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침대 시트에 젖은 동그라미가 매번 같은 자리
병원 침대 시트에 젖은 동그라미가 매번 같은 자리. 처음엔 내가 잘못 흘린 물인가 싶었는데, 그게 점점 “내가 아니라 누군가”를 닮아가더라. 나는 응급실에서 며칠을 보낸 뒤 일반 병동으로 옮겨왔고, 침대 시트는 매번 새 걸로 교체된다고 들었는데도 이상한 자국만은 사라지지 않았다.
처음 발견한 날은 입원한 지 이틀째였어. 새 시트를 깔고 나서 한참 뒤, 내 다리 쪽 시트에 아주 또렷한 동그란 젖음이 생겼다. 물을 컵으로 떠서 한 방울씩 떨어뜨린 것도 아니고, 그냥 누가 손바닥만 한 원형을 툭 눌러놓은 것처럼 번져 있었다. 크기는 대략 손바닥의 절반쯤? 딱 그 정도로 일정했는데, 이상하게도 위치가 매번 “내가 누워 있는 자세”랑 상관없이 늘 같았다.
간호사한테 말하긴 했는데, 돌아온 반응은 좀 무심했어. “담요나 물기 있는 거 묻으셨나 봐요. 바로 교체해드릴게요.” 그렇게 말하면서 시트를 갈아줬지. 근데 신기하게도 새 시트를 깔자마자 나는 괜히 긴장을 풀지 못했다. 혹시라도 내가 잠결에 무언가를 흘린 건 아닌지, 수분을 담은 무언가가 내 몸에서 나온 건 아닌지 계속 생각이 꼬리를 물었어.
다음 날도 똑같이 터졌어. 이번엔 더 이른 시간에, 내가 잠에서 깬 순간부터 이미 동그라미가 보였어. 시트는 젖은 부분이 살짝 반짝거렸는데, 젖어 있는 범위가 너무 정확하게 원을 이루고 있어서 오히려 소름이 돋았어. 손으로 만져보려는 순간, 간호사 호출 버튼이 머릿속에서 먼저 눌리는 느낌이 들더라. “내가 지금 만지면 더 확인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손을 거두고 그냥 침대에 다시 몸을 고정했어.
사실 그 병동에는 밤마다 조용하지만 규칙적인 소리가 있었어. 복도 쪽에서 나는 ‘철컥’ 소리, 그리고 누군가가 문을 닫았다가 다시 살짝 여는 듯한 소리. 간호 스테이션은 늘 밝았는데, 침대 구역은 불 꺼진 방처럼 어둡고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곤 했거든. 나는 계속 그 자국이 생기는 걸 “기계적으로” 기다리게 됐고, 어느 순간부터는 동그라미가 생기는 시간대까지 비슷해졌어. 마치 누군가가 정해둔 스케줄이 있는 것처럼.
나는 급기야 같은 병실의 다른 환자한테 슬쩍 물어봤어. “혹시 여기 시트 교체해도 물자국 남는 거 봤어?” 그러자 그는 처음엔 웃더니, 내 표정을 보고는 더 이상 장난치지 않았어. 그는 말끝을 흐리면서 “나도 봤어. 근데 말해도 그냥 교체해주고 끝이더라.” 그 뒤로는 더 자세히 안 했고, 대신 “항상 같은 자리더라”라고만 반복했어. 그 말이 너무 정확해서, 내가 혼자 상상하는 게 아니란 걸 확인한 셈이 됐지.
그날 밤, 나는 일부러 깨어 있으려고 노력했어. 불안해서 잠이 안 오는데, 오히려 안 자고 버티면 뭔가 보일 것 같았거든. 그러다 새벽에 잠깐 눈을 감았는데, 다시 떴을 때는 이미 동그라미가 생겨 있었어. 문제는 내가 깨어 있는 동안에는 아무 소리도 못 들었다는 거야. 누군가 시트를 적셨다면 최소한 움직임이나 냄새가 있어야 하는데, 공기는 그대로고 내 귀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어. 그 자리만,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정확히 젖어 있었지.
다음 날 교체된 시트는 또 ‘새것처럼’ 보였는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 원형이 생길 자리에 눈길이 자꾸 갔어. 간호사가 시트를 정리할 때도, 그 자리를 슥 보더니 아무 말 없이 갈아주고 지나가더라. 나는 결국 “혹시… 뭐 묻는 거 아니에요?”라고 물었고, 간호사는 아주 잠깐 멈칫했어. 그러곤 “환자분들 사이에 가끔 그런 일이 있긴 해요. 정리할게요.”라고만 했지. 그 대답이 이상했어. ‘가끔’이라니, 그리고 ‘일’이라니. 마치 설명을 피하는 말투가 아니라, 이미 다 알고 있는 말투 같았거든.
퇴원하는 날이 다가오면서 나는 이상한 결론에 가까워졌어. 시트가 아니라, 침대 자체가 뭔가를 “남긴다”는 결론. 원형의 크기와 위치가 너무 일정해서, 누군가의 실수나 우연의 반복 같지 않았거든. 또 젖는 방식도 물이 새는 형태가 아니라, 누군가가 눌러 찍듯 퍼지는 느낌이었어. 그래서 나는 떠나야 한다는 생각보다, 그냥 그 자국이 다음 사람에게도 생길지 확인하고 싶어졌어.
내가 마지막으로 그 침대에 앉았을 때, 시트는 이미 교체된 상태였는데도 이상하게도 눈이 그 동그란 자리로 먼저 갔어. 그 자리는 마치 표시된 땅처럼 내 시야에 남아 있었지. 간호사가 “이제 괜찮으세요?” 하고 웃으며 가운을 챙겨줄 때, 나는 입술을 떼기 전에 속으로만 생각했어. 언젠가, 이 병실의 어떤 사람도 같은 자리에서 같은 원을 보게 될 거야. 그리고 그 원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사람만 계속 바뀌는 거라면… 그게 제일 무서운 거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