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승차하자마자 미터기가 이상하게 빨리 올라간다
택시 승차하자마자 미터기가 이상하게 빨리 올라간다.
그날도 그냥 평범하게 늦은 시간에 길가에서 손 들었어. 비도 살짝 오고, 목적지는 회사 앞이라 멀지 않은 거리였거든. 기사님은 창문을 반쯤 내리더니 “어디요?” 하고 짧게 물었고, 나는 “○○역 근처요”라고 말했어. 그런데 이상한 게, 탄 순간부터 뭔가 느낌이 달랐어. 엔진 소리나 차체 흔들림이 아니라, 미터기 숫자가 올라가는 속도가 비정상적으로 빠르더라. 처음엔 ‘그래도 밤이라 할증인가’ 싶었는데, 1~2분도 안 돼서 금액이 이미 꽤 올라가 있었어.
처음엔 내가 멍하니 있었던 것 같아서 화면을 몇 번이나 확인했어. ‘빠르다’는 감각이 아니라, 숫자가 실제로 점프하듯이 튀어 올라가는 느낌이었지. 보통은 도로가 막히거나 신호 걸리면 천천히 오르잖아. 그런데 그날은 차가 막히는 구간이 거의 없었는데도 미터가 마치 누가 계산기를 치듯이 올라가더라. 나는 기사님을 쳐다봤는데, 기사님은 앞만 보면서 운전하고 있었고, 내 시야에는 계기판이 계속 스쳐 지나가고 있었어.
“기사님, 미터기 좀… 원래 이렇게 빨리 올라가요?” 하고 물어보려다 말았어. 물어보면 민망할 것 같기도 하고, 혹시 기사님이 그냥 시스템이 그럴 뿐이라고 넘기면 더 이상해질 것 같았거든. 근데 지나가던 가게 불빛이 끊길 때마다 미터 숫자가 더 빨라지는 것처럼 보였어. 그때부터는 진짜로 마음이 조여 왔어. 비 오는 밤에는 괜히 상상력이 커지잖아. 그래도 ‘설마 조작’ 같은 생각까지는 안 했어. 그냥 찝찝한 느낌만 계속 쌓였지.
차는 신호에 걸렸는데도 미터가 멈추지 않았어. 신호대기할 때는 보통 고요하게 시간만 지나가면서 조금씩 올라가거나, 최소한 멈춘 것처럼 느껴지는데 그날은 아니었어. 멈추는 순간이 없더라. 게다가 앞차가 보통 속도로 가다가 조금만 감속해도 미터는 더 가속하듯이 반응했어. 그제야 나는 핸드폰 화면으로 시간을 확인했어. ‘지금 3분인데 2배는 넘었는데…’ 싶은 생각이 들어서, 잠깐 숨을 고르고 기사님을 보며 조심스럽게 말했어.
“혹시 단거리여도 요즘 이렇게 빨리 잡히는 구간이 있어요?” 기사님은 잠깐 고개를 돌리더니 대답을 했어. “네? 손님, 계산은 정상입니다.” 말투가 이상하게 무덤덤했어. 그 다음부터는 내가 더 말 걸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가 됐어. 그래서 나는 창문 밖을 계속 봤는데, 비 때문에 길가 간판들이 번져 보이면서도 이상하게도 내가 지나가는 장소가 자꾸 낯설게 느껴졌어. 분명 회사 앞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했는데, 차가 몇 번 꺾을 때마다 길이 살짝씩 바뀌는 느낌이었거든.
그때 미터기에서 한 번 “뚝” 하는 느낌이 들었어. 숫자가 정해진 방식대로 오르는 게 아니라, 마치 누군가가 눈금을 맞추는 것처럼 특정 숫자에서 멈췄다가 다시 튀어 올랐어. 나는 순간적으로 전혀 안 맞는 속도로 금액이 올라가는 걸 봤고, 손끝이 차가워지더라. 기사님은 계속 운전했고, 내 앞 유리창에는 빗방울이 흐르는데 운전석 쪽 반사 때문에 기사님 얼굴이 잘 안 보였어. 이상하게도 눈을 마주친 느낌이 들지 않았고, 그게 더 불길했어.
나는 결국 “여기서 내려도 돼요?” 하고 말했어. 그런데 기사님이 “아직 멉니다”라고만 했어. 내 목적지까지 거리도 짧았는데, 말이 너무 단정적이어서 오히려 내가 착각한 건가 싶었거든. 하지만 창밖에 보이는 표지판이 계속 달라지고, 건물 간격도 내가 아는 길이랑 달랐어. 그때 나는 기사님이 내 말만 듣고 있는 게 아니라, 내 반응을 기다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 내가 이상하다고 느끼는 순간마다 미터가 더 빨라지는 것 같았거든. 그래서 더 참았고, 대신 계산이 끝나는 순간을 확인하려고 입술을 깨물었어.
결국 목적지라고 생각했던 근처에 도착했을 때, 차는 이상하리만치 조용해졌어. 엔진 소리가 줄어드는 게 아니라, 주변 소리가 갑자기 얇아지는 느낌? 내가 내린 곳은 회사 앞이 아니라, 정류장 하나도 없는 작은 골목 입구였어. 기사님은 미터기 금액을 딱 보여주고 “결제하세요”라고 했어. 금액은 내가 생각한 거리랑 비교가 안 됐고, 손님 입장에서 따지기엔 이미 늦은 분위기였지. 그래서 나는 현금을 내려고 손을 뻗었는데, 그 순간에 미터기가 0으로 돌아가더라. 화면이 꺼졌다 켜지는 것도 아닌데, 마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듯이 숫자가 리셋된 느낌이었어.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차 문을 열었어. 내리자마자 기사님은 창문을 올리고, 차는 브레이크 소리도 제대로 없이 유유히 출발했어. 골목 끝까지 갔다가 돌아보지 못하게 만드는 속도였지. 그리고 집에 와서 영수증 앱이나 결제 내역을 확인하려고 했는데, 내가 결제를 한 흔적이 없었어. 이상하게도 미터가 리셋되던 순간이 ‘내가 계산하지 못하게 막은 것’ 같았거든. 그날 이후로 택시 탈 때 미터기 숫자 올라가는 속도만 보면, 내가 탄 순간부터 누군가 시간을 재는 것 같아서 자꾸 등골이 서늘해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