 넘겨받고, 또 나는 그 넘겨받은 흔적을 그대로 집에서 꺼내보고 있었던 걸까.
지금도 가끔 그 약봉투를 꺼내보면, ‘이름’이라고 적혀 있어야 할 자리의 줄임말이 눈에 먼저 들어와. 사람들이 병원에 가서 믿는 건 결국 정확함이잖아. 그런데 나는 그 정확함이 종이 한 장, 라벨 한 줄에서부터 흔들릴 수 있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아버린 기분이야. 그리고 더 무서운 건, 그 줄임말이 내 이름이 아닌 이유가 틀린 사람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누군가를 숨기기 위한 표식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자꾸만 남는다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