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점장님이 CCTV 보며 ‘또 시작이네’라고 말했다
편의점 점장님이 CCTV 보며 ‘또 시작이네’라고 말했다
새벽 다섯 시쯤, 편의점 문 위 종이 똑— 하고 울리더니 손님이 하나 들어왔어. 젖은 머리카락이랑 얇은 외투 차림, 비가 막 그친 직후처럼 보였고 얼굴은 유난히 무표정했어. 나는 계산대 뒤에서 멍하니 영수증 프린터만 보고 있었는데, 그 사람이 바나나 우유 하나를 집어 들고는 카운터 앞에 세워둔 광고 전단을 쓸어내리듯 쓱 펼쳐 보더라.
“결제는 카드로 하실까요?” 내가 말하자 그 사람은 고개를 아주 조금만 끄덕였어. 근데 이상하게도 계산을 하지는 않고, 손가락으로 진열대 아래쪽을 한 번 톡톡 치고는 다시 그 전단을 접더라. 전단 속 쿠폰은 이미 사용 기한이 지나 있었고, 누가 굳이 그런 걸 다시 찾는 느낌은 아니었지. 나는 ‘혹시 착오로 보신 건가?’ 싶어서 다시 묻자, 그 사람은 아주 낮게 “맞아요” 같은 말만 하고 매대 옆을 지나갔어.
그때 점장님이 뒤에서 갑자기 한숨을 쉬더니 모니터 앞에 앉았어. 점장님은 원래도 새벽엔 졸린 얼굴로 CCTV를 슥슥 넘겨보는 편이었는데, 그 손님이 이동하는 동선이 화면에 잡히는 순간, 점장님이 TV를 본 것도 아닌데 마치 누가 옆에서 말한 것처럼 입을 열었어. “또 시작이네.” 그 말이 너무 빨라서 나는 무슨 뜻인지 바로 못 알아들었고, 점장님은 바로 화면을 다시 확대해 확인하더라.
손님은 담배 진열대 앞에 멈춰 섰는데, 그 사람이 집어 드는 담배는 늘 같은 브랜드였어. 하지만 카운터 쪽으로 오지 않았고, 대신 진열대 아래쪽—사람이 잘 안 보는 선반 틈—을 손가락으로 한 번 더 톡 치고는 뒤로 물러났어.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장난인가, 아니면 분실물 찾나?’ 싶었는데, 점장님 표정이 점점 굳어지더라. 웃지도 않고, 그냥 눈만 계속 화면에 붙어 있었어.
몇 분 뒤, 그 손님은 아무것도 결제하지 않은 채로 계산대 앞에 다시 섰어. 이번엔 종이컵에 담긴 얼음이랑 물티슈 쪽을 보고, 물티슈 뽑는 동작을 했는데 정작 뽑히지는 않았어. 마치 누가 손으로 ‘뽑는 척’만 한 것처럼, 소리도 없이 조용했지. 나는 그제야 뭔가가 이상하다고 느꼈어. 물티슈가 반쯤 꺼내진 상태여야 정상인데, 화면 속에서는 처음 상태 그대로더라.
점장님은 그 타이밍에 내게 조용히 손짓을 했어. “잠깐만 뒤로 와봐.” 나는 뭔가 크게 난 건 줄 알고 냉큼 따라갔는데, 점장님이 말하길 “저거, 저 사람은 늘 들어오는데… 물건을 손에 안 가져. 대신 우리가 ‘보는’ 걸 확인해. 그리고 똑같이, 쿠폰 전단이랑 진열대 아래를 건드려.” 점장님이 ‘어제도 그랬어’라고 중얼거렸을 때, 소름이 등줄기를 훑고 지나갔어. 나는 전날 근무기록을 확인해보지 않았거든.
그 손님이 매장 안쪽으로 더 들어가려는 순간, 문 옆 자동문 센서가 한 번 삑— 하고 울렸어. 그런데 밖으로 나가는 소리도 아니고, 자동문이 열렸다 닫히지도 않았어. 마치 누가 센서만 건드린 것처럼, 그냥 경고음만 남은 느낌이었지. 점장님은 그 소리에도 CCTV를 멈추지 않았고, 오히려 소리를 더 줄인 채로 손님 얼굴이 정면으로 잡히는 프레임만 계속 찾았어. 그러더니 다시, 아주 똑같이.
“또 시작이네.” 이번엔 더 낮게. 나는 왜 반복되는지 묻고 싶었는데, 그 손님이 갑자기 화면에서 화면 밖으로 사라지듯 끊겼어. CCTV가 정지한 것도 아니고, 녹화 시간이 깨진 것도 아니었어. 그냥 손님만 ‘사라진’ 거야. 그 다음 프레임에선 손님이 있던 자리에 전단지가 한 장 바닥에 반듯하게 놓여 있었고, 진열대 아래 선반 틈엔 누가 손가락으로 톡 치고 지나간 흔적처럼 얇은 먼지 무늬가 남아 있었어.
나는 그날 새벽이 끝나고도 한참 동안 계산대 앞에 앉아 있었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영수증은 평소대로 찍히고, 냉장고 온도도 정상이고, 재고도 크게 틀어지지 않았거든. 다만 점장님이 이상하게도 그날부터 전단을 비치하지 않았어. 그리고 다음 날 출근했을 때, 점장님은 CCTV 화면을 켜놓은 채로 말없이 커피를 저었어. 내가 “그 손님 또 올까요?”라고 묻자, 점장님은 컵을 놓지 않은 손 그대로 굳힌 채로 “오면… 또 같은 자리에서 보게 될 거야”라고만 했어. 그 말이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다가, 문 위 종이 울리는 소리만 들려도 내가 먼저 CCTV를 찾게 되더라.
그 이후로도 가끔 새벽에 ‘삑’ 소리 같은 게 들리곤 했는데, 정작 점장님은 그날 이후로 CCTV 앞에서 절대 먼저 말하지 않았어. 대신 누가 들어오는지 보이지 않아도, 화면이 아니라 공기 어딘가를 보는 듯한 눈빛으로 조용히 고개만 끄덕이더라. 그래서 나는 아직도 그 첫 문장—“또 시작이네”—가 누굴 향한 말인지, 진짜로 누가 시작하는 건지 자꾸 생각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