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근무표에서 내 이름이 다른 날에 들어가 있었다
군대 근무표에서 내 이름이 다른 날에 들어가 있었다. 이게 뭔 소린가 싶어서 처음엔 그냥 착각이겠거니 했는데, 그날 밤부터 이상하게 계속 머리가 쿵쾅거렸다. 하필이면 내가 확인한 날짜가, 전날이랑 딱 하루씩 밀려 있었거든. 근무표는 복도에 붙어 있는 종이였고, 누구나 다 보는데 내 이름만 이상하게 ‘다음 날’에 들어가 있었다.
사건은 당직 바꿀 때도 아닌 완전 평소의 오후였다. 난 보통이면 “그날 내가 하는구나” 하고 넘어가면 됐는데, 그날은 유독 눈이 먼저 멈췄다. 근무표 맨 위 날짜 칸에 내 이름이 있어야 하는데, 그 칸에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 이름이 적혀 있었고 대신 그 아래 칸—내가 쉬는 날로 알고 있던—그 날짜에 내 이름이 있었다. 글씨체도 완전히 같았고, 지워진 흔적이나 덧칠도 없었다. 누가 장난친 느낌이 아니라, 그냥 처음부터 그렇게 붙여놓은 것처럼 또렷했다.
처음엔 “누가 착오로 넘긴 거겠지” 싶어서 행정 담당 쪽으로 물어보려 했다. 근무표 담당관이 따로 있는 건 아니었고, 보통 누가 프린트해서 붙이면 끝이었다. 그래서 나는 대충 넘어가려다 말고, 옆에서 보던 선임한테 “혹시 근무표 날짜가 바뀐 거 아니야?” 하고 물었다. 선임은 한 번 보고는 “아, 너 그날 맞아. 너가 착각했네” 이러더라. 그 말이 너무 자연스럽게 나와서 오히려 내가 뭔가 잘못 기억하나 싶었는데, 문제는 그 ‘자연스러움’이 이상했어.
내가 착각할 리가 없었던 게, 그 날짜는 원래 내 휴가 동선이랑 겹쳤다. 전날 소대에서 “너 그날 조용히 준비해둬, 그 뒤로 일정 빡세니까” 같은 말을 분명히 들었고, 그래서 나는 그날을 유독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근무표에서는 그날 내가 근무를 서야 하는 사람처럼 되어 있던 거다. 선임은 계속 “뭐, 전산이랑 종이랑은 좀 다를 수 있지”라고만 했는데, 그 설명이 말이 되는데도 뭔가 빈칸처럼 남아 있었다.
결국 나는 근무표가 붙은 칸 주변을 자세히 봤다. 날짜 줄 사이에 작은 필기들이 있었고, 그 필기들은 대체로 ‘확정’ 표시처럼 보였다. 근데 내 이름이 들어간 줄 옆에, 아주 얇게 연필로 덧쓴 흔적이 있었어. 사람들이 다 볼 정도로 굵게 쓴 건 아닌데, 누가 급하게 다시 손댄 느낌. 그걸 보자마자 등줄기가 살짝 서늘해졌다. 군대에서 종이는 그냥 종이가 아니잖아. 종이에 찍힌 게 곧 일정이 되고, 일정이 곧 책임이 되니까.
저녁 먹고 난 뒤에, 나는 다시 한 번 근무표를 보러 갔다. 혹시 내가 낮에 잘못 본 걸까 싶어서. 그런데 그때도 내 이름은 똑같이 다른 날에 있었다. 더 소름인 건, 아까 분명히 내 이름이 있어야 했던 날짜 칸에는 다른 사람 이름이 그대로였는데, 그 사람 얼굴이 미묘하게 굳어 있는 걸 봤다는 거다. 나랑 눈이 딱 마주쳤는데, 그 사람은 아무 말도 안 하다가 고개를 휙 돌렸다. 뭔가 알고 있는데 모르는 척하는 표정이었어.
다음날 아침, 교대하기 전에 담당 중사가 근무표를 들고 들어오더라. 나도 모르게 시선이 그 종이에 꽂혔고, 담당 중사는 “어제부터 조정 들어갔습니다”라고만 말했어. 조정이라면 누가 누굴 바꾸든 말이 나와야 하는데, 누구도 ‘어제 조정’ 얘길 안 하더라. 나는 그제야 확신이 들었다. 내 이름이 그 날짜에 들어간 건 착오가 아니라, 누군가가 이미 정해둔 흐름에 맞춰 끼워 넣은 것 같다는 생각. 그리고 그 흐름은, 내가 알아챌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거나… 알아채도 아무도 나를 믿지 못할 거라고 계산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밤, 난 혼자 분대 창고 앞을 서성이다가 근무표가 붙었던 종이 뒷면을 봤다. 누가 떼어간 건지, 가장자리에 살짝 구겨진 자국이 남아 있었고, 접착 테이프가 한쪽만 덜 붙어 있었다. 누가 몰래 바꿔 붙였으면 생길 법한 모양인데, 문제는 테이프가 ‘붙였다 떼는’ 흔적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 종이를 거기 붙였다는 모양이더라. 그러니까 누군가 나를 속이려 했던 게 아니라, 이미 누군가의 일정이 내 것으로 바뀌어 있었고 종이도 그걸 따라갔던 느낌. 그 순간엔 정말 이상하게도, 내가 누군가한테 “원래 그날이 내 날이 아니잖아”라고 말하는 장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근데 그게 꿈인지 기억인지도 구분이 안 됐어.
그리고 마지막은, 내 이름이 원래 날짜로 ‘자연스럽게’ 돌아온 날이었다. 다음날 근무표를 확인하니 내 이름은 딱 맞게 들어가 있었고, 어제와 달리 옆의 연필 흔적도 없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대신 이상하게도, 그 전에 내 이름이 있던 칸에 들어가 있던 사람은 표정이 더 굳어 있었고, 아무렇지 않게 인사도 했지만 눈이 잠깐 흔들렸다. 난 그때 깨달았어. 누군가 장난을 친 게 아니라, 일정이 한 번 스치면 그 사람의 하루도 같이 바뀌는 방식일 수 있다는 걸. 지금도 가끔 근무표 같은 종이를 보면, ‘내 이름이 있는 칸’이 정말 내 하루인지, 아니면 누군가의 실수나 정리에서 잠깐 끼워진 자리인지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