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최신글
자유/잡담 괴담 추천 0

택시에서 기사님이 ‘여긴 처음이 아니죠’라고 말했다

2026-10-22 16:29:14 조회 2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택시에서 내리려는데 기사님이 갑자기 말을 던졌어요. “여긴 처음이 아니죠.” 그냥 길 묻는 건 줄 알았는데, 그 순간 등 뒤가 서늘해졌습니다. 분명 방금까지는 목적지 얘기만 하고 있었거든요. 저는 마른웃음을 흘리면서 “처음이죠”라고 답했는데, 기사님은 거울을 한 번 보더니 운전대를 더 꽉 쥐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날도 평소처럼 늦게 퇴근하고, 집 가는 길에 택시를 탔습니다. 시간은 대략 자정쯤이었고 비가 아주 조금씩 내려서 도로가 반짝였어요. 저는 기사님이 조용한 분인 줄 알았는데, 대화가 오가던 건 거의 없었고, 대신 창밖을 오래 보게 만드는 분위기였어요. 목적지는 제가 말했던 동네 이름까지는 똑같이 갔는데, 중간에 한 번도 길을 묻지 않았는데도 기사님은 제 표정을 계속 확인하는 것 같았습니다.

처음엔 단순한 농담 같았어요. “여긴 처음이 아니죠”라는 말이 너무 자연스럽게 나와서, 제가 자주 다니는 곳인가 착각한 걸 수도 있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저는 “네? 여긴 처음이에요. 여기로만 지나가봤지”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기사님이 아주 작게 웃었는데, 웃음이 아니라 숨을 잠깐 멈춘 것처럼 들렸어요. 그리고 곧바로 속도를 줄였고, 길가에 주차된 차들 사이로 한 번 꺾더니 이상하게도 같은 방향으로 다시 돌아 나왔습니다.

저는 “길이 막혀요?”라고 물었고, 기사님은 “막힌 게 아니죠”라고만 말했어요. 그 말투가… 되게 차분했는데, 묘하게 단정적이었습니다. 저는 기사님이 네비를 믿고 가는 건지 확인하려고 휴대폰을 봤는데, 지도 앱은 신호가 약한지 돌아가질 않았어요. 그런데 택시는 정확히 제 목적지까지 가는 경로를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동시에 제가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느낌이 계속 들었습니다.

결정타는 신호등 앞에서였어요. 빨간불에 걸리는데, 기사님이 갑자기 “혹시 오늘 꿈 꿨어요?”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얼떨결에 “꿈이요? 그냥 평범하게요”라고 대답했는데, 기사님은 말없이 손가락으로 계기판을 두드렸습니다. 그때 저는 문득, 방금 전까지 제 머릿속에 남아 있던 장면이 비슷하게 떠올랐어요. 비슷하다고 하기엔 너무 구체적이었는데, 꿈 속에서도 택시에서 누군가가 같은 말을 했거든요. “여긴 처음이 아니죠.” 꿈에서는 제가 대답을 못 했는데, 현실에서는 제가 대답을 했다는 게 이상했습니다.

기사님은 더 이상 대화하지 않았고, 대신 라디오를 껐습니다. 원래 잔잔하게 잡음 섞인 음악이 나오고 있었는데, 그걸 끄는 게 너무 타이밍이 정확했어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택시가 저희 집 근처가 아니라 한 블록 더 안쪽으로 들어갔습니다. 저는 “여기 말고 앞에 세워주세요”라고 했는데, 기사님은 “앞은 아니죠”라고 답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어요. 왜냐면 제가 집 앞에서 내리는 걸 원한 이유가, 단순히 편해서가 아니라 그 길이 제가 싫어하는 길이었기 때문이거든요.

그 싫어하는 이유를 누가 알 수 있냐고요. 저는 아무한테도 말한 적이 없고, 심지어 친구들도 “그냥 불편하지?” 정도로만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기사님은 제가 그 길로 가는 걸 피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처럼 굴었습니다. 저는 급하게 “기사님, 혹시 제 어디를 봤어요?”라고 물었어요. 그러자 기사님이 아주 짧게, 마치 기록 확인하듯 말했습니다. “같은 손님이 여러 번 탔어요. 근데 매번 내릴 때 표정이 달라요.”

저는 그 말이 너무 이상해서 장난으로 넘기려 했는데, 기사님이 핸드폰 화면을 보여주지는 않았어요. 대신 거울에 비친 제 얼굴을 계속 보더니, “지금도 처음이라고 생각하죠?”라고 했습니다. 그때 저는 진짜로, 이상한 확신이 들었습니다. ‘내가 이 말을 이미 들은 적이 있다’는 느낌이 아니라, ‘내가 이 말을 들을 걸 알고 있었던 것’ 같은 감각이요. 그리고 그 순간, 택시 안에서 공기가 얇아진 것처럼 답답해졌습니다.

내리기 직전까지도 기사님은 계속 같은 톤이었어요. “여긴 처음이 아니죠”라는 말만, 다른 문장처럼 계속 반복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결국 돈을 내고 문을 열었는데, 기사님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말했어요. “다음에는 돌아갈 때도 타세요. 그게 편해요.” 저는 뒤돌아보지 못했어요. 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는데, 거울로 본 기사님 눈빛이 이상하게 또렷해서 말이 안 나오더라고요.

집에 들어와서 한참을 앉아 있다가, 문득 택시 영수증을 확인하려고 했습니다. 근데 제 휴대폰 결제 내역에는 택시가 찍혀 있었는데, 날짜가 오늘이 아니었어요. 어제, 정확히는 제가 꿈에서 그 장면을 본 날 날짜랑 같았습니다. 그리고 화면 아래쪽에 작은 글자로 ‘이동 기록: 미확정’이라고 떠 있었어요. 저는 그때야 깨달았습니다. 내가 두 번 탔다는 게 아니라, 누군가가 제가 이미 탔던 시간을 알고 있다는 것 같았다는 걸요. 비 오는 밤은 늘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날만큼은 문득 ‘여긴 처음이 아니구나’라는 말이 제 안에서 계속 울렸습니다.

이 글 반응 남기기
추천과 비추천은 회원당 1회만 가능하며, 다시 누르면 취소됩니다.
추천 0 · 비추천 0
글 신고 안내
같은 회원은 같은 글이나 댓글을 1회만 신고할 수 있으며, 누적 신고가 5회 이상이면 자동으로 숨김 처리됩니다.
현재 글 신고 0회

댓글

댓글 작성은 로그인 후 가능합니다.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