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사무실 냉난방기 리모컨이 혼자 켜졌다
회사 사무실 냉난방기 리모컨이 혼자 켜졌다 그날도 평소처럼 야근 정리하고 있었어. 퇴근까지 아직 시간이 좀 남아서 컴퓨터 화면만 끄고 프린터 옆에 쌓인 종이 정리하던 중이었는데, 갑자기 벽 쪽에 붙은 냉난방기에서 “삐-” 하는 소리가 났거든. 문제는 리모컨을 내가 손에 쥐고 있었다는 거야. 분명히 책상 위에 올려뒀는데, 화면이 켜지면서 송풍이 아니라 냉방 모드로 바로 전환됐어.
나는 순간 장난인 줄 알았어. 누가 지나가다 버튼을 눌렀나 싶어서 고개를 돌렸는데, 복도는 조용했고 사무실 안에도 우리 팀 아무도 없었어. 퇴근하고 남은 건 나랑, 창가 쪽에 놓인 제습기랑 냉난방기 하나뿐이었거든. 그래도 냉난방기 바람은 금방 강해졌고, 온도도 내가 설정해둔 숫자랑 다르게 올라가 있었어. 리모컨 화면에는 자꾸만 하얀 불빛이 깜빡였고, 손을 떼지도 않았는데 버튼이 눌린 것처럼 표시가 바뀌었어.
가장 이상했던 건 리모컨이 내 쪽을 바라보지 않았다는 느낌이야. 분명 책상 위에서 똑같은 방향으로 놓여 있었는데, 내가 들어 올리려는 순간부터 리모컨이 아주 약간씩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 같았어. 손바닥으로 확인하려고 다가가면 멈추고, 손을 빼면 다시 미세하게 돌아가는 느낌. “바닥이 울리나?” 싶어서 사무실 바닥을 발로 톡톡 두드려봤는데 아무 이상도 없었어. 냉난방기만 계속 일정한 리듬으로 켜졌다 꺼졌다 하더라.
그래서 난 결국 리모컨을 잡고 전원 버튼을 눌렀어. 전원은 바로 먹혔는데, 이상하게도 화면에 꺼짐 표시가 뜨자마자 반대쪽 버튼이 연속으로 눌린 것처럼 깜빡였어. 그리고 그 다음 순간, 냉난방기가 다시 켜지더라. 내가 전원을 껐는데도. 소리도 똑같이 “삐-” 하고, 송풍 바람이 확 세졌어. 그때부터는 솔직히 웃기지가 않았지.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는데, 초침이 넘어가는 동안 리모컨 화면만 집중적으로 깜빡였어.
회사에는 야간에 청소하시는 분이 계시긴 해. 그래도 보통은 퇴근 후 한 시간쯤 지나면 조용히 움직이거든. 그분이 혹시 들어왔다가 정리하다가 실수로 눌렀나 했는데, 그분은 출입 기록도 남고 연락도 되는데다 우리 층은 열쇠 없이는 못 들어와. 더 큰 문제는, 냉난방기 리모컨은 내 책상 서랍 안에 원래 들어가 있어야 하는데 그날은 내가 잠깐 꺼내 둔 상태였다는 거야. 누가 안 보이게 손을 뻗을 수가 없어. 사무실 출입문도 잠겨 있었거든.
나는 그날 이후로 “이상한 장난”을 믿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과장님한테 급하게 전화해서 냉난방기 리모컨 확인하자고 했지. 그런데 전화를 받자마자 과장님이 먼저 말하더라. “리모컨 지금 어디 있어?” 이런 식으로. 나는 놀라서 “제가 쥐고 있는데요, 왜요?”라고 했더니 과장님이 잠깐 멈추더니 “어제도 누가 켜졌다고 하더라. 누가 버튼 눌렀대. 근데 리모컨이 사무실 밖에 있었대.”
그 말을 듣는데 등골이 서늘해졌어. 내가 그 리모컨을 마지막으로 본 건 퇴근 직전 내가 책상에 올려둔 그때였고, 사무실 밖으로 나가는 동선은 내 기억엔 없어. 과장님이 말한 “사무실 밖에 있었다”는 게 더 이상했어. 혹시 누가 몰래 가져갔다가 다시 넣었나 생각해도, 리모컨이 제자리에 있는 걸 내가 눈으로 확인한 적이 없잖아. 확인하지 않았으니까, 빈틈이 생긴 거지. 그 빈틈을 누군가 채운 것처럼 느껴졌어. 당시엔 진짜로 공기 냄새가 달라졌어. 전자기기 켜질 때 나는 플라스틱 타는 냄새 비슷한 게 잠깐 스쳤다가 사라졌거든.
다음 날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관리팀에 말해봤어. “리모컨이 혼자 켜지는 것 같아요”라고. 관리팀 사람은 그냥 웃으면서 “배터리 문제 아닐까요? 리모컨 오래됐을 텐데요”라고 하더라. 그런데 웃음이 끝나기도 전에 냉난방기 패널을 보더니 표정이 굳었어. 설정값이 밤새 계속 바뀌어 있었거든. 사람 손으로 바꾼 것처럼 단계가 촘촘했어. 마치 누가 시간 맞춰 온도를 올리고 내리는 작업을 반복한 것처럼. 관리팀이 리모컨 배터리를 교체했는데, 그 교체하는 순간에도 잠깐 냉난방기가 켜지는 소리가 들렸어. 우리가 보는 앞에서, 누가 한 번 더 “신호”를 보낸 것처럼.
그 뒤로 일주일 정도는 조용했는데, 어느 날부터는 리모컨이 서랍에 넣어도 서서히 “켜짐” 쪽으로 화면이 넘어가는 일이 생겼어. 우리가 전원을 완전히 끄면 다음 날 출근했을 때는 항상 살짝 켜져 있는 상태였고, 바람 방향도 매번 같은 쪽으로 가 있더라. 처음엔 누가 습관적으로 켜놓고 잊나 싶었는데, 팀원들 전부 야근 기록 확인하고, 키 보관 위치까지 따져도 원인이 안 나왔어. 결국 사무실에는 새 냉난방기 리모컨이 들어왔고, 기존 리모컨은 폐기하겠다고 했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폐기 봉투에 넣는 순간, 리모컨의 전원 불빛이 마지막으로 한 번 깜빡였어. 꺼졌는데도.
그 날 이후로 나는 냉난방기 리모컨을 서랍에서 꺼낼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누구 있어요?”라고 말하고 싶어져. 물론 아무도 없겠지. 근데 그때의 “삐-” 소리랑, 꺼짐 표시가 뜨는 순간 버튼이 눌린 것처럼 깜빡이던 화면이 자꾸 남아. 누가 장난을 쳤던 건지, 아니면 그냥 고장이라 치부할 수 없는 무언가가 사무실 안에 남아 있는 건지… 지금도 가끔 생각나. 특히 퇴근 직전, 아무도 없는 시간에 냉난방기 바람 방향이 미세하게 바뀔 때면, 그 리모컨이 또 누군가의 손을 찾는 것 같아서 더 마음이 무거워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