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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주차장 비상벨이 울리고 나서, 전등이 잠깐 꺼졌다

2026-10-21 12:29:13 조회 1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지하주차장 비상벨이 울리고 나서, 전등이 잠깐 꺼졌다. 그날은 비가 오락가락해서 동네가 축축했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금속 바닥에서 물기가 반짝였다. 나는 차를 빼러 갔다가, 그 울림이 그냥 “점검 중” 같은 소리인 줄 알았다. 그런데 비상벨은 한 번 울리고 끝나는 게 아니라, 끊겼다가 다시 울리는 식으로 규칙이 있었다. 그게 이상하게 계속 신경에 걸렸다.

처음엔 옆동 주민이 장난치는 줄 알았다. 비상벨 버튼은 눈에 잘 띄는 곳에 달려 있고, 누르면 보안실에 바로 연락이 간다고 들었다. 그래서 ‘누가 또 눌렀나 보네’ 하고 계단 쪽으로 걸어가는데, 벨 소리와 함께 전등이 딱 한 번 꺼졌다 켜졌다. 누가 스위치를 내린 것도 아닌데, 전체가 아니라 한 줄로 끊기듯 암흑이 지나갔다. 그 순간, 주차장 천장에서 미세하게 물 떨어지는 소리만 또렷하게 들렸다.

나는 차 키를 쥔 손이 조금 식는 걸 느꼈다. 전등이 다시 켜졌을 땐, 사람들이 다니는 길이 아닌 구석 자리 쪽이 더 어두웠다. 비상벨은 계속 울렸는데, 이상하게 그 소리가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더 멀어진 것 같았다. 바람 때문인가 싶어서 숨을 들이마셨는데, 습기 냄새 사이로 아주 옅은 냄새가 섞여 있었다. 불에 탄 플라스틱 비슷한, 그런데 오래된 전기 냄새 같은.

보안실로 가는 문이 잠겨 있는 건 아니었다. 관리실이야말로 늘 사람 냄새가 나야 정상인데, 그날은 유난히 조용했다. 문 앞에 서서 경비 호출 버튼을 누르려는데, 벨 소리가 잠깐 멎었다가 바로 이어졌다. 멈춘 찰나에, 아주 희미한 발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신발로 바닥을 “툭, 툭” 치는 소리였는데, 그 리듬이 벨의 끊김과 똑같았다.

나는 본능적으로 전등이 있는 쪽으로만 발을 옮겼다. 어둠이 길어지면 시야가 적응하기 마련인데, 그 주차장은 반대로 적응이 안 됐다. 불이 켜진 구간에서는 멀쩡한데, 한 칸만 지나면 마치 화면이 흐려지는 것처럼 앞이 뿌옇게 느껴졌다. 그리고 구석 기둥 뒤에서 무언가가 움직였다. 사람이 지나갈 때 생기는 그림자 정도가 아니라, 그림자 자체가 비틀리듯 흔들렸다.

그때 비상벨이 다시 크게 울리면서 전등이 한 번 더 꺼졌다. 이번엔 더 짧았다. 하지만 짧아서 더 선명했다. 꺼진 동안, 나는 무의식적으로 바닥을 봤다. 바닥에는 물기가 얇게 깔려 있었고, 그 위에 누군가가 지나간 흔적처럼 얇은 줄이 생겨 있었다. 그런데 차 바퀴 자국도 아니고, 누군가 발로 끌고 간 듯한 모양이었다. 불이 켜지자마자 그 줄은 금방 사라졌는데, 정확히 어디부터 어디까지였는지 눈으로 따라가기가 어려웠다. 마치 흔적이 아니라 “보이던 착시” 같았다.

나는 결국 보안실에 들어가려다 말고, 일단 벨을 누른 쪽을 확인하기로 했다. 비상벨은 주차장 끝, 기둥 옆에 달려 있었다. 걸어가면서도 계속 들리는 건 벨 소리뿐이었는데, 이상하게도 누군가의 숨소리는 안 들렸다. 너무 조용해서 오히려 내가 소리를 내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기둥 앞에 다가가자, 버튼에는 아무도 없다. 손도 묻지 않은 것처럼 깨끗한데, 방금 전까지 누른 흔적이 있는지처럼 살짝 눌린 각도가 보였다.

그 순간, 전등이 또 잠깐 꺼졌다. 이번엔 내 바로 뒤쪽이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돌아봤는데, 그때 보안실 쪽 복도 끝이 아주 짧게 어두워졌다가 다시 밝아졌다. 그리고 복도 끝에서 뭔가가 “한 발” 나왔다. 정확히 말하면 사람이 아니라, 사람이 서 있었던 위치가 먼저 나타난 것 같았다. 그 자리에 공기만 차분히 눌리듯 변했고, 곧 그 모양이 다시 사라졌다. 나는 그때야 깨달았다. 벨이 울리는 이유가 ‘누가 고장 내서’가 아니라, 누군가가 그 공간을 확인하는 것처럼 느껴졌다는 걸.

벨 소리는 계속 이어지는데, 이상하게도 누군가는 가까이 오지 않았다. 대신 전등이 꺼졌다 켜질 때마다 “누군가의 위치”가 바뀌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한 칸 움직이면 어둠도 한 칸 옮겨 붙는 느낌. 그래서 나는 더 이상 앞으로 가지 못하고, 마지막 전등 구간 근처에서 멈춰 섰다. 그때 벨이 갑자기 끊겼고, 대신 아주 작게 “딸깍” 하는 소리가 났다. 마치 버튼이 스스로 눌렸다가 풀린 것처럼. 그리고 가장 마지막으로 켜진 전등 아래에서, 물기 바닥에 내 발자국과 똑같은 모양의 그림자가 한 번 더 찍혔다. 내 그림자는 분명히 내 뒤에 있어야 했는데, 그 순간엔 내 앞에 생겨서, 천천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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