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막사 샤워실에서 물소리가 발걸음처럼 들렸다
군대 막사 샤워실에서 물소리가 발걸음처럼 들렸다. 처음엔 그냥 급수 밸브 소리겠거니 했는데, 그날 밤은 유독 일정하게 “뚝, 뚝” 떨어지듯 들려서 소름이 확 끼쳤다. 샤워실은 취침등 켜져 있는 복도 끝에 붙어 있었고, 수도는 늦은 시간엔 거의 끊기다시피 했다. 그런데도 물이 흐르는 소리가, 마치 누가 젖은 바닥을 밟으며 천천히 다가오는 소리처럼 반복됐던 거다.
그게 시작된 건 행정반에서 당직 서고 난 다음 날이었다. 전날엔 점호 때문에 다들 피곤해서 샤워를 빨리 끝내고 들어갔는데, 나는 이상하게 마지막까지 남아 땀이라도 닦고 싶었다. 스팀이 얇게 올라오는 듯한 분위기에서 수도를 틀자 물줄기 소리는 평소처럼 나왔다. 그런데 그 “평소처럼”이 이상하게 섞였다. 물이 흐르는 중간중간, 꼭 발을 옮기는 것 같은 간격이 들어갔다.
처음엔 수도 배관이 진동해서 그런가 싶었다. 샤워실 천장 쪽에 배관이 지나가는데, 어제 누가 정비한다고 만지긴 했거든. 그래서 나는 물을 끄고도 잠깐 귀를 기울였다. 이상하게도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수도가 완전히 잠겨 있는데도 “뚝… 뚝…”이 벽 쪽 어딘가에서 계속 들렸다. 바닥이 물기 때문에 울리는 건지, 아니면 다른 데서 나는 건지 분간이 안 됐다.
나는 그냥 웃자고 생각하고, 세면대에서 물을 한 번 더 틀었다. 물소리가 커지면 그 발걸음 같은 소리도 묻힐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또렷해졌다. 물이 “쏴아” 하고 흐르는 소리 사이로, 멀어졌다가 가까워지는 듯한 박자가 반복됐다. 문 쪽이 아니라 샤워실 안쪽, 탈의실 겸 수납장 근처에서 시작해서 출입문 쪽으로 옮겨오는 느낌이었다. 그 순간부터 등줄기가 식는 게 느껴졌다.
그때부터는 이상하게도 숨소리가 커져서 내 귀가 더 예민해졌다. 나는 샤워실 문을 열고 밖 복도를 잠깐 봤다. 복도는 어둡고, 멀리 초소에서 가끔 비치는 빛만 움직였다. 누가 지나가는 것도 없었고, 발소리로 이어질 만한 소문 같은 것도 없었다. 근데 문을 다시 닫는 순간, 바로 뒤편에서 “뚝” 하고 한 번 더 들렸다. 내가 문을 닫는 소리에 맞춰 따라치는 것 같았다.
참다못해 나는 “누구 있어요?” 하고 낮게 불렀다. 군대에서는 누가 장난치면 크게 울릴 일이 없으니까, 누군가 답이라도 해주면 그걸로 정리될 거라고 생각했거든. 하지만 샤워실 안은 대답 대신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만 이어졌다. 그 “뚝, 뚝”이 아주 천천히 속도를 올리더니, 어느 순간에는 출입문 바로 앞에서 멈추는 듯했다. 손잡이에 닿지 않았는데도, 바람이 스치듯 피부가 간질거렸다.
나는 그때야 휴대폰 화면을 켜서 비춰봤다. 조명이 약해서 잘 안 보였지만, 샤워실 바닥 물자국은 분명히 있었다. 문제는 물자국이 “한 번 지나간 흔적”이 아니라, 여러 번 덧대어 찍힌 것처럼 겹겹이 보였다는 거다. 마치 누가 젖은 바닥을 밟고 서너 번 방향을 바꾼 것처럼. 나는 순간적으로 떠올랐다. 이 샤워실이 이전엔 급하게 리모델링하면서 일부 배관을 다른 구역에서 끌어온 걸로 들었는데, 혹시 그때 생긴 빈 공간이 배수구처럼 소리를 키우는 건 아닐까 하고.
근데 생각이 거기까지 가면 마음이 또 꺾였다. 왜냐면 그 소리는 기계음이라기보다, “사람이 서서 기다리는 리듬”에 가까웠다. 내가 숨을 멈추면 소리도 멈췄고, 내가 다시 움직이면 소리가 재개됐다. 물을 틀지 않았는데도. 결국 나는 옷을 챙겨 뛰쳐나와 문을 닫아 걸고, 당직실 쪽으로 가서 선임한테 말하려다 그만뒀다. 괜히 과장해서 웃음거리가 될까 봐가 아니라, 말하는 순간 진짜로 “누군가”가 자기 존재를 확인받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로도 샤워 시간만 되면 귀가 자동으로 그 소리를 찾아냈다. 평소엔 수도 소리만 나야 할 시간이 있는데, 누군가 물 틀면 꼭 같은 박자가 섞였고, 다른 날엔 내 등 뒤에서 나는 것처럼 착각했다. 나는 어느새 샤워실 들어가기 전에 바닥을 먼저 확인하고, 배수구를 유심히 보고, 문을 닫은 뒤에는 한동안 등을 돌리지 않았다. 선임들도 “그냥 배관 소리”라고 넘겼지만, 이상하게 다들 말은 안 해도 샤워실 안에서 오래 버티질 못했다. 잠깐만 있다 나오거나, 아예 건너뜀.
그리고 마지막으로 확실히 굳어진 건, 한 번 꿈에서였다. 샤워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먼저 들리고, 그 다음에 “뚝, 뚝” 박자가 복도 끝까지 따라오는 꿈. 나는 문 앞에서 멈춰 있는데, 물소리가 발걸음처럼 내 쪽으로 점점 가까워졌다. 깼을 때는 새벽 공기가 차가웠고, 방 한가운데 소름이 바닥에 붙어 있는 것처럼 끈적하게 남아 있었다. 그 뒤로도 군대는 끝났는데, 아직도 샤워실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면 가끔은 멈칫한다. 혹시 그 박자가, 내 뒤가 아니라 내 안에서 걷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