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복도에서 걸음소리가 뒤에서 앞으로 옮겨간다
병원 복도에서 걸음소리가 뒤에서 앞으로 옮겨간다. 그날도 나는 야간 당직이라기보단 “대기”에 가까운 근무를 하고 있었고, 병원은 늘 그렇듯 에어컨 바람이랑 형광등 소리가 섞여 희미하게 울렸다. 그런데 이상하게, 복도 끝에서 들리던 발소리가 점점 앞으로 당겨지는 느낌이 들었다. 분명 내 뒤에서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내 앞에서 같은 속도로 다시 걷는 것처럼 들렸다.
처음엔 단순한 착각이라고 넘겼다. 복도는 길고, 병실 문과 각도 때문에 소리가 튕기는 지점이 몇 군데 있다는 건 나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간호사 호출벨이 울리면 누군가 움직일 때가 있으니 그 소리를 잘못 들었나 싶었다. 다만 그 발소리는 너무 “규칙적”이었다. 문지방을 넘는 둔탁한 소리, 신발이 바닥을 긁는 얇은 마찰음까지, 내가 듣는 각도만 달라지는 게 아니라 소리 자체가 위치를 바꾸는 것 같았다.
나는 체온계를 들고 간호실을 잠깐 나와 복도 한가운데 섰다. 밤 공기는 차갑고, 벽지의 미세한 냄새가 목 뒤로 닿았다. 그때 내 등 뒤, 정확히 내 뒤통수 바로 뒤쪽에서 “딱, 딱” 발이 시작되는 게 들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물론 아무도 없었다. CCTV 모니터는 간호실 안에 있었고, 복도에는 정적만 걸려 있었다.
그런데 다음 순간, 발소리가 내 바로 앞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 내 뒤에서 들리던 타이밍이, 마치 누군가 소리의 좌표를 옮긴 것처럼 앞으로 이동했다. 나는 다시 몸을 틀었지만 여전히 사람이 없었다. 대신 복도 끝에서 바람이 한 번 스치듯 소리가 커졌다가 줄어들었다. 나는 그제야 “이게 내 귀가 틀린 게 맞나” 싶었고, 휴대폰을 들어 녹음을 켜려다 손이 조금 떨리는 걸 느꼈다.
녹음 버튼을 누르자마자, 발소리는 또 바뀌었다. 내 왼쪽 옆으로 옮겨간 것처럼 들렸다가, 바로 그 다음에는 오른쪽 벽 쪽에서 들렸다. 바닥이 울리는 방식이 바뀌는 느낌이라기엔 너무 매끄러웠다. 소리가 옆으로 ‘미끄러지듯’ 이동했다. 병원 복도는 보통 그냥 반향이 섞이는데, 이건 반향이 아니라 누가 실제로 걸어오는 위치가 바뀌는 것 같았다.
나는 병실 문을 하나씩 확인하려 했다. 잠금장치가 있는 문들, 불 꺼진 커튼, 차가운 커버 위로 비치는 달빛 같은 게 떠올랐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손을 뻗는 순간마다 발소리가 내 손의 방향을 피해가는 것처럼 들렸다. 예를 들면 왼쪽 병실 문을 잡으려 하면 그 발소리가 오른쪽에서 먼저 “딱” 하고 찍혔다. 마치 누군가가 내가 움직이는 걸 보고, 그에 맞춰 소리의 위치를 조정하는 것처럼.
그때 간호사가 뒤늦게 나를 불렀다. “야, 너 복도에 뭐 해.” 목소리가 뒤에서 나서 나는 또 한 번 놀랐다. 돌아보니 간호사는 내 뒤에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복도를 내려다보는 방향으로는 아무도 없었다. 간호사는 내 표정이 이상한 걸 눈치채고는 “무슨 소리 들었어?”라고 물었고, 나는 그대로 말하지 못했다. 대신 “복도에… 걸음소리요.”라고만 했다.
간호사는 잠깐 웃더니, “야간엔 귀가 더 예민해져. 밤에는 소리도 장난치거든.” 하면서 손전등을 켰다. 그리고 복도를 따라 걷기 시작했는데, 걸음소리가 딱 맞게 동행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녀의 걸음과 엇갈렸다. 그녀가 걸으면 그 발소리는 내 쪽에서 먼저 들렸다. 그녀가 멈추면 발소리도 멈추는 게 아니라, 한 박자 늦게 멈췄다. 나는 그 늦는 박자가 너무 의도적으로 느껴져서, 이게 누가 걷는 소리가 아니라, 누가 “듣고” 움직이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한참 뒤에야 우리는 간호실로 돌아왔다. 그런데 복도에서 들렸던 발소리는 녹음 파일에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파일을 여러 번 확인했다. 마치 녹음 버튼을 누르는 순간부터, 소리가 ‘소리로서’ 존재하지 않게 된 것처럼. 대신 모니터 화면의 시간만 흐르고, 복도는 여전히 비어 있었다. 나는 그제야 안심하려 했는데, 이상하게도 다음 날 아침 교대 인수 과정에서 내가 들었던 병실 배치와 관련된 기록이 뒤섞여 있었다. 누군가 새벽에 문단속을 했다고 적혀 있었지만, 그 시간대 출입 기록은 비어 있었다.
그 이후로도 가끔 밤이면 복도 끝에서 “딱, 딱” 하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다만 항상 패턴이 같았다. 소리는 먼저 내 뒤에서 시작해서, 어느 순간부터는 내 앞에서 같은 속도로 이어졌다. 나는 이제 그 소리를 들으면 절대 따라가거나,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대신 가만히 서서, 내 귀가 믿는 위치가 바뀌는 걸 견디는 쪽을 택한다. 그리고 어느 날은 문득, 그 소리가 멀어지는 게 아니라 내가 앞으로 옮겨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