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룸에서 비밀번호 바꾼 다음날, 초인종이 다시 울렸다
원룸에서 비밀번호 바꾼 다음날, 초인종이 다시 울렸다. 전날 밤에야겨우 마음을 정리했는데, 새벽도 아니고 딱 출근 시간대쯤—현관 쪽 스피커에서 “띵동” 소리가 또렷하게 들리니까 그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나는 아무도 오지 않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괜히 문 앞을 먼저 확인하게 되더라. 초인종을 누르는 건 누군가가 “내가 지금 여기 있는지”를 확인하는 행동 같았다.
사실 전날까지만 해도 별일 없었다. 원룸 관리실에서 받은 출입 키패드 비밀번호가 너무 쉬운 조합이라, 그냥 찝찝해서 바꾼 게 시작이었어. 1~2자리만 바꾸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새로 길게 만들어서 손에 익도록 메모해두고 외우는 식으로 바꿨다. 비밀번호를 바꾼 건 “혹시나”였는데, 문제는 그 “혹시나”가 다음 날 바로 실체가 되는 느낌이었다.
초인종을 누른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하려고 현관 쪽으로 다가가는데, 이상하게도 문 틈 사이로 바람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보통 방문 밑으로 바람이 스치면 미세하게라도 느껴지는데, 그날은 너무 조용해서 오히려 더 이상했다. 나는 문 앞에 귀를 대고 기다렸다. 누가 있다면 숨소리가 들릴 텐데, 아무 소리도 없었고, 대신 스피커에서 아주 작은 잡음처럼 “틱… 틱…” 하는 전자음이 한 번 들리고 끝났다.
“설마 관리실인가?” 싶어서 복도 쪽을 확인하려고 문 구멍으로 들여다봤는데, 복도는 하얀 형광등 아래로 텅 비어 있었어. 사람이 서 있는 모습은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현관 바로 앞 바닥엔 먼지가 아주 얇게 눌린 흔적이 남아 있었다. 누군가가 잠깐 멈춰 섰다가 돌아간 것처럼, 발자국이라고 하긴 애매한 정도의 압흔만 남아 있었지. 나는 그걸 보자마자, 전날 비밀번호 바꾼 이유가 단순 찝찝함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
그래도 그냥 지나가겠지 하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이번엔 집 안 인터폰 화면이 켜졌다. 전날에도 정상적으로 작동하던 장치인데, 호출 기록은 없다고 떴다. 화면이 켜진 건 딱 몇 초였고, 바로 꺼졌는데, 꺼지기 직전에 아주 희미한 글자가 스쳤다. 내가 제대로 봤다고 단정하긴 어렵지만, “다시” 같은 형태의 글자였어. 그 글자가 “누가”를 말하는지 “무엇”을 말하는지 애매했는데, 나한텐 너무 직설적으로 들렸다.
그래서 당장 관리실에 연락했다. 비밀번호 바꾼 다음 날 초인종이 울렸고, 복도에 사람이 없었는데 눌린 흔적이 있다—이렇게 말했더니 관리실 아줌마가 “그 시간엔 누가 출입했는지 로그 확인해볼게요”라고 하더라. 그런데 그 다음 말이 웃기면서도 소름이 끼쳤다. “원래 비밀번호 바꾸면 시스템에서 며칠 동안은 반영이 느릴 수 있어요. 그래서 그런 경우도 있어요.” 반영이 느리다는 말이 맞다면, 그럼 누가 왜 굳이 초인종을 눌렀을까. 로그인 기록이 남아야 하는데, 관리실 쪽에서는 “기록은 이상 없다”고만 했다.
그날 하루는 계속 신경이 곤두섰다. 밖에 나가야 하는데도 문을 열기 전 손잡이를 한참 잡고 있다가, 혹시 잠금이 다시 풀려 있진 않은지 확인하고서야 움직였거든.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면 항상 같은 순서로 확인했다. 방문 틈, 현관문 손잡이 흔적, 바닥 먼지. 그 사이에 초인종은 다시 오지 않았는데, 대신 밤에 가끔씩 현관 밖에서 아주 미세한 ‘문지르는 소리’가 났다. 발소리도 아니고, 누군가가 열쇠를 찾는 소리도 아니었고, 그냥 문 앞 표면을 손으로 훑는 것처럼 들렸다.
며칠 뒤, 나는 결국 비밀번호를 한 번 더 바꿨다. 이번엔 더 복잡하게, 숫자 조합도 바꾸고 개인 메모도 방 안에만 두지 않고 스마트폰에만 저장해두지 않게 조심했다. 바꾼 순간 기분이 좀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게 오래가진 않았다. 비밀번호를 바꾼 다음 날 아침, 또 초인종이 울렸다. 이번엔 정말로 ‘출근’ 타이밍이랑 정확히 겹쳤다. 전에는 누가 없었는데, 이번엔 현관 쪽에 작은 종이 쪽지가 끼워져 있었다.
쪽지를 읽는 순간 손이 저렸다. 글씨는 또렷했는데, 메모라고 하기엔 너무 짧고 건조했어. “바꿔도 알아.” 딱 그 한 줄. 누가 일부러 협박하는 건가 싶다가도, 이상하게도 그 문장이 “찾아낸다”기보단 “확인한다”에 가까운 말 같았다. 나는 그걸 보는 동안, 문이 열리진 않았지만 문 안쪽에서 누군가가 숨을 고르는 느낌이 들었다. 설마 착각이겠지 싶으면서도, 그날 이후로는 초인종이 울리는 소리를 듣는 것보다, 울리기 전의 고요가 더 무서워졌다. 마치 누군가가 내 하루를 기다리기라도 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