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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집 대문 앞에 누가 두고 간 장갑 한 켤레

2026-10-16 20:29:11 조회 0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시골집 대문 앞에 누가 두고 간 장갑 한 켤레를 처음 본 건, 비가 그친 다음 날 새벽이었다. 마당 쪽은 아직 물기가 남아 있었고, 대문 앞 자갈길 가운데에 장갑이 딱 한 켤레, 누가 일부러 놓은 것처럼 가지런히 서 있었다. 나는 처음엔 누가 길 잃었나 싶어서 바로 나가봤는데, 달려오는 발자국도 없고, 차가 지나간 흔적도 없었다.

장갑은 오래된 가죽 느낌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손바닥 쪽만 유난히 깨끗했다. 비에 젖지 않은 것처럼 마를 대로 마른 상태였고, 손가락 끝에는 실밥이 살짝 풀려 있었다. 비슷한 장갑을 우리 집 헛간에서 본 적이 없어서 더 신경이 갔다. 집 안으로 들어가려다 장갑에 시선이 오래 머물렀는데, 손등 안쪽에 희미하게 이름 같은 게 적혀 있는 것 같았다. 근데 한 글자만 알아볼 듯 말 듯해서, 괜히 만지면 번질 것 같아 그대로 두고 말았다.

아침이 되자 식구들도 그 장갑 이야기를 하긴 했는데, 다들 “혹시 동네 사람이 두고 갔겠지”라고 넘겼다. 나는 그냥 분실물이라 생각하고 대문 안쪽에 가져다 놓았다. 그런데 그 순간부터 기분이 묘하게 굳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장갑을 놓은 자리가 이상하게 차가웠고, 유난히 바람이 없는데도 비닐처럼 얇은 소리만 어딘가에서 들렸다.

그날 낮, 나는 헛간을 정리하다가 예전에 쓰던 장갑을 찾으려 했다. 예전부터 쓰던 건 검은색 면장갑이었고, 가죽 장갑은 없었다. 그런데 헛간 구석, 오래된 삽자루 옆에서 비슷한 색의 작은 끈이 나왔다. 끈을 잡아당기자 그 주변 먼지가 살짝 떨어지면서, 바닥에 얇은 자국이 보였다. 마치 누가 한동안 그 자리에 손을 대고 있었던 것처럼, 먼지가 눌린 느낌이었다.

저녁 무렵엔 또 일이 생겼다. 장갑을 대문 안쪽에 두었는데, 해가 지고 나서 확인해보니 대문 앞, 정확히 자갈길 가운데로 다시 옮겨져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 바로 문을 열었고, 마당을 한 바퀴 돌았다. 누가 있었다면 분명 발자국이 남았을 텐데, 젖은 흙도 없고 신발 자국도 없었다. 대문 앞만 어쩐지 유난히 반듯했고, 장갑만 딱 그 자리에서 “기다린다”는 모양으로 놓여 있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장갑을 함부로 만지지 못했다. 손이 먼저 닿으면 뭔가가 이어질 것 같아서, 수건으로 조심히 집어다가 방 한구석에 두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장갑을 둔 방 창문이 미세하게 열려 있었다. 바람이 부는 계절도 아닌데, 창문은 밖에서 당긴 듯한 각도로 벌어져 있었고, 장갑 위에는 마치 누가 방금 벗고 간 것처럼 손자국 같은 윤곽이 남아 있었다.

이쯤 되면 “누가 장난치나” 싶지만, 동네 사람들과는 말 섞을 정도로 지내온 편이라 설마 싶었다. 더 이상한 건 장갑을 빨래줄에 걸어두면, 다음 날엔 대문 앞에서 다시 발견된다는 점이었다. 빨래줄은 바람에 흔들리기도 하고 높아서, 누가 일부러 다시 옮기려면 최소한 맨눈으로 보일 텐데 그런 정황이 없었다. 나는 매번 밤에 조용히 창문 틈을 보고 있었는데, 대문 쪽으로 사람이 지나가는 걸 본 적은 없었다. 대신, 한밤중에만 자갈이 아주 작게 “툭툭” 하는 소리가 났다. 마치 누가 발끝으로 자갈을 건드리는 것처럼.

며칠 지나자 식구들도 점점 말을 줄였다. 엄마는 결국 장갑을 쓰레기통에 버리자고 했고, 아빠는 “그거 그냥 길 잃은 거니까 가져가서 버려”라고 했다. 그런데 내가 버리려고 장갑을 집는 순간, 손등 안쪽의 글자가 또렷해지더라. 글자는 이름이라기보다 날짜처럼 보였고, 숫자 사이에 작은 점들이 찍혀 있었다. 그걸 보는 순간 이상하게도 우리 집 대문 앞에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계속 같은 일이 반복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숫자를 끝까지 읽지 못하고 손을 놓아버렸다.

마지막으로 장갑을 본 날은, 비가 다시 오기 직전이었다. 새벽에 일어나 대문을 확인하러 나갔는데, 대문 앞에는 장갑이 없었다. 대신 자갈길 가운데에 젖은 물자국만 남아 있었고, 그 물자국 모양이 장갑 손가락처럼 길게 뻗어 있었다. 잠깐 멍하니 서 있다가, 집 안에서 누가 대문을 닫는 소리가 났다. 분명 바람도 없었는데도 말이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장갑은 물건이 아니라, 누군가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남긴 표시일 수도 있다는 걸.

그 후로도 대문 앞에는 별일이 없었는데, 비만 오면 자갈이 한 번씩 유난히 반듯하게 정리되는 날이 있었다. 누가 쓸고 지나간 것도 아닌데 말이다. 지금도 가끔 밤이 되면, 대문 앞에서 자잘한 자갈 소리가 들릴 때가 있다. 장갑이 다시 나타나진 않지만, 누군가 손을 대기 전의 공기처럼, 집 마당이 조용히 먼저 긴장하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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