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 부엌 창문 틈에서, 여름인데도 찬 김이 스며든다
시골집 부엌 창문 틈에서, 여름인데도 찬 김이 스며든다. 처음엔 내가 잠을 잘못 잔 건가 싶었어. 방금 전까진 부엌이랑 거실 쪽이 다 후끈했고, 창문 틀 틈새엔 햇볕이 닿아야 하는데도 아침부터 유난히 서늘했거든. 그런데 그 서늘함이 단순한 바람이 아니라, 어디선가 숨 쉬듯 아주 얇게 김이 올라오는 느낌이었어.
집은 외가에서 물려받은 오래된 집인데, 부엌은 특히 더 그랬어. 장독대 근처라 습기도 많고, 창문 하나는 유리만 멀쩡하지 틀은 손댄 적이 없는 것 같았거든. 나는 창문을 열어 환기시키려고 손을 뻗었는데, 그 순간 유리 밑 틈에서 하얀 김이 ‘훅’ 하고 스며나왔어. 여름인데도 입김처럼 보일 정도로 차가웠고, 손가락 끝이 금방 얼얼해지더라.
그래서 당연히 틈새가 벌어졌나 싶어서 비닐 테이프로 임시로 막아봤어. 창문 틀에 바짝 붙여서 틈이 보이지 않게 하고, 다시 관찰했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다음 날 아침엔 막아둔 테이프 근처가 아니라, 창문 아래쪽에서 똑같이 김이 올라왔어. 테이프를 뜯어내고 살펴보면 틈이 있는 건 맞는데, 그 틈에서 뿜는 방향이 계속 바뀌는 거야. 마치 누가 안에서 위치를 바꿔가며 확인하는 것처럼.
처음엔 별일 아니라고 넘기려 했어. 시골집은 원래 그렇다, 오래된 집은 더 그렇다, 곰팡이 냄새도 나고 바람도 새겠지 싶었거든. 그런데 찬 김이 스며드는 시간대가 계속 일정했어. 대체로 해가 완전히 뜨고 나서 한참 뒤, 그러니까 사람들 다 준비하고 부엌에서 뭔가 하는 시간, 딱 그때마다 나타났어. 찻주전자 물 끓이려고 가스 불 켤 때나, 설거지하려고 수도 틀 때마다 창문 틈이 먼저 ‘조용히’ 식는 느낌이 들었고, 그 다음에 김이 올라왔지.
그러다 어느 날, 어머니가 “그쪽 창문은 건드리지 말라”고 하셨어. 어머니가 평소엔 잔소리도 잘 안 하는 스타일인데, 그날만 유난히 조용했어. 어머니 말로는 예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해. 정확히 뭐였는지 묻는 순간엔 “말하면 더 온다”면서 얼른 주방에서 다른 얘기로 돌렸는데, 그 말투가 너무 단단해서 내가 더 캐묻지 못했어.
나는 괜히 겁먹고 싶지 않아서, 결국 밤에 직접 확인하기로 했어. 낮엔 김이 잘 안 보이니까, 해가 떨어지고 조용해지면 더 잘 보일 거라 생각했거든. 스탠드 조명을 켜고 창문 틀 근처에 작은 수건을 대봤는데, 수건이 젖는 것도 아니고 축축해지지도 않아. 대신 손을 가까이 대면 그제야 찬 기운이 달라붙듯이 느껴졌어. 공기가 차갑게 ‘통과’하는 느낌이 아니라, 마치 틈 안쪽에서 누가 내 체온을 재듯이 가까이 와 있는 느낌. 그때 창문 안쪽에서 아주 얇게 긁히는 소리가 났는데, 손톱으로 유리를 긁는 것 같지는 않고… 무언가가 틈을 따라 문지르는 소리였어.
다음 날부터 더 이상해졌어. 김이 올라오는 횟수가 늘어난 건 물론이고, 김이 올라올 때마다 창문 유리 중앙 쪽이 살짝 서늘해지는 게 느껴졌거든. 열감이 아니라 ‘차가움’이 전염되듯 퍼지는데, 유리 표면이 흐릿해 보일 정도로 얇은 성에가 생겼다가 바로 사라지곤 했어. 나는 바람이 새는 건가 생각했는데, 그 성에는 실내 습기랑 상관없이 생겼고, 사라지는 속도가 너무 빠르더라. 마치 누가 안에서 다시 닦아놓고 간 것처럼.
한 번은 호기심에 틈 사이에 아주 얇은 종이를 끼워 넣어 봤어. 종이가 들어가는 길이가 일정할 리 없잖아. 근데 종이를 넣자마자, 손끝에서 ‘딱’ 하는 감각이 와. 종이가 어떤 막에 걸린 것처럼 더 들어가지 않았고, 그 순간 종이가 살짝 젖는 느낌이 들었어. 젖어서 차가운 게 아니라, 차가운 게 먼저 와서 종이를 젖게 만든다는 표현이 더 맞을 정도로. 나는 바로 빼서 만져봤는데 종이는 물이 묻은 게 아니라, 표면이 마치 차가운 금속을 만졌을 때처럼 매끄럽게 달라붙어 있었어.
그 뒤로 어머니가 결국 부엌 창문을 갈아치웠어. 틀을 새로 맞추고 유리도 교체했는데, 놀랍게도 이틀 정도는 김이 완전히 사라졌거든. 다행이다, 그때까진 내가 정말 안심했어. 근데 사흘째 되는 날 새 창문 틀 아래쪽에서 아주 옅은 찬 기운이 새어 나왔어. 이번엔 김이 아니라 ‘차가움’만 스치듯 느껴졌고, 그 차가움은 내 발목 쪽을 먼저 만지고 지나갔어. 그리고 그날 밤, 부엌에서 들리지 말아야 할 소리—마치 바닥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숨을 고르는 소리 같은 게—한 번 나더라.
그래서 지금도 난 그 집에 가면 부엌에 오래 서 있지 못해. 창문을 고쳐도, 틈이 없어도, 여름이 와도 그 서늘함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것 같아서. 어떤 날은 그냥 날씨 탓일지도 모르겠는데, 또 어떤 날은 분명히 느껴져. 창문 틈이 아니라, 창문 틈으로 이어지는 기억이 먼저 나를 찾는 거라고. 그래서 나는 아직도 부엌 창문을 닫을 때마다 손끝으로 틀을 한 번 더 확인하고, 웃으면서도 속으로는 조용히 말해. “올 수 있으면, 이제는 그냥 밖으로만 있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