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기사님이 갑자기 음악 볼륨을 줄이고 조용해졌다
택시 기사님이 갑자기 음악 볼륨을 줄이고 조용해졌다. 처음엔 별거 아닌 줄 알았어. 시내를 한참 달리다가도 기사님이 라디오나 흘려듣는 음악 볼륨을 올렸다가 다시 내리는 건 종종 보이니까. 근데 그날은 타이밍이 너무 이상했어. 신호등 앞에서 잠깐 멈췄을 때, 음악이 갑자기 ‘뚝’ 하고 반으로 줄더니 이내 완전히 잠잠해졌거든.
난 뒷좌석에서 휴대폰 화면만 보고 있었는데, 기사님이 룸미러를 한 번 훑는 게 보였어. 평소엔 손님 태우면 말이라도 몇 마디 하시는데, 그분은 입을 다물고 앞만 보고 운전했어. 차 안 공기가 갑자기 두꺼워진 느낌? 창밖은 평일 저녁답게 사람도 차도 많았는데, 이상하게 내 귀가 멍해질 정도로 조용했어. 라디오 잡음도 아니고, 진짜로 ‘조용’ 그 자체였어.
“기사님, 음악이… 끊겼네요.” 내가 장난 반 진심 반으로 말하자, 기사님은 짧게 “아, 그냥요.” 하고 웃는 척을 했어. 근데 그 웃음이 입꼬리만 움직이는 거라 잘 안 올라가더라. 그리고 한 번 더 룸미러를 보면서, 아주 작게 숨을 들이마시는 게 들렸어. 마치 누가 옆자리에서 숨 쉬는 걸 확인하는 것처럼.
그때부터 핸들이 미세하게 흔들렸어. 차선 중앙을 타고 가야 하는데, 아주 천천히 한쪽으로 붙었다가 다시 돌아오고, 또 붙었다가 돌아오고. 나는 처음엔 운전 실수인가 했는데, 그 패턴이 너무 일정했어. “길이 막혀서 피하시는 건가?” 싶었지만, 막힌 곳도 아니었고 도로는 그대로였어. 기사님만 계속 뭔가를 피하는 것 같았거든.
내가 시계를 보려는 순간, 기사님이 급하게 블루투스 연결을 끊었는지, 휴대폰 알림 소리도 같이 꺼졌어. 원래 택시에선 내비나 음악이 꺼지더라도 다른 소리는 남잖아. 근데 그날은 소리가 전부 사라진 것처럼 느껴졌어. 이때 이상하게 손바닥이 차가워졌는데, 단순히 긴장해서 그런 건지 잘 모르겠더라. 그냥 감각이 먼저 알아채는 느낌?
“기사님, 어디 보세요?” 내가 또 툭 던지듯 묻자, 기사님이 잠깐 말이 없어졌다가 “저기요. 뒤에…요.” 라고 했어. 그 말이 너무 애매해서 내가 “뒤에요?” 하고 되묻는 사이, 기사님이 창문을 아주 살짝 내리더라. 바깥 공기가 스며들었는데, 이상하게도 차 안에서만 조용하던 게 바깥까지 조용해진 것 같았어. 엔진 소리조차 멀어지고, 도로 위 소음이 얇아지는 느낌.
그 다음 신호등에서 초록이 들어오자마자, 택시가 출발했는데도 나는 분명히 ‘움직이는 감각’이 덜했어. 차가 멈춘 상태처럼 느껴질 정도로. 기사님은 액셀을 밟고 있는데, 속도감이 이상했어. 나는 그때서야 룸미러를 봤는데, 내 뒤 좌석 공간은 비어 있었어. 분명 손님도 없고, 짐도 없는데. 그런데도 시선이 자꾸 ‘누가 앉아 있는 자리’로 끌려가더라. 마치 소용돌이처럼.
그 순간, 기사님이 내비 화면을 손가락으로 꾹 눌렀고, 목적지 경로가 잠깐 멈칫하더니 반대로 돌아가기 시작했어. 원래 가려던 길이 아니라 옆 골목으로. 나는 “기사님, 제가 말한 곳이 아닌데요” 하려다가 말을 삼켰어. 왜냐면 기사님이 한 손으로 계기판을 누르면서도 다른 손은 핸들을 꽉 잡고 있었는데, 그 손등이 하얗게 질려 보였거든. 땀이 나는 게 아니라, 뭔가 체온이 빠져나가는 사람처럼.
내가 결국 기사님을 보고 “혹시… 무슨 일 있으세요?”라고 하자, 기사님이 한참 있다가 “음악을 끄면, 그게 덜 들려요.” 라고 말했어. 그 말이 너무 뜬금없어서 웃음이 나올 뻔했는데, 입이 굳었어. “그게 누구요?”라고 묻기도 전에 기사님이 급히 창문을 다시 올렸고, 속도를 갑자기 줄였어. 그러더니 길가에 정차하더라. 이유를 묻기 전에, 기사님이 내 쪽을 보면서 아주 조심스럽게 “내리실 거면 지금 내리세요. 저기 사람들이 있는 데 말고, 저기 그늘…”이라고 했어.
근데 막상 내려보려니까 다리가 안 움직였어. 택시 문 손잡이를 잡았는데도 손이 힘이 안 들어가더라. 그때 기사님이 휴대폰을 꺼내서 작은 메모를 보여줬는데 글자는 이런 식이었어. ‘소리가 없으면 찾지 못함.’ 그리고 그 아래에, 이해하기 힘든 숫자 같은 게 적혀 있었어. 나는 그 순간, 차 안에서 유난히 조용했던 이유가 ‘내가 불편해서’가 아니라, 누군가의 존재를 숨기려는 거였다는 걸 직감했어. 물론 누가 있는지 확인할 용기는 없었고.
결국 난 목적지에 한참 못 가서 택시를 탔던 곳과 똑같이 돌아온 지점에서 내렸어. 기사님은 요금도 미리 계산된 것처럼 딱 맞게 받았고, 영수증도 내밀지 않았어. 차 문이 닫히는 순간, 음악은 다시 켜졌는데 너무 크게 울려서 순간 귀가 찌릿했어.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음악을 듣는 동안엔 마음이 편해지지 않았어. 오히려 그 조용함이 되돌아오지 않아서 더 불안했달까. 집에 와서야 생각났어. 그날 기사님이 룸미러를 보던 방향, 그리고 내가 보려던 ‘비어 있는 자리’가… 운전석 뒤쪽이 아니라, 내 등 뒤쪽이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