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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집에서 라디오를 틀면, 같은 문장이 반복됐다

2026-10-18 12:29:12 조회 0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시골집에서 라디오를 틀면, 같은 문장이 반복됐다. 처음엔 그냥 고장난 건줄 알았어. 장마가 끝나고 나서 할머니가 잠깐 연락도 없이 혼자 다녀오시더니, 집 열쇠는 내 손에 쥐어주고 “라디오가 요즘 말이 많다”라고만 하셨어. 그날 저녁, 나는 거실 벽에 달린 낡은 라디오를 켜서 전원 버튼을 눌렀다. 잡음이 한 번 훅 치고, 그다음부터는 또렷한 목소리로 문장 하나가 계속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집 안에 들어와 있으세요. 집 안에 들어와 있으세요.” 목소리는 남자도 여자도 아닌, 방송국 아나운서처럼 담담했는데 이상하게 감정이 없었어. 반복 속도도 정확했지. 라디오 다이얼을 돌려도, 볼륨을 줄여도, 다른 주파수로 옮겨도 그 문장만 남아 있었어. 잡음이 섞여야 정상인데, 이상하게 그 문장은 잡음 위로 또렷하게 올라왔거든. 나는 웃으면서 “뭐야, 재방송도 아니고” 하고 라디오를 껐는데, 꺼진 뒤에도 귀 안쪽에서 들리는 것처럼 남아 있다가 어느 순간 뚝 끊겼다.

다음 날 아침, 마당에서 물을 퍼 올리는데 할머니가 부엌 쪽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어. 나는 장난처럼 “라디오 틀면 같은 말 계속 나오던데요?” 하고 물었지. 그러자 할머니는 손을 멈추지도 않고, 그저 숫자를 세듯 천천히 말했어. “그 문장, 안 들리게 하려면… 바닥을 한 번 쓸어.” 이유는 설명하지 않았어. 나는 “바닥을 왜요?”라고 더 묻다가, 할머니 눈이 잠깐 흔들리는 걸 봤다. 마치 그 말이 불편해서, 이미 많이 들어온 사람처럼.

그래서 나는 오후에 마룻바닥을 쓸었어. 솔잎 냄새랑 먼지 냄새가 뒤섞였고, 쓸 때마다 바닥이 조금씩 울리는 소리가 났다. 라디오를 거실에 둔 채로, 나는 주방에서 그 소리가 들릴까 귀를 기울였지. 근데 라디오를 켜지 않았는데도, 솔질 소리 틈으로 아주 희미하게 같은 문장이 비집고 들어오는 느낌이었어. “집 안에 들어와 있으세요.” 단번에 들리진 않았지만, 마치 누가 벽지 뒤에서 속삭이는 것처럼 분명히 존재가 느껴졌다.

그날 밤엔 아예 라디오를 창고로 옮길까 고민했는데, 손에 들자마자 무게가 묘하게 느껴졌어. 분명 오래된 플라스틱 케이스인데, 잡을 때마다 손가락이 차갑게 서서히 굳는 느낌이 들었지. 나는 “장난 아니네” 하고 급히 내려놓고, 거실에 다시 세웠어. 그리고 전원을 끄지도 않고 그냥 벽장 문을 닫아버렸거든. 근데 문을 닫고도, 닫힌 틈으로 같은 문장이 새어 나오는 게 들렸다. 마치 닫힌 공간이 아니라, 문장 자체가 공간을 타고 흘러들어오는 것처럼.

나는 결국 라디오를 다시 켰어. 진짜 미친 듯이 확인해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아서. 근데 이번엔 문장이 조금 달랐다. 같은 리듬인데, 중간에 아주 작은 숨소리 같은 게 끼어들고, 그 다음에 문장이 붙었다. “집 안에 들어와 있으세요… 문을 열고.” 이건 확실히 라디오에서 나오는 방송이 아니었어. 주파수가 아닌 방식이었거든. 나는 다이얼을 더 돌려 다른 방송을 찾아보려 했는데, 바늘이 어디를 가리켜도 그 문장만 따라오는 느낌이었고, 손끝으로 느껴지는 미세한 진동이 계속 커졌다.

그때부터 공기가 달라졌어. 거실 창문에 붙은 벌레들이 한꺼번에 날개를 파닥였고, 바깥에서 바람이 불면 커튼이 움직여야 하는데 그 집에서는 움직이지 않았어. 대신, 라디오 스피커 쪽에서만 소리가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했지. 나는 무의식적으로 현관문 쪽을 봤는데, 문 앞 매트 위에 물기처럼 얇은 얼룩이 길게 생겨 있었어. 누가 물을 흘리고 간 것도 아닌데, 마치 누군가 문 바깥에서 손끝으로 선을 그어 놓은 것 같았달까. 그 얼룩은 밤새 그대로였고, 아침에 일어나도 마르지 않았다.

할머니는 그 모습을 본 척도 안 한 듯, 저녁에 밥상을 차리면서 말했어. “라디오는 집을 찾는 소리야.” 나는 “집을 찾는 게 무슨 말이에요? 방송국도 아니고…”라고 따졌지만, 할머니는 밥숟갈을 내려놓고 아주 조용히 덧붙였지. “이 집이 비면, 집이 찾는다. 너도 한 번 들어오라고 한 적 있어. 어릴 때.” 그 말이 내 머리를 스쳤어. 내가 정말 어릴 때 이 집에 처음 왔을 때, 거실에 앉아서 누군가 말을 걸면 대답하던 버릇이 있었거든. 하지만 라디오를 들으며 그걸 했다는 기억은 없었는데, 묘하게도 지금은 그 기억의 공백이 너무 또렷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으로 라디오를 확인하기로 했어. 끄는 게 답인지, 듣는 게 답인지 모르겠어서. 라디오를 켜고, 볼륨을 완전히 줄여서 거의 숨소리만 들리게 만든 다음, 그 문장이 어디서 시작되는지 귀를 세웠다. 문장의 시작은 늘 같았는데, 이상하게도 그날은 내가 숨을 들이쉴 때마다 같은 문장이 따라 왔어. “집 안에 들어와 있으세요.” 나는 숨을 멈추면 멈추는 걸 확인했지만, 숨을 내쉬면 다시 이어졌지. 결국 밤이 새도록, 나는 라디오 소리를 이기려 숨을 고르고 또 골랐어. 새벽이 되자 문장은 더 또렷해졌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반복된 뒤엔 아예 라디오가 아니라 내 집 전체에서 울리더라. 그날 이후로 라디오를 안 켜도 가끔, 아주 어쩌다, 현관문 앞에서 누가 매트를 톡톡 치는 소리가 들려… 내가 숨을 내쉬기 직전의 타이밍에 맞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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