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화장실 거울에 김이 서리는데, 아무도 사용 안 했다
회사 9층 화장실, 특히 남자 화장실 맨 끝 칸 거울에만 이상하게 김이 서리는 날이 있었어요. 그런데 문제는 그 날, 그 칸을 아무도 안 썼다는 거예요. 아침에 출근해서 물기 닦아 놓고 문 닫아둔 걸 제가 직접 봤거든요. 그랬는데 점심 즈음부터 거울 한가운데가 마치 누가 숨을 길게 내쉰 것처럼 뿌옇게 번져 있었어요.
처음엔 자동세정 고장인가 싶었죠. 화장실에 비치된 에어스프레이가 분사되는 타이밍이 꼬였을 수도 있고, 누가 몰래 샤워하듯 물을 뿌렸을 수도 있다고요. 근데 거울 표면은 젖어 있다기보다, 딱 “김이 올라온 자리”만 남아 있었어요. 창문도 닫혀 있고 환풍도 정상인데, 거울 전체가 아니라 중앙만 사선으로 서리처럼 번져 있었거든요.
저 말고도 다들 봤대요. 같은 층에서 일하는 팀이랑 말이 나왔는데, “어제 저녁에 누가 쓴 거 아니야?” 같은 말이 먼저 나왔어요. 하지만 관리실에서 CCTV 확인한다는 통보가 내려가자 분위기가 확 꺾였죠. 그 시간대에 맨 끝 칸 출입 기록이 없었거든요. 출입문이 자동으로 찍히는 방식이라, 누가 잠깐이라도 들어가면 로그가 남는데도요.
저는 괜히 신경 쓰여서 그날 퇴근 전에 거울 앞에 서서 확인했어요. 손바닥을 대면 김이 새로 생기려나 했는데, 이상하게도 손을 떼는 순간에만 더 뿌옇게 번졌어요. 마치 제가 “관찰했다”는 걸 거울이 인식한 것처럼요. 그런데 제 숨이 닿은 흔적처럼 얇게 퍼지지 않고, 기존에 있던 김 자국의 테두리가 도드라지면서 동그랗게 모였어요.
그 다음 날부터는 더 노골적(?)으로 변했어요. 아침엔 멀쩡하다가 오후 2시쯤 딱 맞춰서 김이 생겼고, 그 김이 서서히 내려가며 거울 아래쪽으로 이동했어요. 저는 그게 증발이 아니라 ‘자리를 옮기는 것’ 같다고 느꼈어요. 누가 천천히 거울 앞에서 몸을 숙였다가 다시 일어나는 것 같은 궤적이랄까요. 거울 위에만 생기고, 바닥이나 주변은 건조했어요.
사람들이 점점 장난처럼 말하기 시작했는데, 그중에 제일 무서운 건 “누가 뒤에 서 있나 봐”라는 말이었어요. 처음엔 웃겼거든요. 근데 어느 날은 제가 거울을 정면으로 보고 있는데, 거울 속 제 시야 옆으로 아주 희미하게 그림자가 따라오는 느낌이 들었어요. 분명 제 뒷모습은 없는데, 거울에는 ‘누군가 한 발 늦게 같은 동작을 따라 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이상하다고 느껴서 관리팀에 문의했더니 돌아온 답이 더 황당했어요. “거울 교체한 지 얼마 안 됐고, 센서도 이상 없어요. 그리고 그 칸은 최근에 사용 기록이 없습니다.” 사용 기록이 없다는 말을 듣고도, 김이 생기는 시간대가 너무 일정해서 소름이 돋더라고요. 회사가 바쁜 시간, 회의가 몰리는 시간, 사람들이 화장실에 몰리는 시간에만 반복됐어요. 그러니까 “사람이 안 쓴 칸인데도” 사람이 쓰던 것처럼요.
그날 밤, 저는 혼자 남아서 9층 복도를 한 번 더 확인했어요. CCTV가 막혀 있는 구간은 없는지, 화장실 안쪽으로 이어지는 유도동선에 사각이 있는지 확인하려고요. 그런데 복도 끝에서 화장실 문 손잡이를 잡는 순간, 문틈 사이로 아주 얇은 김 냄새 같은 게 새어 나왔어요. 젖은 수증기 특유의 냄새가 아니라, 그냥 “숨”이 지나간 듯한 느낌. 문을 열자마자 거울은 여전히 뿌옇고, 김이 중앙에서 천천히 퍼지며 모양을 만들고 있었어요.
그 모양이 정확히 뭘 닮았는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지만, 분명한 건 “무언가가 거울을 보고 있었다”는 감각이었어요. 저는 본능적으로 거울을 피하려고 고개를 돌렸는데, 그 순간 거울 속에서는 제가 고개를 돌린 방향이 아니라, 반대로 더 오래 그 자리에 서 있는 제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어요. 마치 시간이 한 박자 늦게 따라오는 느낌. 그때 거울 아래쪽에 김 자국이 한 번 크게 몰리더니, 마지막엔 아주 얇은 선으로 끊어졌습니다.
다음 날도 똑같이 오후 2시에 김이 섰고, 저는 결국 그 칸 거울 앞에서 물기를 닦아내지 않기로 했어요. 닦으면 다시 생긴다는 걸, 이미 알게 됐거든요. 그리고 무엇보다, 그 김이 서리는 속도가 이상하게도 ‘누가 숨을 고르는 시간’이랑 비슷하다는 걸 느끼게 됐어요. 지금도 가끔 그 거울을 보면 뿌옇게 서린 중앙이 있는 자리에, 아무도 없는데도 누군가가 서 있던 자리처럼 남아 있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