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기사님이 ‘여기 말고 옆 문으로 두고 가’라고 했다
배달기사님이 휴대폰을 들고 “여기 말고 옆 문으로 두고 가세요”라고 하셨어요.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는데, 말끝이 너무 단단해서 웃음이 안 나왔습니다. 저는 아파트 1층에서 혼자 살고 있었고, 그날은 비도 오고 있어서 초인종 누를 엄두도 못 내고 문 앞에서 기다렸거든요. 그런데 기사님이 갑자기 ‘옆 문’ 얘기를 꺼내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표정이 굳어버렸습니다.
사실 우리 집 현관은 정면에 하나밖에 없어요. 옆 문이라는 게 무슨 말인지 머리가 하얘졌는데, 기사님은 이미 계산을 끝낸 것처럼 톡을 연달아 보냈더라고요. “정면 말고, 옆에 있는 작은 출입문이요. 열쇠는 필요 없고요.” 저는 주소를 잘못 적었나 싶어서 다시 확인했지만, 제 휴대폰 화면엔 분명 제 동, 제 호수로 찍혀 있었어요. 배달 앱에서도 ‘문 앞’이라고 되어 있었고요.
“옆 문이 뭐예요?”라고 되물으려다가, 이상하게도 메시지 전송 버튼을 누를 손이 느려졌습니다. 기사님이 전화를 걸어왔고, 그 목소리는 평소 배달기사님들이랑 결이 달랐어요. 친절하긴 했는데, 속도가 너무 빨랐고 숨을 고르는 소리가 거의 안 들렸습니다. 저는 그냥 “네, 알겠어요” 하고 말했어요. 이상하게도 거절하면 더 꼬일 것 같은 느낌이 들었거든요.
문을 열지 않고도 확인은 가능했어요. 제가 사는 건 1층이라서, 현관문 유리로 복도 방향이 보이거든요. 그런데 기사님은 엘리베이터 앞 쪽이 아니라, 건물 옆면으로 돌아가더니 그 ‘작은 출입문’이 있는 쪽으로 걸어가더라고요. 옆문은 원래 관리실에서 열어주는 걸로 알고 있었고, 평소엔 잠겨 있어 보였어요. 비가 와서 더 어둡고, 그 출입문 손잡이가 희미하게 젖어 있는 게 보였습니다.
잠깐 뒤에 종이 울리는 소리처럼 “뚝” 하고 작은 소리가 났어요. 택배를 두고 가는 소리인가 싶어 창문을 좀 더 가까이 붙여 봤는데, 이상하게도 기사님이 바로 돌아나오지 않았습니다. 옆문 앞에서 잠깐 멈추더니, 고개를 숙인 채로 뭔가를 확인하는 듯한 동작을 했어요. 저는 그때부터 손에 힘이 풀렸습니다. 비 오는 날엔 보통 우산 쓰고 빨리 지나가야 하는데, 그분은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가만히 서 있었거든요.
배달 음식은 결국 옆문 쪽에 두고 가셨는데, 문제는 제가 그걸 받으러 나가야 했다는 겁니다. 기사님이 “여기 두고 갈게요”라고만 했지, 연락처로 추가 지시를 하진 않았어요. 저는 한 손엔 비닐장갑을 끼고, 다른 손엔 휴대폰을 쥔 채로 현관문을 살짝 열었습니다. 바깥 공기가 확 들어오는데, 비 냄새랑 금속 냄새 같은 게 섞여 있었어요. 옆문으로 가는 길이 생각보다 길게 느껴졌고, 발걸음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습니다.
옆문은 생각보다 쉽게 열렸습니다. 걸쇠가 걸려 있는 느낌이 아니라, 그냥 ‘사람이 손을 댄 뒤에 남겨둔 것’처럼 살짝만 당기면 열리는 상태였어요. 저는 주변을 살폈는데, 이상한 건 아무도 없다는 점이에요. 복도엔 제 그림자만 있었고, 관리실 불빛도 꺼져 있는지 희미했어요. 그런데 문틈에서 아주 옅게, 누군가가 방금 지나간 것처럼 숨결 같은 공기가 새어 나오는 듯했어요.
음식을 찾고 돌아가려는데, 그때야 작은 표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옆문 바로 옆 벽에 누가 적어둔 메모가 있었는데, 글씨가 대충 지워져도 ‘정면’이라는 단어만은 선명했어요. 내용은 대략 이런 뜻이었어요. “정면으로 받지 마. 옆으로만.” 누가 장난처럼 써둔 걸 수도 있지만, 그 아래에 날짜가 적혀 있었고 날짜가 제가 그날 주문한 날짜랑 거의 겹쳤습니다. 저는 순간 제 등 뒤가 서늘해졌어요. 방금 전 기사님이 왜 그렇게 확신 있게 말했는지, 그제야 어렴풋이 알 것 같더라고요.
집으로 돌아오니 배달 앱 알림이 하나 더 뜨더라고요. ‘배달 완료’ 시간이 찍혀 있었는데, 그 시간이 제가 옆문 앞에 도착하기 몇 분 전이었어요. 분명 제가 음식 받으러 나간 건 알림 뜨기 전이었거든요. 저는 다시 확인했지만, 시간은 그대로였습니다. 그때 휴대폰 화면에 또 메시지가 하나 떠올랐습니다. 수신자는 알 수 없는 번호였고, 내용은 짧았습니다. “이번엔 괜찮았어요. 다음엔 사진 찍고 문 닫지 마세요.”
그 이후로 저는 정면 현관으로 배달을 받는 걸 거의 포기했어요. 앱에서 ‘문 앞’이라고 써도 기사님들이 알아서 다른 데로 두고 가는 경우가 생겼고, 가끔은 아무 말 없이 문득 문 손잡이를 ‘한 번’만 두드리고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가끔 그 옆문 쪽 복도 유리창에 비친 제 얼굴을 보게 되는데, 표정이 멀쩡하다고 느껴지다가도 어느 순간 왜인지 모르게 시선이 한 발 늦게 따라오는 것 같아요. 배달기사님이 “여기 말고 옆 문으로 두고 가”라고 했던 그 말이, 단순한 친절이었는지 아니면 누군가의 규칙을 전달한 건지… 저는 그날 이후로도 아직 정확히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