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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기사님이 내리라고 한 정류장에 발자국이 없었음

2026-10-26 00:29:13 조회 0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택시 기사님이 내리라고 한 정류장에 발자국이 없었음. 처음엔 그냥 새벽이라 사람들이 지나가지 않은 구간인가 싶었는데, 내 발이 그 자리에 닿는 순간부터 뭔가가 이상하게 굳어버린 느낌이 들었어. 뒤를 돌아보면 기사님은 거울 너머로 계속 나를 보고 있었고, 택시는 거의 멈춘 것처럼 천천히 미끄러지듯 정류장 옆에 붙었지.

그날은 일이 꼬여서 새벽 두 시쯤 혼자 집으로 가고 있었어. 핸드폰 배터리가 빨갠 상태라 지도도 제대로 못 보고 있었는데, 기사님이 “여기서 내리시면 돼요” 하고 말했어. 정류장은 버스 표지판만 달려 있고, 주변 가로등은 몇 군데만 켜져 있었어. 창문 너머로는 비 냄새 같은 게 은근히 났는데, 도로 바닥은 젖어 있으면서도 누가 지나간 흔적은 보이지 않았거든.

내가 “여기 맞아요?” 하고 물었더니 기사님이 짧게 웃더라. “네, 딱 여기요.” 그 말투가 이상하게 확신이 있었어. 보통은 목적지 물어보고 대충 세워주는 경우가 많은데, 기사님은 마치 오래전에 정해둔 루트를 그대로 따르는 사람처럼 또렷했어. 기사님이 손을 내밀어 가리킨 쪽은 정류장 표지판 앞쪽이 아니라, 표지판에서 한 발짝 옆으로 치우친 지점이었어.

차에서 내리자마자, 제일 먼저 느낀 게 소리였어. 차 문이 닫히는 “툭” 소리 말고는 바람 소리도 거의 안 났어. 새벽이면 보통 멀리서 차가 한두 대는 지나가야 하는데, 그때는 도로가 멈춰 있는 것 같았어. 그리고 시선이 바닥으로 갔는데, 내리기 직전까지만 해도 젖은 아스팔트에 반짝이는 물기만 보였거든. 그런데 기사님이 가리킨 자리는… 발자국 같은 게 전혀 없었어.

난 혹시 내가 내려서 물기를 밟기 전까지 아무 흔적도 없는 구간인가 싶어서, 표지판 주변도 살폈어. 정류장 앞이라고 해도 사람들 기다리다 가면 최소한 신발 자국이나 진흙자국 같은 게 남는 법이잖아. 근데 그 자리는 깨끗했어. 마치 누가 “여기까진 닿지 마” 하고 경계를 그어놓은 것처럼 경계가 선명하더라. 이상하다고 느낀 건 그 다음이었어. 내가 한 발짝 앞으로 내딛는 순간, 바닥은 젖어 있는데도 신발이 물에 젖지 않았거든.

그게 어찌 보면 장난같이 들릴 수 있는데, 실제로는 신발바닥이 땅을 꾹 눌렀는데도 촉감이 달랐어. 젖은 아스팔트라면 미끄럽고 차가운 느낌이 먼저 오는데, 그때는 차갑기보다 단단하게 “닫힌” 느낌이었지. 그리고 뒤돌아보니 기사님이 이미 창문을 조금 내린 상태로 나를 보고 있었어. 그런데 그 눈빛이… 뭔가를 확인하는 눈빛이었어. “내리라고 한 자리에 내렸는지”를 체크하는 사람처럼.

나는 괜히 장난치는 느낌이 싫어서 기사님께 다시 확인하려고 문 쪽으로 반 걸음 다가갔어. 손으로 문고리를 잡으려는 순간, 기사님이 갑자기 말했어. “조심히 걸어요. 여기선 발소리가 늦게 따라와요.” 말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웃음이 안 나왔어. 보통 무서운 소리 하면 과장된 톤이 나오는데, 기사님은 그냥 택시 기사처럼 평범하게 말했거든.

그 말 듣고 나서야 내가 뭘 잘못 느꼈는지 알겠더라. 내가 방금 내딛은 발소리가 늦게 들렸어. “탁” 하고 나는 소리가 바로 따라오는 게 아니라, 한 박자 늦게 뒤늦게 귀에 닿았어. 그래서 나는 걸음을 멈췄고, 멈춘 순간에도 소리는 남아있다가 사라졌어. 마치 소리가 먼저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이상했어. 그때 시야가 옆으로 번져서, 내 앞이 아니라 정류장 표지판 바로 아래쪽을 봤는데… 거기엔 발자국이 없었어.

정말로, 아무도 밟지 않은 것처럼 매끈했어. 내가 서 있는 위치 주변만 유독 깨끗하고, 그 바깥쪽은 바퀴 자국이나 물때 같은 게 있었거든. 그러니까 “아무도 안 지나간 자리”라기엔 다른 흔적이 있는데도, 기사님이 지목한 지점은 비어 있었던 거야. 순간 머리가 하얘지면서도, 동시에 그냥 빨리 집에 가야 한다는 생각만 들었어. 나는 기사님에게 추가로 말도 못 하고, 조용히 정류장을 옆으로 돌아서 걷기 시작했어.

걸을수록 이상함은 더 선명해졌어. 내 신발이 아스팔트를 밟을 때마다 뭔가 “늦게” 반응하는 느낌이 계속 됐고, 가로등 불빛도 이상하게 한 칸씩만 이어졌어. 앞을 보니 집으로 가는 길이 분명히 이어져 있는데, 이상하게도 발밑만 자꾸 확인하게 되더라. 근데 확인할 때마다 내 발자국이 남지 않았어. 분명 밟았는데도, 뒤를 돌아보면 바닥은 똑같았고, 젖은 아스팔트의 반짝임만 유지되고 있었어.

몇 분쯤 걸었을까. 뒤를 한 번 더 봤는데, 택시는 이미 없어져 있었어. 분명히 아까는 정류장 옆에 멈춰 있었거든. 그런데 정류장 표지판만 바람에 흔들리고, 도로는 텅 비어 있었지. 나는 그제야 깨달았어. 기사님이 “내리라고 한 정류장”이 아니라, 내가 내려야 했던 위치가 따로 있었던 거구나 싶었어. 발자국이 없었다는 게 단순히 깨끗해서가 아니라, 그 자리에서부터는 흔적을 남기는 방식이 다른 것 같았어. 지금도 그날 이후로는 택시에서 “여기서요”라는 말이 나오면, 괜히 바닥부터 먼저 보게 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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