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거래로 받은 베개에서 누군가의 향이 계속 남아 있다
중고거래로 받은 베개에서 누군가의 향이 계속 남아 있다. 처음엔 그냥 “새것 아닌데도 깔끔하게 소독했나 보다” 싶었거든. 그런데 포장을 뜯는 순간부터 코끝을 스치던 냄새가 너무 선명해서, 나는 오히려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세탁향 같은 게 아니라, 사람한테서 나는 체온 같은 느낌이 섞인—말로 설명하기가 애매한 향이었어.
판매자는 “상태 좋고, 곧장 사용 가능”이라고만 적었고, 추가 사진은 베갯잇이 씌워진 상태에서 끝이었어. 나는 급해서 세부를 크게 보지 않았고, 가격도 싸서 그냥 넘어갔지. 택배가 오고 비닐을 벗기는데, 베개 커버 안쪽에서 은근히 올라오는 향이 딱 멈추지 않고 계속 남아 있는 거야. 냄새가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타입이 아니더라.
처음엔 당연히 이상한 게 맞나 싶어서 커버를 바로 세탁했어. 방향제나 섬유유연제 향으로 덮이면 해결될 줄 알았는데, 그게 오히려 문제였어. 세탁하고 말려도, 완전히 마른 뒤에도 베개 자체에서 얇게 잔향이 살아있더라. 누가 베개에 기대서 숨을 쉬고 난 뒤에 남는 기분이랄까. 그래서 커버만 세탁해서는 안 되는 구조인가 싶었지.
그래서 베개 속을 분리해서 확인하려고 했는데, 봉제선이 촘촘하고 지퍼가 없는 타입이더라. 겉커버만 열려 있고, 속은 통째로 고정된 제품. 수분이랑 냄새가 어떻게든 남아 있는 건지, 아니면 다른 게 들어 있는 건지 모르겠는데, 나는 괜히 억지로 뜯다가 더 망칠까 봐 그냥 다시 커버를 씌워두고 며칠을 써보기로 했어.
그런데 문제는 “향이 남아 있다”에서 끝나지 않았다는 거야. 밤에 누우면 대체로 사람은 잠들기 전에 냄새를 크게 신경 쓰지 않잖아. 근데 나는 그날부터 잠들기 직전에 자꾸 코끝이 간지러워지는 느낌이 들었어. 마치 누군가가 바로 옆에서 숨을 들이쉬는 것처럼, 아주 가까이에서 나는 냄새의 리듬이 있더라. 물론 실제로는 아무도 없었는데도 말이야.
며칠 지나서 나는 판매자에게 메시지를 보냈어. “베개에서 특정 향이 계속 나요. 혹시 세탁이 잘 안 됐나요?”라고. 그랬더니 판매자는 단박에 읽씹하더니, 하루 뒤엔 짧게 “직접 사용하던 거고, 향은 원래 베개 특성이에요”라고만 답했어. 원래 특성이면 이렇게 오래, 이렇게 선명하게 남아 있나 싶었지만, 대화가 더 이어질 분위기는 아니었어.
그때부터 나는 다른 물건들도 같이 확인하기 시작했지. 베개 외에 같이 온 물티슈나 봉투, 포장지에서 냄새가 나는지 맡아봤는데, 이상하게도 냄새는 베개 쪽에만 붙어 있었어. 그리고 시간이 지나도 줄어드는 느낌이 아니라, 오히려 어느 날은 더 진해졌어. 비 오는 날이라 습기가 올라서 그런가 싶어서 베개를 통풍에 놔뒀는데도, 다음 날 다시 방 안에 들어오면 똑같이 느껴졌지.
급기야 나는 잠깐 미뤄뒀던 최후의 방법을 썼어. 베개를 아예 세탁소에 맡기는 대신, 향이 덜 남는 방식으로 전문 세탁을 해달라고 했지. 맡기고 돌아오는 날, 나는 포장지를 뜯는 순간 또 그 냄새가 올라오는 걸 느꼈어. 세탁소는 “일반 세탁은 다 했고, 추가로 탈취도 진행했어요”라고 했는데, 내 코가 괜히 예민한 건 아닌지 싶다가도 손으로 베개 표면을 만지면 묘하게 감각이 더 진해지는 느낌이 들더라.
그래서 나는 마지막으로 생각을 바꿨어. 누군가의 ‘향’이라는 걸, 그냥 세탁이 안 됐다거나 개인 습관 같은 걸로만 볼 수 있을까? 혹시 중간에 누가 잠깐이라도 앉았다가, 혹은 어떤 이유로든 그 자리에 머문 흔적이 베개 속까지 배어버린 걸지도 모르겠다는 쪽으로. 그런데 웃긴 건, 베개를 버리지 못하고 계속 같은 자리에 두게 된다는 거야. 불편함이 사라지지 않는 물건은 보통 그냥 신경 쓰이고 끝나야 하는데, 이건 이상하게 자꾸만 눈과 코가 먼저 반응했어.
며칠 뒤 새로 산 베개커버를 씌웠는데도, 나는 가끔 아주 짧게 그 향을 다시 맡았어. 특히 밤에 불을 끄고 누우면, 한 번은 확실히 느껴지고 그 다음엔 잠깐 멎었다가—다음 날 또 비슷하게 돌아오더라. 그래서 지금도 베개를 바꿀 생각을 하면서도, 버리기 전에 꼭 한 번씩 냄새를 맡아보게 돼. 이상하게도 그 향이 사라지길 기다리는 게 아니라, 언제 다시 찾아오는지를 확인하는 내가 있는 게 더 소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